산티아고순례길. 빌라프란카 - 오세브레이로 28.4km
새벽 아침
가방을 풀고 다시 짐을 싼다. 순례길의 루틴이다. 물건을 차곡차곡 다시 정리하는 일.
정원 쪽문으로 나간다.
환한 길가 가로등에 두려움 없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중
마을 광장을 지나
가로수길을 걷고
다리도 건넌다.
이쯤 되면 스페인 마을의 조건 중에 다리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배산임수가 스페인에서도 적용되나 보다.
강을 따라 길이 나 있고, 마을은 강가에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입구 혹은 출구엔 돌다리 혹은 아치형 다리가 있다.
가게 앞 조가비 모양의 장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오늘도 나의 발걸음을 이끄는 표지판이 있다.
집 밖에 있는 화분 누가 훔쳐가진 않을까 남의 집 화분 걱정을 하며 걸었다.(동시에 내 물건이나 잘 챙기자.. 하며....)
마을이 끝나고 캄캄한 순례길이 시작된다.
이따금 나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불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길
오늘도 하늘엔 구름이 잔뜩 꼈다.
아주 작은 마을을 지나고
고속도로 옆으로도 지나간다.
내 앞에 순례자 한두 명이 보인다.
일자로 쭉 뻗은 마을도 지난다.
고양이들이 문 위를 계속 쳐다본다. 문을 열어 달라는 건지..? 아마 이곳이 얘네들 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도
저기도
최단시간 고양이를 가장 많이 본 마을
이 정도면 '고양이 마을'로 이름을 붙여도 될 듯하다.
구글맵에서 이 마을 카페 두 곳을 찾았다.
마을 초입과 끝자락.
끝에 카페가 더 좋아 보여 거기로 가려고 한다.
근데 후반 카페는 문을 아직 안 열었다...
아까 초반에 갔어야 했는데... 화장실이 급하다.
I should've gone there...
이미 꽤 걸은 마을.. 다시 돌아가긴 싫고 그냥 걷는다.
멍- 때리며 걷기
그다음은 무조건 첫 번째로 나오는 카페를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 보고 긴장이 풀렸다.
카페 도착
아늑한 안방 분위기의 카페
먹음직스러운 빵도 보이고
커피 맛있게 내려주세요~!
저녁시간에는 레스토랑도 운영하는 듯하다.
한 입 크게 먹는 샌드위치
그나저나 손이 새까맣게 더 탄 것 같다...
오렌지 주스도 먹고
다시 출발해요
앞에는 미국에서 온 친구인데 얼마 같이 걷다가 내가 발걸음이 빨라 헤어졌다. 잠시나마 말동무가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쉬는 순례자들
한 폭의 그림 같다.
산티아고까지 164.5km 남았다.
언제 이렇게 걸었담..!
지금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알아챘다.....ㅎㅎ 10분 정도 내려가는데 이상하리만큼 아무도 없어서 GPS를 보니 다른 갈래길로 들었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더 안 내려가서 다행이다.
올라오며 한 번 더 생각했다.
인생에도 내가 맞는 것 같아서 가고 있지만 방향이 틀려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그래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오늘 마을들은 완전 깡시골
어머나 세상에...
소가 줄줄이 지나간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소를 본 적이 없어서 뿔로 나를 들이받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너무나 순하게 잘 지나갔다.
마지막에 소몰이하시는 주인도 보았는데 나에게 혼자 왔냐고 친구 없냐고 물어보시며 혼자 걷는 거 대단하다고 잘 걸으라고 응원해 주셨다.
사실 이때 말은 통하지 않았는데 순례길 걸으며 주워들은 스페인어와 바디랭귀지를 통해 대화했다.
소똥 냄새도 진하게 난다.
가까이서 풀 뜯어먹는 소들도 보고
열심히 걷는 중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많이 힘들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사전정보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오늘 걸어야 할 길~’하고 걸었다.
어쩔 땐 모르는 게 약이다.
위아래 빨간색으로 맞춰 입고 색소폰 부는 아저씨.
저 차도 아저씨 차인데.. 아주 열정적이시다.
점점 더 위로 올라간다.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동상 하나가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안개가 끼어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
마을에 들어왔는데 왠지 마법사들이 살 것 같은 마을이다.
이름도 O cebreiro
이 마을부터 갈리시아지방이 시작된다.
오 세브레이오는 스페인 북서부 루고주에 속한 마을로,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서 갈리시아지방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마을이다.
고도 1300m 위치한 산악마을이고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원형 가옥이 특징이다.
즉,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갈리시아 입성을 알리는 문지방 같은 곳이다. 안개가 많이 끼고, 초록이 짙으며, 비가 자주 온다. 마을 구조도 작고 둥글며, 갈레고어-Galego(정식으로 인정받은 독립적인 언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칠판에 개성 있는 손글씨들도 이 마을의 분위기를 한 몫하는 것 같다.
안내판 옆에 문어 일러스트도 귀엽다. 문어는 갈리시아 지방 특산물이다.
알베르게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간다.
알베르게 가는 길은 아예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알베르게 주방
와이파이 연결하는 법이 꽤 복잡해 각 나라 언어로 적혀있다. 한국어도 있어서 연결하기 쉬웠다.
오늘 침대에 침낭을 펴놓고 필요한 물건들을 꺼낸다.
씻고 마을 구경 나왔다.
이곳에 비밀 마켓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이게 여기 왜 있지...? 의문이 드는 곳에 마켓이 있다.
파는 건 있지만 살 건 없었다.
슬슬 배가 고파 저녁 먹으러 한 가게에 들어왔다. 내 카메라보고 브이 해주는 미소가 예쁜 직원
순례자들이 북적북적
테이블종이가 독특하다. 갈리시아 지방의 프라이드가 담겨있다. 이곳에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여정을 나타낸 지도이다.
나는 햄버거를 시켰는데
스페인에서 먹은 햄버거 중에 제일 맛있었다.
소고기패티가 육즙도 가득하고 굽기도 적당하다. 스페인은 고기 자체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원래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너무 맛있게 먹었다. 감자도 역시나 맛있고
나는 탄산음료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콜라는 아예 먹지 않고 사이다 종류는 가끔가다 어울리는 음식 있으면 한 두 모금?
너무 달다.
여기 햄버거 세트에 같이 나오는 레몬환타는 당도가 낮고 상큼한 레몬 맛이 진해 너무 맘에 들었다.
밥 먹고 기념품샵 구경하기
예쁜 장식품들이 한가득
오늘도 구경만 잔뜩 하고 나왔다.
Santa María la Real del Cebreiro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성당
고도 약 1,300m의 위치에서 운 좋으면 운무 속 성당을 볼 수 있어 신비한 분위기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이며 순례길 노란 화살표의 창시자, 순례길의 아버지라 불리는 엘리야스 발리냐 신부의 묘지가 이 성당 안에 있다.
엘리야스 신부는 순례길이 거의 잊혀 가던 시기에 직접 노란 페인트통과 붓을 들고 스페인 전역의 순례길을 걸으며 노란 화살표를 그려 넣은 사람이다. 이 화살표는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상징이 되었다.
"Este camino se hará."
"이 길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의 산티아고 순례길 붐은 그의 헌신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례자들의 진심 어린 기도가 촛불에 담겨있다.
성당을 나오니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궁금해 사람들이 뭘 보나 봤는데
구름이 점점 가시며 햇빛이 들어올락 말락 하는,
매우 찬란하고 눈부신 순간이다.
'진짜 나는 이 세상 속에 아주 티끌 같은 존재이구나....'
그리고 웃기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떠올랐다.
꿈 같은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