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사리아 - 포르토마틴 22.3km
밤새 비가 와서 길이 젖어있다. 다행히 출발할 땐 내리지 않는다.
길거리 곳곳에 가로등이 켜져 있어서 마음 놓고 걷는 중
순례길의 하이라이트 구간인만큼 곳곳에 이런 페인팅도 많이 보인다.
순례길 마크가 이렇게 견고하게 만들어진 줄 몰랐다.
계단을 올라 도시를 빠져나간다.
아침 일찍 문을 연 카페
조용한 길거리
등산 스틱 그림자가 꽤 멋있다.
좁은 골목길로 빠져나간다.
반가운 태극기도 보이고
사리아도 안녕
숲길로 들어서서 본 사리아의 새벽아침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중
새벽하늘의 별도 보인다.
아쉽게도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았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나는 짧은 길을 선택했다.
첫 번째 마을의 알베르게
아저씨 문 열고 사진 찍으시는 중
반대쪽엔 동이 트려고 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밝아졌다.
저 분홍색깔은 소여물. 보통 흰색으로 감싸져 있는데 분홍색이어서 특이했다.
오늘은 걷기 좋은 오솔길!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서둘러 모자를 쓰고 우비를 입었다.
비바람에 떨어진 열매들,
모과인 것 같았는데 걸을 때 향기가 나서 좋았다.
'한 줄기의 빛'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순간
길 안쪽으로 빛이 싹 비추며 내가 걷는 길을 밝혀주는 듯했다.
운동화가 진흙으로 인해 더러워졌다.
처음엔 매일 더러워져서 신경이 쓰였다.
신발을 닦다가 흙 속에서 다시 걸으며 더러워지는 걸 보며,
그리고 비가 오면 또 자연스레 씻기는 걸 보며, 순례길 끝날 때까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의 발을 보호해 주는 고마운 신발이다.
이 호박은 누가 던져놓은 것 같네
어느새 비가 멈췄다.
카페에 도착에서 쉬어가려고 한다.
샌드위치과 커피, 오렌지주스, 삶은 달걀
오늘은 먹을 게 많다.
두 팔 걷어붙이고 맛있게 먹었다.
옆에 액세서리를 팔아서 구경도 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다시 출발
할머니 한 분이 걸어가고 계셔서 지나가며 '부에노스디아스' 인사드렸다. 고운 미소로 끄덕하신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해가 났다.
좋다,
좋아
드디어 100km 비석
언제 다 걷지? 생각한 게 정말 엊그제 같은데
걷다 보니 문득 너무 감사하다.
마을에 도착하니
‘어머 다른 마을에서 나 이 모습 본 적 있는데...’
강아지가 햇볕으로 데워진 바닥이 따뜻한지 누워있다.
입꼬리 무장해제..ㅎㅎ
풍경에 눈이 정화되는 중이다.
앞에 개를 데리고 온 순례자
근데 갑자기 마을에서 개가 내려와서 월월 짖기 시작한다.
그러곤 긴장되는 대치상태
공격적인 마을 개는 순례자에게 저지를 당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 개 짖는 소리 듣고 잠 깨서 순진무구하게 달려오는 이 아이 너무 웃겼다.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친구 옆으로 다가간다.
너 너무 사랑스럽다....
한바탕 소동 후 다시 유유히 걸어가는 순례자들
강아지들 구경하고 선선한 바람에 열심히 걷는 중
지나가다 한 카페를 발견했는데 경치가 너무 좋다.
아침 안 먹었으면 여기 가고 싶었다.
아쉽지만 나는 직진
자세히 보면 한국어로 '너무 고생이 많아요'가 쓰여있다.
물론 표지판에 낙서는 좋진 않지만 그래도 순례길에 발견한 저 한마디는 미소를 짓게 했다.
직접 만든 조개모양 기념품도 팔고 있다. 첫 마을 생장에서 사는 것보다 산티아고 근처 와서 사는 게 훨씬 모양도 다양하고 저렴하다.
걷다 보니 저-기 마을이 보인다.
돌아 돌아 마을로 들어가는 중
구름이 막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사했다.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A)와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Ω)는 “처음과 끝”, “시작과 마침”을 의미한다.
자연을 보면, 그 안에 담긴 순환의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해는 뜨고 지고, 계절은 돌고 돈다.
꽃은 피고 시들며, 바람은 불고 또 잦아든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자연과 인생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점은 자연의 순환은 반복되지만, 인간의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
우리의 시작도, 우리의 마지막도 스스로 계획할 수 없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깨닫고, 계획하며, 실천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알파의 시작을 하고 있을 것이며, 또 어딘가에선 오메가의 끝을 맺고 있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 삶으로부터 흘려보낼, 영원히 지속될 것을, 지켜야 할 것을 바라며 살아가야 한다.
마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다리를 건너면 마을에 도착
마을이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계단도 올라가야 한다.
문도 통과한다.
이 마을은 들어가는데 통과할 곳이 많네
마을 풍경
포르토 마틴 Portomatin
이전 1960년대 벨레사 댐 건설로 인해 원래의 마을이 수몰 위기에 처하면서, 주요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언덕 위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중세 분위기를 간직한 구조 새롭게 이전된 마을이지만, 중세의 거리와 건물 구조를 최대한 재현하여 역사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나가다가 발견한 집
베란다를 꽃으로 장식해서 너무 아름답다. 아주머니가 나와서 꽃을 다듬고 계셨다.
알베르게에 거의 다 도착했다.
도착해서 빨래도 열심히 하고
씻고 마을 구경을 나왔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
이 다리를 확대해 보니
뒤이어 순례자들이 마을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돌아다니다 츄로스가 먹고 싶어 카페에 왔다.
신중하게 메뉴 고민 중
잔돈을 없애고 싶은 마음
비교적 신축 건물 같다.
츄로스와 짝꿍 초콜릿
초콜릿이 그렇게 달지 않다. 마실 수 있는 정도의 달기라 츄로스와 궁합이 너무 좋다.
알베르게에서 쉬다가 저녁약속했던 미아, 벨라, 메기를 만나러 식당에 가는 중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식당 도착
이들을 만나면 언제나 웃음이 넘친다.
입맛에 맞았던 레몬환타
어제 먹은 뿔뽀보다는 야들야들함이 덜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다.
이건 갈리시아식 수프(Caldo galego)인데 우리나라 시래깃국 느낌
돼지고기구이와 감자
치즈케이크
너무 감사하게도 이들이 나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안 그래도 된다고 했지만 만나서 너무 즐거웠고 자기들이 대접하고 싶었다고 한다.
너무,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대만에 가면 볼 친구들, 그들이 한국에 오면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이 한 끼의 따뜻함을 마음 깊이 새겼다.
언젠가 꼭, 이 고마움을 갚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배도 마음도 따뜻하게 채운 채, 오늘을 감사한 마음으로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