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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순례길. 포르토마틴 - 멜리데 39.7km

by 실버레인 SILVERRAIN

오늘은 약 40km를 걷는다. 평소보다 더 많이 걸을 예정이어서 5:40에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가로등은 이곳까지

이제부터는 산길 진입

오늘도 깜깜한 하늘에 마을 불빛들이 반짝인다.

지나가다 문 연 카페를 발견했다. 여기서 쉴까 했지만 아침을 먹기엔 너무 일러서 패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날이 밝아져 가로등 불빛 꺼지기 바로 전


캄캄할 때 가로등 보는 것보다 이 시간에 보는 게 뭔가 더 분위기 있다.

wish the clouds hadn't been there.....

저기서 쉬어가야겠다.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내가 1 빠인가

아저씨는 영업준비가 한창이셨다.

음료들도 준비되어 있고

스티밍 잘 된 우유로 만드는 카페콘레체

추운 새벽에 한 입 마시며 몸을 녹였다.

다 먹고 출발

hi, red car

수국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 계신 아주머니도 한참을 찍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좋아했다. 그 자체로 순수해서 너무 좋다. 집에 고목나무를 키웠는데 큰 나뭇잎들 사이로 새 새싹이 돋아나서 너무 귀여웠던 기억이 있다.


봄날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꽃잎,
여름의 무성한 풀잎들,
가을의 바스락거리는 낙엽,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소복이 쌓인 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풍경을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기도 하다.


20대 초반에 꽃만 보면 사진 찍어서 중년 아주머니들 프사 꽃 생각하며 ‘나 애늙은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다행히 프사는 바꾸지 않았다.)


나중에 시골에 예쁜 집 짓고 정원, 텃밭 가꾸면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암튼 그래서 순례길이 더 좋다. 자연을 누릴 수 있어서

들판 한가운데 빨간 집 한 채는 좀 외로워 보였다.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해서 한 알베르게에 가서 쉬어간다.

이곳은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다과와 따뜻한 차를 제공하고 있었다. 목을 축이고 재정비를 한 후 다시 걷는다.

중간 마을 도착

초입에 성당이 위치해 방문했다. 성당보다는 약간 가정집 분위기가 난다.

이곳은 인구 3000명 정도의 전통적 분위기의 마을이다. 나랑 같은 곳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보통 이곳에서 코스를 끊어간다.

요 며칠 츄로스를 먹었더니 눈에 ‘츄로’라는 글자가 제일 먼저 들어온다.

앤티크한 한 카페에 들어왔다. 아주 오래된 것 같은 푸근한 스페인 가정집 분위기. 바닥과 벽면의 컬러 대비가 공간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젤리들도 종류별로 많이 판다. 이런 거 보면 시골마을에서 유통기한 지날기 전까지 다 팔릴지 의문이다.

커피와 빵

(빵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암튼 카페에 들렀다. 나와서 열린 장을 구경하고

다시 출발한다.




누군가 비석위에 신발을 벗어놓고 갔다. 버린 건지..? 일부러 놓은 건지...?

좀 규모가 큰 알베르게도 지나고

저 자전거 탄 순례자는 나에게 '부엔카미노'를 외치며 유유히 지나갔다.

여기도 안녕

폐허도 보았다. 밤에 오면 무서울 것 같다..

이후로는 숲길이 쭉 나왔다.


그런데 점점 메스꺼워지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엄청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다. 이때부터 내 신경은 온통 그 울렁거리는 감각에 집중되었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 봐도 그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더 이상 풍경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빨리 이 메스꺼움을 해결하고 싶었다.

이 카페에서 쉬어가려고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주인아저씨가 문을 닫고 뒷문으로 나가시는 게 보였다.

할 수 없이 다음 마을까지 이동한다.

마을 벤치에 좀 앉아서 숨을 고르다가 다시 출발

결국 나는 도중에 토를 해버렸다. 모든 음식을 게워내고 힘이 쭉 빠졌다. 내 옆에 걷는 순례자들이 한 분도 없어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정말 사람 한 명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에 힘이 풀리면서 거의 한 시간 정도를 호흡하며 걸었던 것 같다. 시간이 제일 느리게 갔던 구간이다.


아까 카페에서 먹은 빵이 잘못된 건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다.

멜리데 도착

여기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마을 초입부터 알베르게까지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정말 눈이 더디 감기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한 세 번 정도 주저앉은 것 같다. 혼자 '할 수 있다, 가자, 다 왔다' 어떻게 보면 좀 미련하게 가긴 한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목이 너무 마르고 힘이 없어 중간에 마트에 들러 이온음료 한 캔을 사서 마셨다.


알베르게에 도착한 순간 나는 긴장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침대 앞에 가서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옆에 영국 순례자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봐서 오늘 40km 걸었다고 말해줬는데 너 미쳤냐고 한다.


음.... 사실 속만 괜찮았으면 무리 없이 잘 도착했을 것 같긴 한데, 중간에 몸이 급격히 안 좋아져 그렇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가만히 있으라고 본인이 침대 정리 해주겠다며 침대보도 씌워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몸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샤워할 때 이온음료 마신 것까지 다 토했다. 정말 헛구역질이 계속 나와 뱃속 장기들까지 나올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토할 수도 있구나 느꼈다.


토하는 건 몸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세균, 바이러스, 독소 등을 빨리 배출하려는 본능적인 방어 작용이지만... 그 이후의 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아침까지만 해도 정말 건강했는데... 사람일은 정말 어찌 될지 모른다. 몸의 한 군데가 아프기 시작하니, 온 정신이 그곳에만 머물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평소에 건강함에 감사해야하며

몸,

잘 챙겨야 한다. 진짜...

따뜻한 물로 샤워 중에도 추위가 느껴지니.. 몸상태는 말 다했다. 오한이 와서 비상약을 먹고 담요 3개를 겹쳐서 덮었다.


이른 오후부터 나는 계속 오들오들 떨면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아프면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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