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깨달아버린 것

산티아고순례길. 오페드루소 -산티아고 19.3km

by 실버레인 SILVERRAIN


일어났는데 컨디션이 꽤 괜찮아졌다. 오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지막 날 태풍예보가 있다.


밖을 보니 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다.

첫날에 썼던 우비를 마지막 날까지 사용한다.

나의 쓰레기 우비... 뽕을 뽑네

나와보니 순례길에 맞은 비 중 역대급인 것 같다. 너무 세다.

‘걷는데 손이 허전한 이유가 있었어...‘

등산스틱을 알베르게에 놓고 온 걸 발견했다. 멀리 안 가 참 다행이다.

소리가 장난이 아니네

진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날씨가 '어디 한 번 걸어봐~' 하는 것 느낌이다.

비바람에 쓰러진 쓰레기함도 발견했다.

바닥을 보니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이 아마 다 떨어진 듯싶다.

얼마 걷다가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길가로 쓰러져 길을 막고 것도 발견했다. 정말 태풍인가 보다.

이탈리아 순례자 한 명을 만나 같이 걷다가 카페로 들어왔다. 머리, 얼굴, 옷, 신발 젖지 않은 곳이 없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따뜻한 커피와 바나나를 아침으로 먹었다.

그 이후로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드디어 10km 정도 남았다

길이 물에 잠긴 걸 보고 ‘헉‘ 하며 잠시 멈췄지만 그냥 시원하게 발을 담갔다. 물살이 세서 꽤 놀랐다.


진짜 마지막 날 이러긴가...

태풍이 생각보다 좀 심각했다.

바람에 나무도 휘었고

의자와 테이블도 다 엎어졌다.

5km 비석

그래도 갈 길을 갑니다.

시내에 들어왔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거리인데 비를 신경 쓰며 걷다 보니 체감시간은 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la)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지이다. 예루살렘, 로마,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이며, 구시가지 전체가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도시에 도착하니 다른 순례자들도 한 두 명씩 보이기 시작한다.

비는 언제 그치려나

마지막까지 빨간차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이며 역시나 표지판 안내가 잘 되어있다.


여기오니 비 맞아도 너무 좋다.

비로부터는 완전히 해탈했다. 오면 오라지 뭐.


근데 내심 그쳤으면 좋겠다.

여기 주민들은 우산을 쓰고 다닌다.

수고했다 우비...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먼저 향한다.

뒤로 돌아가는 데 그 크기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드디어,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800km. 한 걸음 한 걸음, 34일 동안 걷고 또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그냥, 너무 좋았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아무리 폭풍이 몰아쳤어도, 그조차도 좋았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벅찼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그 어떤 성당보다 웅장했고, 화려했으며 내 시선을 압도했다.

도착한 이후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바흐레이를 만났다.

내가 순례길을 무리해서 하루 앞당긴 이유

너무 반가워서 보자마자 껴안았다.

계속 뒤돌아보게 되는 성당,

약간 꿈같기도 하고

먼저 성당 안을 잠깐 둘러보았다.

화려함 그 자체이다.

바흐레이가 나를 순례 인증서도 받는 곳으로 안내해 인증서도 받았다.

기념품 샵

바흐레이가 구입한 손녀들 이름

이 이름들이 브라질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름들인가? 여기 다 있는 게 신기했다.

산티아고 구시가지엔 순례길 목적지답게 기념품 상점이 군데군데 많다.

구시가지 구경 가는 길

옷, 기념품, 먹거리 상점들을 여러 군데 들러 구경했다.

아기 인형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바흐레이랑 나는 빵 터졌다.

과자 전문점 한편에 순례자들 흔적들이 잔뜩!

배고파서 과자가게에서 준 과자가 너무 맛있었다.

해산물이 유명한 갈리시아지방답게 해산물 요리하는 곳도 많이 보인다.

맛있는 식당을 알아보고 오픈 시간에 맞춰 왔다. 우리가 첫 번째 손님이었다.

갑자기 바흐레이 남편에게 영상통화가 와서 나도 인사했다. 인상이 너무 좋으시다. 아저씨 눈에서 바흐레이를 사랑하는 게 느껴졌고 부부금슬이 너무 좋아 보였다. 부럽네 부러워

비 맞아 젖었던 옷에 체온이 내려가고 있다. 나도 너무 춥고, 바흐레이도 어제 과음 이슈로 따뜻한 차를 선택했다.

갑자기 나에게 선물을 건네는 바흐레이

핸드폰으로 번역해서 나에게 선물의 의미를 알려주는 중.


내 생일인 11월에 해당하는 목걸이를 사서 주었는데 “이 목걸이를 볼 때마다 나를 기억해 줘.”라고 말했다.


너무 감동이에요...!!

선물은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봐야 제맛




우리는 따뜻한 홍합수프를 시켰다. 나는 원래 조개류가 비려서 좋아하지 않는데 너무 추워서 그냥 먹었다.

스테이크와 감자

레온에서 먹었던 스테이크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았다.

우리는 밥을 먹는 동안 우리가 처음 만난 첫날, 중간에 우연히 다시 만난 날, 또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만난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흐레이는 꼭 브라질에 오라고 말했다.

마지막 크레페 디저트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성당 깊은 안쪽, 많은 순례자들이 많은 순례자들이 고요히 머무는 그 장소에 나도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정말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인지는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유해 앞에 서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순례길을 선택해 걸어왔고, 그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품고 답을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단순한 종착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후 ZARA에 왔다.

바흐레이는 이후 포르투갈에 있는 친구네로 간다고 해서 입을 옷이 필요했다.

먹음직스러운 빵집에서 바흐레이 친구 남편 생일 케이크도 사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중

어느새 폭풍이 지나가고 하늘이 맑아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날씨가 맑아짐에 또 한 번 감사했다.

나는 이곳에서 2박을 할 예정이다. 시내와 좀 떨어져 있긴 했지만 시설은 꽤 괜찮았다.

벽에 그려진 그림에서 순례길의 역사가 느껴진다.

우린 이렇게 쉽게 오는데 그 옛날엔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을까

창문 밖으로 본 풍경

바흐레이는 친구들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중이다.

알베르게 앞 산책을 하는데 이 순간이 너무 이상했다.

오늘 새벽부터 폭풍을 뚫고 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하늘이 맑아졌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번역기로 돌렸다. 앞으로의 여정을 응원하고 꼭 만나자는 말을 나누며.

너무 아쉬워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나의 순례길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

에어 아모 바흐레이!

Eu amo o Varlei!



어느새 해는 넘어가는 중

다시 구시가지를 통해 성당으로 간다.

아이다와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했다.

빛을 받은 성당은 그 자태가 더욱 빛났다.

우리는 저녁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 미사에 참석한다.

미사시간

07:30 – 대성당 주제단

09:30 – 대성당 주제단

12:00 – 대성당 주제단

19:30 – 대성당 주제단

이 시간들은 매일 동일하게 유지되며, 특별한 변경 사항이 없는 한 적용된다고 한다.

미사를 마치고 간단한 간식을 사서 아이다의 알베르게로 가는 중

이곳에서 우연히 에밀리도 만나서 아이다, 에밀리와 수다를 떨었다.

아이다와도 이제 인사할 시간이다. 같이 걸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과 앞으로의 길에 대해 응원한다고 서로를 축복해 주었다. 특별히 내가 너무 아플 때 아이다가 나와 함께 해 주어 너무 고마웠다.

하루가 숨 가쁘고 정신없이 지나갔다.

돌아가는 알베르게 길

이제야 실감을 한다.

이 순례길 속 내가 어렴풋이 느낀 깨달음은

‘사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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