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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Sep 28. 2024

연결의 빛으로 '미분'하다

현재를 나누어 미래에 옮기다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친구들의 호흡이 있는 그곳에서 묘한 기대감이 생기며 수애가 생각하는 사랑이 희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떤 힘이든 혼자 있을 때의 견뎌냄보다 다수의 힘이 함께할 때 커지는 것처럼 사랑은 일상의 공기가 몽글몽글 뭉쳐 자꾸자꾸 커진다고.

->지난 화에 이어서


지난 시간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편견, 무지에서 오는 자신과 주변의 사물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수애는 문득, 자신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호흡하는 유기체일 뿐인데... 유전자의 이기심으로 자신이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니 고민할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괴롭기만 .


밤새 고민하며 뜬 눈으로 보낸 탓에 아침이 부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쫓기듯 시간을 거스르며 에너지와 싸웠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수애가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정신없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경옥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자신의 건강 문제로 방황하는 딸을 지켜보느라 경옥은 감정 표현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경옥은 외출하는 딸을 향해 환히 웃고 있었으나 그 미소에는 주변을 의식하거나 누구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고 잘 살아가길 희망한다는 기대를 담고 있었다. 수애는 엄마의 진심을 알아차렸는지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도망치듯 나왔다. 막상 밖으로 나와보니 아직 동아리 모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다. 도서관 주변 공원에서 생각과 생각보다 깊고 넓게 퍼져있는 감정을 추스르겠다고 마음먹었다. 돌고 돌았다. 돌다 멈췄다. 멈춰 서서 잔잔한 바람에 이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그곳에 햇살이 비추는 모습이 은총으로 와닿았다.


신인가, 자연인가. 분명 은총이었다. 오늘 잠시 수애가 느끼는 감격은 은총이었다.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수애는 증명할 수 없는 사실, 논리는 거짓이라고 생각해 왔다. 확신이 없었기에 믿지 못하는 건지, 믿지 않았기에 확신하지 못했던 건지. 그럴 때마다 수애는 말이 많아졌다. 한 문장, 한 번에 정리해서 말하지 못했다. 미사여구나 그것을 보충해 줄 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애는 허탈감에 다시는 껍데기를 채우려 내장까지 꺼내 파먹는 애씀 따위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눔이 깊어질수록 수애는 매 번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편치 않았다. 변하지 않는 삶을 걱정하는 일상은 쌓여만 간다. 최근 그녀는 자신의 자리, 좌표에 대해 더듬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고 프레임 밖으로 떨어져 나온 이방인인지, 그 안에서 좋든 싫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에 머물러 있는가." 감히 경계인이라는 말로 나를 대신해보고 싶다. 나눔과 단절이 아닌 양 극단을 연결하는 연결의 자리. 수애는 자신의 자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은 듯 맘이 편하다. 삶을 우리가 알고 있는 길고 긴 직선이나 도형으로 본다면 매 순간을 잘게 잘게 나눌 수 있다.


"그렇게 나누고 찾은 극한값을 특정 순간의 순간 기울기, '미분계수'라 하지. 알고 있겠지만 미분값은 극한값을 알아야 구할 수 있겠지. 극한값은 정확한 값이 아닌, 근삿값이야. 참값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그래서 미분을 할 때는 변화하는 양, 즉 증가량, 변화량이 필요하고 리미트(극한)를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거야. 여기서, 중요한 미분 가능성의 조건을 찾을 수 있어. 미분이 가능하려면 우리 인간의 삶처럼 그때의 함수는 연속이어야 한단다. 물론, 함수가 연속이 된다는 것은 함숫값이 정의되어야 하고 극한값이 존재하며 그 두 값이 같아야 한다는 것까지 모두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을까."


수애는 미분을 다시 정리해서 나누었고 우리 삶에 빗대어 말했다. '인간의 삶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귀하고 귀한 교집합 안의 교집합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삶을 떠올리며 수애는 수학은 인간의 삶, 인간이 속한 자연을 수학의 세상에 그대로 옮겨 두었구나 하고 그 순간까지 은총이라 생각했다. 친구들은 어느 때보다 깊은 눈을 하고 있으나 조용했다. 그 고요함이 더 큰 긴장감으로 수애에게 다가왔다.


도서관 교양교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친구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미분에 대해, 미분한다는 것에 대해 나누려고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좀 전의 긴장감을 바꿔보고 싶었는지 인간의 긴 삶 중 표본이 되는 주변 자연에서 만난 미분, 변화, 증가량을 친구들을 향해 소리 내었다. 고요함 한가운데서 그녀는 떨리는 큰소리로 읊었다. 부정적 감정으로 깊은 고요함을 표출했던 친구들은 수애가 낭송하는 '미분'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입은 꼭 다물지 못했고 눈빛 반짝였다.



높은 하늘과 나를 사이에 두고

물감을 풀어 채색된 구름이

하늘 가득 춤춘다


바삐 움직이다

빠르게 사라졌다


더 높고 청명한 하늘이 가을을 뽐내며

목청껏 노래한다

일상에 스민 가을을 선물이라며

미소 가득 치장해 건넨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무심했을까, 깊은 척했을까

경계인의 자리에서 나를 지키려 했던가


상처와 아픔은 표식 되었고

프레임 밖으로 밀려났다

이방인으로 내몰린 그들에게

관심은 내 한계였다


나를 경계인으로 몰고 간

프레임 안의 연대, 밖의 소수


소심하게 나를 말한다, 소리 내어 본다

경계의 자리에서 이제 나는 그들을 연결한다

여전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조금은 강하게


무지와 두려움에서 오는 편견을

깨부수며 조금은 용기 있게 다가간다


콘크리트 경계에서 꽃이 피어나듯

그러리라 마음을 옮겨본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연결하리라


소외된, 구석으로 몰린 이방인이라 불리는

그들의 소리를 전하리라

무관심으로 지냈고

깊은 척했던

시간 사이사이로.



고요함에 주변 공원에서 들리는 다양한 새소리만이 적막함을 더 깊이 전했다. 수애는 아이들의 적나라한 추적에 흔들렸다. 이미 쫓기고 있었다. 어쩌면 벌써 각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윤이가 말없이 재촉했다. 영성이 미소로 잔인하게 그녀를 채근했다. 한결의 맑은 눈동자는 수애가 도서관으로 걸음 할 때부터 기대와 함께 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투명한 호기로움이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수애는 소리 안에 덮인 무지에서 나온 편견을 뚜렷하게 찾았다. 미분은 가능한 많이 잘게 잘게 미세하게 나눠야 한다. 그것 안에 이미 극한을 담고 있다. 삶이라는 긴 여정 가운데 표본으로 나타난 특정한 한 순간의 순간 기울기가 바로 미분계수다. 그 미분한 삶의 특별한 순간의 기울기를 읊어 친구들에게 묻는다. 오늘 수애가 느끼고 주변을 돌아보며 질서라고 합리화했던 일상을 던지며.


인간이 속한 어디서나 질서로 위장한 강약, 상하의 계급이 존재했다.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시작된 자연의 질서일까. 차별하고 나누는 건 인간의 본성일까. 강하고 센 곳에서 힘으로 정복하고 누르는 건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본능일까


과거부터 현재를 이어 미래에 닿기까지


우리 인간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 자연에 거스르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고, 인간이 저지른 과오를 정당한 것처럼 합리화했다.


수애는 경계인의 자리를 고수해 왔다. 회피의 자리로 그녀가 선택한 자리, 지금의 좌표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책을 읽고 함께 나누며 무지에서 얕게라도 깨어 양 집단에 잠시 다가간다. '미분'으로 친구들과 나눈 지속적인 다짐과 마음이 쌓이고 쌓여 지금 이 순간을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옮겨본다. 섬광처럼 피어난 연결의 힘이 그곳에서는 빛나리라는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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