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의 소명

산재변호사 되는 여정에서

by 뉴욕 산재변호사

내가 코헨 & 시걸(Cohen & Siegel)에 근무하던 시절, 사수처럼 따르던 포르투나토 콜라브로(Fortunato Collabro) 변호사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산재변호사는 이야기꾼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렸지만, 수많은 산업재해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고 치열한 법정 싸움을 거치면서 그 한 문장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명제는 김앤배(김&배)에서 김봉준 변호사님께 "한 장의 그림으로 사건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은 산재변호사가 단순한 법률 전문가를 넘어 이야기꾼이자 화가여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산업재해 사건의 본질은 숫자로만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고통과 상실에 있다. 사고는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며,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 경제적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문제들을 야기한다. 의뢰인은 병명과 진단서, 그리고 복잡한 법률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아프고 억울한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를 찾아온다. 이때 변호사는 단순히 법 조항을 나열하고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이 모든 파편화된 사실들을 엮어 하나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해야 한다.


콜라브로 변호사님은 강조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뢰인의 사건을 건조한 법적 서류 뭉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이 시작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이라고.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처럼, 사고의 경위, 부상의 심각성, 그로 인해 파생된 삶의 변화, 치료 과정의 고통, 그리고 현재 의뢰인이 겪고 있는 절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판사나 배심원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인간적인 감정의 울림을 동반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김봉준 변호사님의 '한 장의 그림'이라는 가르침이 더해진다. 복잡하고 방대한 사건 자료를 단순히 줄줄이 읊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핵심과 의뢰인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하고 간결한 이미지로 압축해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사건의 가장 중요한 지점들을 선별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히 걷어내어, 판사나 배심원이 단시간 내에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의뢰인의 고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통찰력의 과정이다. 이야기가 서사적 흐름을 제공한다면, 한 장의 그림은 그 서사의 가장 강력한 핵심 이미지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처럼 그림을 그리듯 사건을 구조화하는 능력은 산재변호사가 복잡한 사실 관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국 '산재변호사는 이야기꾼'이라는 콜라브로 변호사님의 말씀과 '한 장의 그림으로 사건을 떠올려야 한다'는 김봉준 변호사님의 가르침은 법률 지식과 분석력은 기본이며, 그 위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능력,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서사력과 시각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의뢰인의 상처와 아픔을 단순히 처리해야 할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기 위한 '이야기'이자 '그림'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산재변호사의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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