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예측, 변호사의 역할
근로 중 상해를 당한 근로자가 변호사를 처음 만날 때, 그리고 그 근로자가 변호사와 수임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근로자와 변호사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성립됩니다. 바로 의뢰인-변호사의 비밀스런 관계인데, 그 수임계약서는 산재보험 사건의 탄생부터 종결까지 주관할 권력을 변호사에게 위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그 사건의 주인은 여전히 의뢰인이지만, 수임계약서를 통해 변호사는 그 사건의 생명을 주관할 권력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수임계약서를 통해 부여받은 권력은 사건의 종결까지 그 권력을 유지할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요. 심리학자 존 프렌치와 버트램 레이븐은 권력이 유지될 수 있는 총 여섯 가지 이유를 제안한 바 있는데, 이들의 설명은 변호사 권력 유지의 이유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1. 강제성 (변호사는 필요시 의뢰인의 선택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2. 보상 (변호사는 케이스를 통해 의뢰인에게 합법적인 보상을 받도록 돕습니다.)
3. 정당성 (변호사는 히어링에서 의뢰인의 입이 되어 법률대리할 권한을 갖습니다. 의뢰인은 참고인 자격으로 히어링에 출석할 뿐, 발언의 권한은 변호사에게 부여됩니다.)
4. 참고성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참고할 만한 법률지식과 경험을 제공하여, 최적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5. 전문성 (의뢰인은 변호사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그 법률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6. 정보력 (의뢰인은 자신의 사건에 있어 변호사가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변호사들은 위 여섯가지 이유를 통해 수임계약서를 통해 부여받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프렌치와 레이븐은 비록 여섯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했지만, 여섯 가지 이유는 결국 모두 ‘정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보다 월등한 정보력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케이스에 대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권력이란 사실 정보의 방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전문가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의뢰인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 의뢰인들의 단골 질문이 바로 “내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정보력으로 당신들의 사건의 미래를 예측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 시절부터 가져왔던 주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오늘 사냥은 허탕이었는데, 내일 사냥은 성공적일까?” “앞에 절벽이 보이는데, 한발 앞으로 더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눈 앞에 사슴이 보이는데, 손에 잡은 돌을 던지면 어디로 날아갈까?” "사슴 한마리를 잡아 그녀에게 구애하려 하는데, 그녀는 내 사랑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다른 놈이 이미 그녀를 차지했을까?" 등등 생존과 의식주, 그리고 번식 관련 미래 예측이 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뇌과학들에 따르면, 진화적으로 오래된 중뇌와 간뇌 등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가장 최근 만들어진 대뇌는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가장 최적화된 결정을 오늘의 나를 통해 실행하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뇌피질의 가장 핵심적 기능은 미래 예측이라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도 많습니다.
미래 예측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가능합니다. 만약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가정한다면, 우선 과거 경험이나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재 사건은 우리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변수로 점철되는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들로 가득합니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가이드는 될 수 있겠지만, 미래는 여전히 반복성과 우연성의 끊임없는 조합인 것입니다.
미래 예측을 시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아웃소싱, 즉 변호사 고용입니다. 과거 경험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면, 내가 갖고 있는 사건과 유사한 경우를 여러번 경험한 전문가에게 내 판단을 위탁해 보는 것이지요. 맹수로 가득한 정글을 처음 경험하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 위험 요소들이지만, 이미 그 정글을 여러번 경험한 이들에게는 기억 가능한 과거의 사건들입니다. 내 사건의 미래를 스스로 예측하긴 어렵지만, 내 사건이 겪을 미래를 이미 경험한 전문가의 과거를 통해 내 케이스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보는 것이지요. 아이의 미래는 어른의 과거이고, 전문가의 과거는 초보자의 미래란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래는 우연성이 도사리고 있는만큼, 아웃소싱은 완벽한 미래 예측이 아닌, 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