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중 상해를 당한 근로자가 변호사를 처음 만날 때, 그리고 그 근로자가 변호사와 수임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근로자와 변호사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성립됩니다. 바로 의뢰인-변호사의 비밀스러운 관계입니다. 저는 의뢰인이 저로부터 그러한 ‘공식적 관계’를 기대한다고 하며 수임계약서에 서명하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의뢰인은 저로부터 그러한 공식적 관계 이상을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은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제가 뻔히 근무를 안 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제게 카톡 문자와 전화를 걸어오시는 의뢰인, 보험사에서 지급하는 대체 임금(lost wage)이 렌트비 내기도 버겁다고 하소연하시는 의뢰인, 일을 복귀하고 싶어도 못하는 몸상태인 까닭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시는 의뢰인, 보험사에 대한 불평을 저를 통해 하시는 의뢰인... 이 모든 분들은 제가 로스쿨에서 배운 변호사 모델을 초과한, 확장된 변호사 모델을 원하시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확장된 변호사 모델이란 다름 아닌 ‘공감하는 친구 관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친구를 필요로 하고, 그렇게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영장류들도 사회적 집단에서 생활합니다. 표범과 같은 뾰족한 이빨도, 코뿔소나 코끼리와 같은 두꺼운 피부도, 독수리와 같은 날개도 없어 나약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 바로 영장류입니다. 이런 태생적 한계로 인해 영장류는 혼자서 생활하기보다는 집단을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영장류는 혼자서 살아남기에 너무 나약하기에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 온 것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영장류는 그 종류마다 이루고 사는 집단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라는 분은 영장류 집단의 크기가 뇌의 크기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뇌의 크기가 클수록 집단의 크기가 증가한다는 얘기인데요. 예를 들어, 뇌가 상대적으로 작은 명주원숭이는 10마리 내외의 무리와 함께 살지만, 뇌가 큰 침팬지들은 거의 100마리에 육박하는 구성원들과 함께 복잡한 사회 구조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영장류 집단에서 얻은 데이터를 인간의 뇌 사이즈에 적용해 보면,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집단 구성원의 수는 약 150명 정도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원래 인간은 150명 정도 수의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이 적절하다는 뜻인데요. 대기업만 보더라도 150명을 넘어가는 조직 단위는 없다는 것도 이 이론을 방증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영장류 집단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장류마다 인지적 회계 (cognitive accounting)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던바 교수의 설명입니다. 인지적 회계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기억함으로써 집단 내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나에게 득이된 경우는 플러스 (+)를, 나에게 해가 된 경우는 마이너스 (-)를 하는 등 머릿속에 회계 장부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복잡한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영장류는 이러한 인지적 회계에 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득이 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를 구별할 수 있고, 나에게 득이 되는 무리, 즉 친구에 집중하는 것, 그렇지 않은 무리와는 멀리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뇌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구성원들 간의 과거 관계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뇌를 갖고 있는 영장류인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150명 정도의 관계를 기억하고 회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바로 ‘던바의 수’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회계를 하기 위해서는 통화(currency), 즉 거래 기준이 필요합니다. 영장류들의 상호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통화는 서로 간의 ‘이 잡아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먹고 자고 사냥하는 시간 외 하루의 대부분을 서로의 이 잡아주기로 소일하는 원숭이들. 이미 다 잡아 더 이상 있지도 않은 이를 잡아주는 것은 서로 잡아주는 가상의 이의 숫자를 통해 인지적 회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오늘 이를 이만큼 잡아 주었으니, 나도 다음에 너에게 그만큼 이를 잡아줄게"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반면, 인간의 인지적 회계단위는 ‘공감’입니다. 우리가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는 것은 바로 원숭이의 이 잡아주기와 비견될 수 있습니다. 나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었으냐 아니냐로 친한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가 구분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그 친구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었는데, 그 사람이 나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으면 섭섭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커피숍에서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하는 얘기들이 특별난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가운데, 서로 자기 얘기를 신나게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들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대화를 녹취해서 들어보면 정보적 가치는 거의 없다는 것이 여러 심리학적 연구 결과입니다. 인간에게 대화는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고, 나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친구들입니다. "수다를 떨면서" 얻어지는 친구와의 공감은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확신이 필요한 나 자신을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강력한 동기이자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상해 시건에서 의뢰인들이 제게 하시는 여러 가지 질문도 결국 “내 사건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와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의뢰인들은 표면상 정답이 무엇인지를 물어오시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당신의 몸과 마음의 상처,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관계의 질곡에 대한 공감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의뢰인들을 위해 제가 갖고 있는 변호사 모형을 과감히 확장하여 기꺼이 ‘공감하는 친구’가 되겠노라고 결심에 결심을 더하지만, 제 자신의 던바의 수에 갇혀있는 한계를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