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인지

익숙한 사건, 낯설게 바라보기

by 뉴욕 산재변호사

첨단문명을 자랑하는 현세 인류이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뇌는 20만 년 전 출현했던 수렵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뇌와 비교해 볼 때 크게 진화한 것이 없다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네 발로 다닐 때보다 뇌에 공급해야 할 혈액에 부담을 더 느끼게 되었지요. 중력에 역행하여 뇌까지 혈액을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뇌에 대한 혈액 공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간은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생존전략을 채택합니다. 이 때문에,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는 것만큼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란 뜻입니다. 만약 하나하나 생각해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 프로세스였다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날카로운 송곳니, 빠른 발을 갖고 있지 않았던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에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인지적 구두쇠였기 때문에 먹이, 은신처, 짝짓기 등 생존 관련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고 생존에 성공했습니다.


더불어, 생존 관련 의사 판단을 빠르게 해야 하던 인간의 뇌는 '메타인지'라고 하는, '생각을 보는 생각'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메타인지는 “나에게 익숙한 것 = 내가 아는 것”이란 도식을 사용합니다. 옛날 유명 코미디언이 "척 보면 압니다"란 유행어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이 메타인지를 코믹하게 표현한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도 메타인지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가족들은 동분서주하지만, 엄마를 찾기 위해 엄마에 관한 정보를 모으던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익숙하게 여기던 엄마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토록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엄마, 하지만, "엄마를 너무 몰랐다"고 가족들은 결국 고백하지요.


메타인지 덕분에 최대한 생각을 덜하며 생존 관련 판단을 빠르게 할 수 있었던 현세 인류는 생존에 성공하였습니다. 메타인지는 인간이 컴퓨터와 다른 사고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떤 정보를 검색할 때, 컴퓨터는 하드웨어에 있는 모든 자료를 검색하여 그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를 출력해 냅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내게 익숙한가?”를 질문함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내가 그 정보를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를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아주대 교수는 방송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곧잘 던지고는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 이름을 아시나요?”, “과테말라에서 11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아시나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겠지요. 재미있게도 우리는 모두 양쪽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속도가 같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경우는 다릅니다. “과테말라에서 11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실제는 알고 있는지”를 검색하기 위해 컴퓨터는 하드웨어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를 다 찾아보고 난 뒤 “그렇다”, “아니다”를 출력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컴퓨터의 대답은 확실히 느려집니다.


메타인지는 현세 인류를 생존하도록 한 일등공신이지만, 우리는 곧잘 메타인지가 던지는 유혹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익숙하면 “안다”라고 판단해 버리는 바람에 좀 더 자세히 면밀하게 자료를 들여다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산재보험을 전문으로 하는 저는 항상 이 메타 인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내게 익숙한 케이스, 내게 익숙한 판례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알고 있다”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 사건을 새로운 관점에서 “낯설게”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욕 산재보험법의 기본 원칙은 “사고 부위로 인정된 신체 부위에 관한 치료만이 치료비가 지급된다”입니다. 다시 말해, 사고 부위로 인정받지 아니한 신체 부위에 관한 치료는 보험사에게 치료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 다룬 사건 중에 오른쪽 어깨가 부상 부위로 아직 인정받지 아니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료사는 치료를 허가한다는 보험사의 약속을 믿고 상당한 정도의 치료를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보험사는 입장을 변경하여 오른쪽 어깨는 소멸시효 2년이 지난 뒤 주장된 신체 부위이므로 사고 관련 부위로 인정하지 아니하며 치료비를 드릴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이 오른쪽 어깨의 치료건은 바로 재판이 걸렸습니다. 6개월 그리고 3번의 공판 결과, 저는 다음의 판결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본 사건에서 오른쪽 어깨는 2년 소멸시효에 걸리므로 부상 부위로 인정하지 아니함. 그러나 치료사는 보험사의 약속을 믿고 치료를 진행하였으므로 보험사는 치료비 지급할 것.”


만약 제가 “사고 부위로 인정된 신체 부위에 관한 치료만이 치료비가 지급된다”는 기본 원칙에만 매달렸다면 이런 판결을 받아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메타 인지의 함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낯설게 이 케이스를 바라보고자 했고, 재판 직전 불현듯 로스쿨에서 배웠던 일반계약법 이론이 떠올랐습니다. 일반 계약법에 따르면 “상대방의 약속에 의지하여 상당한 정도의 일을 수행한 경우, 서명된 계약서가 없다 하더라도 양자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는 법리가 있습니다. 바로 이 법리를 이용하여, 비록 오른쪽 어깨가 부상 부위로는 인정하지 아니하나, 보험사의 치료비 제공 약속을 믿고 치료를 진행한 치료사가 치료비를 받도록 한 판결을 이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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