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그림자

투사와 존재의 의미

by 뉴욕 산재변호사

대학 시절, 한성열 심리학과 교수님의 '성숙한 삶의 심리학' 강의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떤 동물의 교미를 보고 교수님의 친구분이 "좋겠지?"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그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아하는 건 당신일세. 우리는 이것을 **투사(Projection)**라고 부른다네." 타인의 행동이나 외부 현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사실 우리 내면의 욕구나 감정의 반영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스릴러 '계시록'을 보면서 심리학적 '투사(Projection)' 개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개척교회 담임 목사로서 현실에 좌절하던 성민찬 목사가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고 믿게 되는 과정과,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형사 연희가 실종 사건을 파고들며 각자의 믿음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성민찬 목사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그는 단죄와 심판에 대한 강한 내적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마음이 하늘이나 암석 등 외부의 평범한 대상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보이는 문양을 발견하게 하고, 나아가 이를 절대적인 진리라 확신하며 자신의 믿음대로 심판을 집행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생각, 감정, 욕구를 외부 세계의 대상이나 현상에 덧씌워 해석하는 투사의 전형적인 예시다. 성민찬 목사에게 세상은 객관적인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투영되어 '계시'라는 형태로 재구성되는 매개체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며, 때로는 그 해석이 현실 자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투사적 그림 검사의 원리와 유사하다. 투사적 그림 검사는 그림을 통해 개인의 심리 상태나 성격 특성을 파악하는 심리 검사 기법이다. 검사자는 그림의 내용, 형태, 구성 등을 분석하여 개인의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유추한다. 피험자가 무심코 그린 그림 안에 자신의 내면세계가 투영되는 것이다. 성민찬 목사에게 하늘의 문양은 마치 투사적 그림 검사의 '그림'과 같다. 그의 눈에는 자신이 가진 '단죄와 심판'이라는 내면의 믿음이 그 문양에 투영되어 '계시'로 해석된 것이다.


결국, 교수님의 에피소드와 넷플릭스의 '계시록', 그리고 투사적 그림 검사의 공통점은 바로 **'투사'**다. 즉,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의 현상이나 대상에 투영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물이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물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 방식이 결정된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의 경험, 신념, 그리고 내면의 상태라는 필터를 거친다. 따라서 진정한 이해는 외부의 대상을 넘어, 그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의 해석이 곧 사물의 존재 방식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편견 없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깊이 소통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투사'를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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