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은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다. <올드보이>(2003)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신세계>(2013), <명량>(2014)을 통해 대중성과 흥행성까지 입증하며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연기는 하나의 장르로 불릴 만큼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구축해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에게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난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라는 간결한 대답은 단순한 겸손이나 심리적 부담감을 넘어선 깊은 연기 철학을 담고 있다. 이는 '롤모델'이라는 명예가 오히려 자신의 본질적인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지각하고 내린 현명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민식은 남을 의식하는 순간 비극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답변은 '롤모델'이나 '멘토'라는 사회적 역할보다는 자신의 본업인 '배우'라는 정체성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에게 연기는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종의 수행(修行)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연기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며, 그 외의 부수적인 역할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장인의 고집이 담겨 있다. 실제로 그는 다수의 인터뷰에서 연기의 어려움과 끝없는 탐구에 대해 토로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발언은 "나 또한 여전히 부족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는 배우일 뿐인데, 누군가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로버트 그린의 책 <마스터리(Mastery)>에서 이야기하는 '대가(大家)의 경지'와 맥을 같이한다. 그린은 진정한 대가들이 외부의 명성이나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수행'의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최민식의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라는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는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연기라는 본질적인 행위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동반한다. 롤모델은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넘어, 완벽한 인격과 사생활을 갖춰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받는다.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 특히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최민식의 연기에는 거칠고 투박한 에너지가 핵심인데, 롤모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이러한 자유로운 연기 시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또한, 롤모델은 자신의 일에 더해 타인의 성장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가적인 역할까지 부여받을 수 있다. 최민식은 이러한 부차적인 책임감에 얽매이기보다, 그저 좋은 연기를 선보이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민식의 답변은 '롤모델'이라는 명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일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시선과 기대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배우로서의 순수한 열정과 창조성이 훼손될 수 있음을 지각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말로 가르치는 멘토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본'으로서 최민식을 택한 것이 아닐까? 굳이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그의 훌륭한 작품들과 연기를 보며 수많은 후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배우고 성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모습이 그를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롤모델 중 한 명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