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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윤 Sep 29. 2024

민족주의는 낡은 관념이 되었다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하지 않는다. 민족은  개념이 되었다.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민족이라는 개념은 벗어낼 때가 되었다. 민족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개념이다. 전 인류는 모두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 하나의 민족 구성원으로서 불행하거나 희생당하면 그 사람은 민족 구성원 지위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개인은 자유인으로서 평등하고 천부적인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민족주의는 집단이 개인을 착취하는 구조 만든다.


 전 전통음악 강의에서 우연히 아래랑의 실체에 대한 듣게 되었다. 전통 노래라고 믿고 있던 경기 아리랑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기 현대 음악에서 파생된 노래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아리랑이라는 노래는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멜로디는 단절되어 1920년 상업 영화에서 OST로 새로 제작되었다.) 근대 민족주의는 20세기에 와서 확립되었으며, 민족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와 결탁해 하나의 상품 되기도 한다. 국가와 사회를 향한 애국심과 열정이 정치인과 자본가의 배를 불려주게 된다.


전통이라는 것도 근본을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그 문화가 단절되어 역사가 짧기도 하나, 민속음악이라는 것도 조선 후기 때야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전수자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시대에 맞춰 변형되어 왔다. 하나의 전통, 관습, 민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원형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물론 민족성과 역사 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한국인에게 민족성은 하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위에 인류의 보편성이 존재한다. 민족이라는 배타적인 개념은 편견과 전체주의를 낳을 수 있다. 쉽게 말해 민족이 밥을 먹여주는가? 최근에 정부는 R&D 예산을 줄였다. 기업과 연구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공계 연구자들은 수많은 부를 벌어오지만, 대우는 다른 나라에 비해 좋지 않다. 일부는 애국심이라는 사명을 갖고 남는다. 그 결과 여전히 노동자(연구자)들은 소모품으로 다뤄진다. 인적자원이라는 말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경쟁력을 확보한다.


배타적인 민족주의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물결은 단일 민족 단일 국가라는 개념을 희석시켰다. 많은 선진국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많은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들을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 민족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매몰되어 이들을 배척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족보다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는 말은 백 년 전 격언이다. 인간성을 실현하고 국민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민족주의가 이에 반한다면, 그때는 역사를 잊어야 할 때가 될 것이다. 미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과거의 낡은 유산을 지켜야 하는가? 또한 민족성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세대를 위한 일인가? 현대인에게는 민족보다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국가는 민족성을 강조하며 이들을 희생시키기보다는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 급진적인 우익 세력이 추구하는 민족사의 정당한 청산을 무시하는 외교적 행위를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 20세기에 민족주의와 보편적 윤리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단일 민족적 세계관을 부정한다고 해서 과거의 민족운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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