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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Aug 11. 2022

웃자고 보낸 문자에 바퀴벌레가 답장으로 왔다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그의 죽음 이후, 이 세상의 노동 현실은 얼마나 나아갔나를 알아보려 인터넷을 유람하다가 김 군과 이한빛 PD, 김용균 씨와 이선호 씨를 다시 만났다. 신문 기사에서 한 번쯤 보았던 이름들. 아들을, 형을 잃고 남겨진 가족들은 '다시는' (*<다시는>은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의 이름이다.) 누군가 일하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대하고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다가 김태규 씨의 누나가 나왔다. 김태규 씨는 2019년, 공사 현장 승강기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남동생을 먼저 보낸 누나는 옷장의 옷을 다 버렸다고 한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아직 동생을 안 보냈다는 마음으로 상복 같은 검은색 옷만 입는다고 말한다. 매일이 장례식인 것이다. 동생을 잃은 누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누군가의 누나이기에 더 아린 마음이 들었던 걸까.


사실 나와 내 동생은 그리 애틋한 사이는 아니다. 서로 살갑지도, 그렇다고 서로에게 왈왈 거리며 늘 다투는 남매도 아니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어쩌면 남보다도 서로를 모르는 무미건조한 사이다. 그럼에도, 그날 저녁엔 동생 생각이 났다.


  내 동생은 선박 만드는 것을 배우는 공학도였다. 때에 맞춰 군입대를 했고, 군대에서 책 읽기와 글쓰기와의 찐한 만남을 했다. 그리고 국문학도가 되었다. 모두가 어리석다고 했다. 아빠는 개똥철학이라 했다. 보란 듯이 동생은 자신이 쓴 글로 몇 번의 수상을 하며 인정받았고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더 비범한 글재주가 있어야 했던 것일까, 공대가 아닌 인문대 졸업장을 들고 세상으로 나온 동생은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동생이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고향집 하나. 그곳에는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말 한마디를 나누지 않는 부모님이 있다. 탈옥을 꿈꾸는 죄수의 마음이었으라, 갑자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1년에 두어 번, 집에 내려가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은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저 가끔 치킨을 사 먹으라며 용돈 몇만 원을 주는 것으로 누나 노릇을 했다. 꿈도 미래도, 뭐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답답한 대한민국 청년을 고향집에 가면 볼 수 있었다. 어두운 기운의 동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동생이 생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떠나면 어쩌지. 이런 문장을 쓰는 것도 터부처럼 느껴져 나는 이 위에다 침을 퉤퉤 뱉을 것이다.


그렇게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동생에게도 탈옥의 기회가 왔다. 동생의 글솜씨가 밥그릇을 물고 왔다. 작가는 아니었다. 읽기와 쓰기가 자기 삶에 미친 영향을 담은 감성적인 자기소개서가 어느 국어 단과학원 원장의 마음에  것이었다. 뜬금없지만 동생은 그렇게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주부터 동생은 학부모의 불안감을 조장해서 돈을 버는  같다는 불편함을 말했다. 입시학원 강사가 문학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를 꿈꿨던 국문학도가 지금껏 문학작품을 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일 테다. 복잡함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런 소리 말고, 일단 3개월은 다녀보라는 답장을 보내버렸다. 그게 가장 최근의 연락이었다.


안부인사도 없이 유튜브에서 봤던 웃긴 영상의 링크를 보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농담 몇 마디 나누며 안부나 물을 생각이었다.


"핑구 알재? 우리 어릴 때 비디오 보던 거.

 이거 진짜 웃김 ㅋㅋㅋㅋㅋ"


다음 날에야 온 답장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고시원에 바퀴벌레가 계속 나옴. 천장에 있는 틈으로 들어오나 봐."


고시원, 바퀴벌레. 두 단어만으로 동생의 상황이 그려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바퀴벌레 퇴치제를 추천해주는 것으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해버렸다. 동생이 바라는 반응은 아니었으리라는 걸 잘 안다. 알면서도 안 하는 나는 영 별로인 누나다.


잘 버텨줘, 제발.


다행히도 동생의 카톡 프로필에는 "나는 내 맘을 지킬 거요!"라는 생에 대한 의지가 느껴지는 문구가 적혀있다. 내가 아는 것보다 내 동생은 강할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바퀴벌레가 나오는 방에 살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일상에서 보람 한 조각, 행복 한 조각 주워 올리는 순간이 있길, 마음으로 빌어본다. 동생에겐 차마 말 못 할 나의 소망. 간지러운 말은 못 하는 바보 누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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