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2일 쓰다.
동부아파트 201동 907호. 거실에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둘, 화장실이 둘 딸린 평범한 구조의 32평짜리 집. 이 집에는 Y의 가족이 살았다. Y와 그녀의 남편, 그녀의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의 어머니. 다섯 식구가 비좁지 않게 살 수 있는 이 집은 Y에게 그냥 집 한 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다.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Y의 꿈이었다. 궁상맞다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등쌀에도 꿋꿋이 남편이 벌어온 돈을 아끼고 모았다. 딸의 작은 손을 잡고, 갓난 아들을 업고 걸어 다니며 버스비라도 아껴 한 푼을 더 모았던 Y다. 그렇게 해서 산 집이 바로 이 집이다. 처음 이사오던 날, 거실 마룻바닥을 몇 번이나 쓸고 닦았는지 모른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걸레질을 하며 마음으로 빌었다. '이 집에선 우리 가족이 웃을 일만 있게 해 주세요.' Y의 소원은 무리 없이 이루어져 가는 듯했다. 여전히 알뜰살뜰 아끼고 모아, 살림을 조금씩 불려 가는 재미를 보았고, Y의 두 아이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챙기고 돌본 만큼 밝고, 건강하고 덤으로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으로 자라 갔다.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오래도록 이 공간이 우리 가족을 품어주는 보금자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돈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J는 Y의 첫째 딸이다. J에게 동부아파트 201동 907호는 자신이 기억하는 첫 번째 주소이다.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낸 이곳은 J에게 많은 추억을 선물했다. 제 것의 롤러브레이드와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무리 지어 소독차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기억, 아파트 주차장 입구의 경사진 흰색 구조물에 올라서 미끄럼을 타던 기억, 일요일 아침마다 함께 동네 뒷산에 올라가는 어린이 조기 산악회를 만들었던 일은 지금 떠올려도 마음에 훈기가 올라오는 유년시절에 어울리는 기억들이다.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고,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가며, 생일과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엔 동생과 깜짝 파티를 준비해 부모님을 놀라게 해주던 행복한 일상의 기억들은 그 아파트에 살 때까지만 누리던 것들이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가족다운 일상은 모두 그 아파트를 떠날 때 함께 두고 나왔다.
아빠에겐 우리의 201동 907호가 그저 자신이 소유한 재산 목록 중 하나에 불과했을까. 내가 열일곱 살이 되던 어느 날, 가족과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아빠는 아파트를 팔았다. 영문도 모른 채로 오랜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좀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생기는 차액이 필요했을 거란 건 조금 더 자란 후에 생각할 수 있었다. 한 번으론 부족했는지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아파트를 한 번 더 팔았다. 이번엔 들어가는 입구가 꽤 으스스한 낡고 낮은 아파트였다. 그 낡고 낮은 아파트에서도 몇 달 후에 나가야 했다. 그렇게 옆 동네의 월세 주택에 정착했다. 엄마가 쌓아온 희망이 무너지는 시간이었고, 가족 간의 대화를 잃어가는 시간이었고, 가난의 습관을 들이는 시간이었다. 통보받는 이사를 여러 번 거치고 사는 곳을 계속 옮겨다닌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집이란 부동산 그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지독할 만큼 선명하게 가르쳐주었다. Y가 품어서 이루었다 빼앗긴 꿈을 지금의 나도 꾸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언제 사라질까 불안하지 않아도 될 안전한 보금자리 하나, 딱 하나를 가지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