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글쓰기로 이끈 작가와의 만남
일주일 중 퇴근길의 발걸음이 가장 무거운 날은 목요일이다. 내일이 주말이라는 희망도 없는 목요일. 하지만 이번 주 목요일의 퇴근길 발걸음은 가벼웠다. 되려 설렜다. 퇴근 후에 은유 작가님과 만나는 강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유 작가님이 가진 세상에 대한 시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글에 존경과 응원을 보내는 팬이기에 작가님의 실물 영접이 강의 신청의 주목적이었다. 실물 영접에 친필 사인까지 받았으니 목적은 넘치게 이뤘다. 거기에 더해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빼꼼 돋아났다. 은유 작가님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까지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도 여러 권 쓰셨기에 강의에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 기억에 의존해서 쓰기 때문에 다소 변형이 있을 수 있다.)
Q.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시곤 하는데, 작가가 아니라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 작가는 책을 한 권만 써도 될 수 있다. 쓰는 사람은 꾸준히 글을 쓰는 의미가 더 드러난다.
Q. 슬픔과 고통의 감정이 담긴 글이 많다. 그 이유는?
- 슬픔은 기쁨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다. 기쁠 땐 그냥 SNS에 자랑하면 된다.
Q. 좋은 글이란?
- 반대로 나쁜 글은 추상적인 단어, 관념어, 개념어가 난무하는 진부하고 공회전하는 글. 살아있는 단어로 상황에 들어가서 써야 한다. 눈에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으면 그 글은 실패한 글이다. 글을 읽고 글쓴이를 만나고 싶어지는 글. 사람의 고유성, 사회적 좌표와 위치성이 보이는 글이 좋은 글.
그중에서도 내 머리를 댕- 울리는 문장을 들었다. 작가님의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 나오는 문장이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네, 저는 위 문장에서 '쥐며느리'를 맡고 있습니다. 100일 글쓰기로 글쓰기에 입문하여 글쓰기의 유익을 경험한 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합격 메일에 기뻐했던 게 어언 3년 전, 이제는 "작가님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발행 독촉 알림만 받는 쥐며느리가 되었다. 살 만해서, 별일 없이 삶이 순항하고 있어서, 쓰지 않았다. 과연 그랬을까?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해 보면 별일 없지만은 않았다. 별일 때문에 드는 감정과 생각들을 적절한 단어를 골라 잇고 문장을 만들고 글을 짓는 과정이 나에겐 숙제처럼 느껴졌기에 자꾸만 미루었다. 은유 작가님은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안 쓰는 고통이 더 클 때 글을 쓰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안 쓰는 고통을 회피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쓰고 싶은 글감들이 우수수수수 떠올랐다. 주로 생각만 해도 울컥해지는 상처들과 고민들. 은유 작가님의 책 제목 <해방의 밤>처럼, 쓰지 않고는 마음에 남아 맴돌고 나를 억누르는 마음을 토해내는 글 쓰는 밤들은 나에게 해방을 선사해 줄까? 이 글은 쥐며느리에서 쥐를 떼보겠다는 출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