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은 퍽 외롭다.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 거기에 늦은 퇴근으로 지친 날. 이런 날에는 현관문을 열고 터덜터덜 들어오는 나를 미소로 반겨주며 두 팔로 나를 감싸 안고 가만히 토닥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도 고생했지, 그리고 정말 축하해. 잘했다." 그리고 미리 차려진 따뜻한 밥상을 함께 나누며 조잘조잘 나누는 오늘 하루.
...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함께 늦은 퇴근을 한 옆 선생님은 '엄마, 언제 오냐'는 자녀의 메시지에
"이제 들어가서 언제 또 밥을 하냐, 나는 힘도 없다." 며 하소연하셨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까, 외로이 어두운 집을 스스로 밝히는 발걸음이 무거울까. 아마 가지지 못한 서로의 삶을 부러워하며 각자의 발걸음이 무겁다고 토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1등급 수상을 확정 지은 경사스러운 날에 함께 기쁨을 나누며 축배를 들 사람이 고프다. 쌍따봉을 높이 세우고 나에게 다가와 수상을 축하해 주시는 교장, 교감 선생님과 '내가 다 뿌듯하다'며 축하해 주는 친구들의 카톡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딸아 훌륭하다ㅎㅎ 힘난다.'
폴짝폴짝 날 듯이 뛰어다니는 토끼 이모티콘과 함께 온 엄마의 카톡은 여전히 나의 성취로 효도를 할 수 있음에 잠시 뿌듯하긴 했지만 나를 채우기보단 엄마를 채워주었다. 아무 눈치를 보지 않고, 계산하지 않는 확실한 내 편, 안전하고 편안한 사람과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 김기태 작가의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딱, 내 마음이다 싶은 문장을 건져냈다.
가끔은 식탁 위에서 지글지글이나 보글보글하는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 혼자 살며 중국집에선 온전한 요리 대신 반쪽짜리 탕볶밥을 시켜 먹는 주인공의 바람이다. 단순히 음식에 대한 소망이라기보단 사람과 함께 나누는 온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도 오늘 그것이 필요하다. 오늘 내 식탁엔 지글지글도 보글보글도 아닌 칭따오 한 캔과 마라탕이 놓였다.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먹어!"로 끝난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를 따라 크림새우까지 주문했다. 서너 조각 나오는 사이드 메뉴가 아니라 만 오천 원짜리 온전한 크림새우였다. 경사스러운 나의 오늘은 미처 소화되지 않은 마라탕과 맥주, 크림새우가 꺼억 꺼억 내뿜는 가스 소리로 마무리된다. 음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함을 어찌할 줄 모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