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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육아일기] 활발한 엄마여도, 우울증은 온다

지금도 남편은 “너 그때 산후우울증이었어”로 추억한다

by 비엔나의 미리작가 Feb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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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MBTI는 할 때마다 INFP 가 나오지만, 주변에서는 I 가 나왔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누가 봐도 언니(너)는 E 야!!라고 할 정도로

활발하고 말 많은 성격.

테스트를 해 보면 I와 E가 반반으로 나오긴 한다.ㅎㅎ 딱 48% 대 52% 뭐 이런 식이랄까.

체력도 어디 가서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스냅 촬영일을 하면서

새벽기차를 타고 할슈타트에 스냅 찍으러 갔다가, 당일치기로 비엔나에 돌아와서

그다음 날 아침 일찍 비엔나 시내에서 스냅 찍으러 가고, 오후에 피아노 레슨을 가고?

"언니, 어디예요?" 물어보면 "나 할슈타트 가는 기차여" 할 때마다

비엔나 홍길동 아니고 허길동이네.라는 말도 들었던 사람인지라,

체력=정신력으로 버틴다!!라는 마인드로 살았던 나.


(이래저래 갈아타고 하면, 비엔나에서 할슈타트는 대략 4-5시간가량이 걸리는데

기차를 착각한 적도 있어 한번은 할슈타트에서 비엔나 오는데 야간기차 갈아타고 대기하고 해서 8시간 만에 집에 온 적도 있었다. 후후.)

미니구미를 제왕절개로 낳고, 외부음식 반입이 안되던 상황에서 "집에 가서 미역국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3박 4일 만에 퇴원한 - 토요일 자정에 아기를 낳고, 화요일 오전에 퇴원을 했다!! 놀라운 나의 회복력이란..- 사실 평소에도 잘 아프지 않고, 아파도 어찌어찌 비타민 털어 넣으며 금세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회복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던 나에게 닥친 고난의 시기.

갓난아기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꼬물꼬물 손만 움직여도 입만 벌려도 주변에서 탄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엄마의 호르몬... 임신 기간에도 사실 호르몬의 노예로 살았던 내게 출산 후 호르몬의 변화는 정말 급격해졌다.

게다가 12월, 1월. 유럽에서 가장 해가 짧을 시기. 8시에도 어둑어둑한 햇볕이 3시만 지나도 점점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가 4시면 깜깜해지는 시기.

볼일 없어도 무작정 시내로 나가서 카페 들어가서 커피 마시고 나오고,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자 라는 사람에게

24시간 방에, 침대에, 말 하나 통하지 않는 - 이건 외국어보다 더 심하다!!!- 꼬물이와 갇힘 아닌 갇힘 생활을 하자니 점점 정신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미니구미는 나로서도 "이야기만 들었던" 안 먹는 아기여서

보통 다른 엄마들은, 젖을 물리거나, 젖병을 한번 딱 물려주면 꿀꺽꿀꺽 거리며 쭉쭉 먹는데 (지금도, 아들만큼 안 먹는 아기는 아직까지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안 자는 아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대비만 세웠던 내게... 안 먹는 아기와의 24시간은 그야말로 고문 같았다.

오죽하면 "애기가 배가 고파서 울지 않고 지쳐 잠들 수 있느냐"를 매일같이 검색해 볼 정도였으니.

몸무게는 아주 조금씩 늘고 있고, (매번 의사는 몸무게 확인할 때마다 잘 크고 있다고 안심시켰으나 또래나 반년 더 늦게 태어난 아가들보다도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건,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게다가 영상통화로 쏟아지는 “왜 안 먹냐” “어떻게든 먹여라” “왜 그렇게 먹이냐 “… 육아 수유 자세란 자세는 다 찾아서, 피시립을 정독하고, 눕수든 뭐든 먹기만 하면 세상 감사합니다였던 상황이라, 어떻게는 먹여준다 하면 영혼이라도 팔았을 정신상태였다)

남편은 새벽같이 나가서 최대한 일을 하고 점심이 지나서 퇴근을 했더랬지만 24시간 나를 케어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빠가 없으니 조용히 울지 말고 잠만 자자 하던 신생아가 아니지 않는가..?

제왕까지 하고 미역국 먹겠다고 최대한 일찍 퇴원한 상황이었지만, 컵라면 한 젓가락만 떠도 어찌 알고 울어대는 아가 덕에 바나나 세 개로 배 채울 때는 기본. 게다가 매일같이 울리는 “오늘 애기 뭐 하니~”. 보통이었다면 전화와 카톡을 달고 살았지만 그때만큼은 어디 까마득한 숲 속 작은 집으로 도망가고 싶던 나에게 세상만사가 귀찮았던 때.


먹지도 않고, 아기는 울지, 비엔나의 밤은 빨리 찾아오지, 창밖은 항상 흐리지, 뒤집어 놓은 전화기는 계속 울려대지,

다 먹어주지도 않을게 분명한 분유병을 흔들다가 맞은편 건물의 불 들어온 창가로 그대로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때를 기억하면, 남편과 나는 지금도 의견이 착, 붙는다. “우리, 둘째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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