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읽던 시절
그날은 어느 가을 일요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막 다시 태어난듯, 내 앞에는 삶이 온전한 상태로 놓여 있었다. 따뜻한 날이 며칠 계속된 후 아침 나절의 차가운 안개가 정오가 돼서야 갰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절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다시 창조할 수 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6, 게르망트 쪽2, 2부 시작, 61쪽
8월 26일 나의 일기
나는 여름을 딱히 기다린 적이 없었다. 벌써 8월 말, 처서도 지나고 여름은 끝나간다.
가을이 좋다. 가을은 차분하고 언제나 새롭다. 가을이 올 때가 되면 나는 움직임이 거세진다.
언제나 그렇듯, 상반기는 방황했고 여름은 주체할 수 없었고. 가을이 되어야 무언가를 시작한다.
1년이 지났고 기억하지 않으려해도 나에게 남은 기억은, 더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 비밀로 남았다.
그리고 가을이 되었다. 다시 시작이다.
변하지 않으면서도 나아가고 있다. 차근차근 경험하고 자라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이 곧 내가 되어 있었고 함부로 재단하던 것들은 결국 나를 둘러싸고 말한다.
거기까지냐고.
9월 16일 나의 일기
묻어놓는다.
잘못한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행해지던 마음들과 행동들에 지레 겁먹는 내가 아직 있다.
그러면 작아지게 만든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인 것을 안다. 한없이 초라하고 못난 사람이 있다.
기억 속에는 여러 가지가 뒤죽박죽이지만.
가끔 잠재된 나의 기억이 새어나와 불안하고 무서울 때가 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회복한다.
이 마음을 굳이 다시 꺼내어 볼 필요가 있을까?
정리하여 따지고, 내가 당한 고통을 구체화하고 수치화하여 크기를 잴 수 있을까?
그럴 만큼 힘든가?
그냥 학교 일이 힘들다.
매일 아이들과 씨름하는 기분에 하루하루 지치고 다시 그날분의 회복을 해야 한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부분을 수용하고 나름대로 헤쳐 나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렇게 지나갈 일이란 걸 의식한다.
그러다보면 조금은 허무해진다. 쌓아지는 건 있을까? 버티듯 한 해를 보내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배운 것을 다음 해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또 새로운 아이를 만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이 들다가 한없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힘들다, 내뱉는 순간 몰려오는 여러 가지들은 사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내가 이렇게 힘들었다며 내보이기 위해 가져오는 훈장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흉터처럼.
베를린의 광장에서 알콜중독자가 사람들에게 울며 내보였던 다리의 흉터들.
아무 까닭도 모른 채 우리는 목격해버린다. 그의 상처들을 상징하는 손에 든 보드카, 눈물, 분노, 흉터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기 맘대로 상처를 내보이고는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기엔, 그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그렇다면 나 역시 작은 상처가 났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넘어질지 모른다는 걸 감수하고 기꺼이 나가서 놀고 있는 참이다. 내 방식은 흉터를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다.
다시는 이렇게 넘어지진 말아야지. 넘어지더라도 똑같은 곳을 또 다치지 말고 가능하면 조심하자.
다치면? 할 수 없지. 어차피 나을텐데. 흉터 남으면 뭐 어때. 흉하면 뭐 어때. 난 괜찮은데.
그래도 위험한 곳은 아예 가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나는 어느새 괜찮아져 있고 또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을 조금 더 많이 만들고 있는 점도 기특하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가을이다. 하늘이 맑고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는 너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