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 속의 소금같이, 허공 속의 외침같이, 사랑 속의 통일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습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든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에 들듯 제 속으로 돌아올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 보세요.>
...
인간들은 남이 자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루가 자신이 고양이인 것에 만족해하듯이 인간들은 자신이 인간인 것에 만족해한다. 그러나 물루의 생각은 옳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중반에 오면서, 이제 이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나와 고양이는 2019년에 처음 만났다.
이미 짝꿍이 홀로 키우고 있던 고양이와 낯설게 인사를 나눴다.
처음 보자마자 반할 수밖에 없는 귀여움이었지만,
까끌한 혀와 깜짝 놀라 튀어나갈 때의 민첩한 행동, 발톱 등이 내게 너무 낯설었다.
더불어 큰 난관이 있었는데,
바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전엔 고양이를 가까이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털, 또는 침. 이 둘을 조심해야 했다.
처음 증상은 재채기, 그리고 발진. 제일 고통스러운 건 눈까지 간지럽고 충혈된다는 점이었다.
심한 날은 거의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제일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하얗고 짧아 뭉툭한 털들을 맘껏 쓰다듬고 싶은 욕구였다.
보고 싶으니 가지만, 만지기 금지령을 당한 시절이 있었다.
정 만지고 싶으면 장갑을 끼고 만지기도 했다.
장갑을 낀 내 손길도 좋다고 머리를 들이미는 그 모습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장갑으로 인해 털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아도, 그 둥글고 따스한 감촉이 둔탁하게 내 손에 부딪쳐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신기하게도 버티니 점점 나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다. 매일 아침 눈 뜨고 밤에 다시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것은 인간 승리이다.
그렇게 큰 사랑과 욕구, 욕망을 느끼게 해 준 내 고양이. 그리고 그 이상의 안정과 삶의 위안, 기쁨을 알려준 내 고양이가 작년 11월 곁을 떠날 뻔했다.
원래 심장병이 흔한 종이기에 꾸준히 검진을 받았고 여름에도 눈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간 김에 초음파를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상이 없던 심장이 11월 갑자기 어느 날, 아픈 기색도 없이
뒷다리 마비와 함께 쾅. 하고.. 우리에게 이상을 알렸다.
그날 내가 먼저 출근을 했었고, 출장을 가는 날이었던 짝꿍이 이미 집을 나간 뒤 일이 벌어졌다면,
하필이면 저녁 술약속이 있던 내가 밤늦게 혼자 귀가해서 차가운 고양이를 마주했다면.
그런 끔찍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고양이의 혈전이 녹아 뒷다리가 돌아오고, 폐수종으로 인해 약을 주며 지켜보던 일주일 동안
매일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보러 가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빈집에 있는 게 두려웠다.
기적처럼 상황이 나아져 집에는 오게 되었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 두자니 한계가 있었기에 불안함이 커도 결정을 내려야만 했고 결국 집에 데려왔다.
약을 하루에 두 번씩 시간을 맞춰 먹이고, 차트를 적으며 지낸다.
계획했던 여행을 모두 취소하고, 약속은 그 사이에 다녀온다.
외출한 사이에도 홈캠을 연결한 어플을 통해 종종 확인하게 된다.
물론 몇 번 폐에 물이 찬 게 의심되어 응급 처치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곁에 있다.
2월이 된 지금도 곁에 있는 것이다.
고양이가 아닌 무엇도 될 수 있는 나의...
직장에서도 바깥에서도
내 옷과 물건에는 고양이 털이 묻어있기 십상이라,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만 같이 일상 곳곳에서 인사하듯 나오는 털.
갑자기 다이어리의 아직 열지 않은 페이지에서, 핸드폰 케이스와 핸드폰 사이에서..
너의 따뜻한 몸과 숨을 내가 언제까지 어루만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의 존재는 늘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 수 있다.
나의 욕심만으로는 너를 온전히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인간의 부족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