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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지 Dec 29. 2024

고양이의 눈

노란 우주와 파란 우주

고양이의 두 우주를 바라본다.

미묘하게 같은 듯 다른 모양의 우주


왼쪽 눈에는 노란 은하가,

오른 눈에는 푸른 은하가 무수히 많은 별을 품고 있다.


밥 달라는 표정


오른 눈의 푸른 우주는 조금 더 가로로 긴, 암흑 물질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동그란 우주 테두리 밖에는 마찬가지로 흰자위가 있다.

아주 가끔 눈을 조금 뜬 채로 자고 있을 땐 흰자위가 잘 보인다.


정확한 명칭은 odd eye 오드 아이

양쪽 홍채의 색깔이 서로 다른 눈


신비로운 느낌을 주며,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가끔 등장하는 소재이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는 신비롭게 느껴져 계속 바라보았던 너의 우주.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만을 설명하며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첫눈에 두 우주를 발견하고 놀란다.


아 맞아요, 색이 달라요.라고 뒤늦게 설명한다.

어떤 빛 아래에서는 두 색이 같게 보이기도 한다.

이젠 내게 너의 하나하나가 툭 불거져 나오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고,

더 이상 나에게 생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의식하지 않고 있으나,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너의 눈.




옆에서 바라보면 마치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투명한 모양으로 자리에 박혀있다.

사람의 눈은 눈꺼풀 사이로 조금만 보이기에 평면에 가깝지만,

너의 눈은 둥근 표면이 마치 유리구슬처럼 모양이 나 있다.

툭하면 터질 것만 같은, 비눗방울처럼 약해 보이고 소중한 모양이다.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기도 했다. 한참 동안을.

그 투명한 유리구슬이 도로록 굴러가는 모습을.

대체 어떻게 이 작은 몸 안에서 이 아름다운 유리구슬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지.

그렇게 느낄 때면, 아차 싶은 기분이 든다. 너는 인형이 아니거늘.



밝은 빛 아래에서 유독 색이 잘 보인다.

동공이 작아지면 홍채는 더 노랗고 파랗다.

갸름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마저 경이로운 느낌을 가져다준다.


고양이들도 저마다의 생김새가 다르다.


물론 각자 고양이는 그 각자에게

하나하나 말하고 싶은 곳이 넘쳐나고

정분 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눈이야말로, 너의 그 앙증맞은 생김새에 큰 역할을 한다고 자부한다.

아몬드 모양의 눈은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듯하나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새로, 고양이 치고 순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가끔은 속된 말로 우리끼리 멍청한 얼굴, 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고는 웃음 짓는다.

애정을 듬뿍 담은 표현이다.

멍하거나 놀라거나, 사랑을 갈구하는 그 표정이

어찌나 맹하고 순해 보이는지. 앙칼지다는 표현과 도통 어울리지 않는 너이다.

생김새와 어울리게 사람을 좋아하고, 하악대는 법이 한 번도 없던 너의 성격이 표정에 드러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표정도 있다. 꽤나 불만 있어 보이는데..

사실은 별 의미 없는 표정이다.

졸리거나 나른할 때는 눈꺼풀이 내려오고,

대개 무심한 표정이 된다.



그런 너의 눈에

여름이 지날 즈음 갑자기 하얀 안개가 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결국 수술을 했고,

아직도 완전히 걷히지 않은 채,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변한다.

너의 아름다운 두 우주를 기억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있다.

우리 삶에 어떤 안개가 끼더라도, 우주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이,

지금의 너의 눈에 낀 안개도, 그저 하나의 사실로 자리 잡고 그 사실에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발견하고 말을 건네면

'우리 아이의 눈 색이 달랐지, 참.' 하고 새삼 깨닫듯이

처음엔 가슴이 아파 자세히 보지 못했던 너의 안개 낀 눈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에게서 생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변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닌 듯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아름다운 눈, 그 안의 너를 깊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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