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헤어질 결심> 속 서래처럼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
가장 많이 보게 될 모습이 바로 잠든 모습이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
그리고 가만히 그 곁에서 숨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져서,
그만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생각을 비밀스레 하곤 했다.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따라 하다가, 좋아서 시를 적기도 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을 위해 서래가 곁을 지키며 잠이 들도록 도와주던 장면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내 숨소리를 들어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이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
지금은 이 대사가 마치 고양이가 내게 건네는 말 같다.
고양이는 곤히 잔다.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 눈을 뜨기도 하지만 집처럼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에서는 금세 다시 잠에 든다.
내 고양이는 코가 짧고 납작하다.
그러다 보니 콧구멍도 매우 작다.
그래서 조금만 추워져도 코가 부어 꽉 막힌다.
숨 쉬기가 불편해진 고양이는 자주 킁킁댄다.
그렇게 잠든 아이는 삐이이- 소리가 나는 숨소리를 낸다. 아주 좁은 길을 겨우겨우 빠져나오는 소리이다.
힘겹게 내는 그 소리는 좁은 동굴을 나오며 증폭된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숨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점점 커지는 소리가 이내 주전자 물 끓는 소리와 같아진다. 삐이이익
그 소리는 꽤나 우스꽝스럽지만, 숨을 편히 못 쉬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맘이 불편하다.
그래서 가열식 가습기를 사서 열심히 틀고, 방 온도를 따스하게 유지한다.
다른 고양이보다 숨소리가 큰 내 고양이 곁에서 잠을 자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숨소리를 따라 쉬게 된다.
마치 해준처럼. 그럼 금방 잠이 온다. 내 온기를 느끼면 더 파고드는 고양이와 함께 잠이 든다.
고양이는 매우 유연해서 본인의 몸을 돌돌 말고 잔다.
마치 암모나이트와 같은 모습이다.
그때 앞다리와 뒷다리를 포개는 모습도,
자기의 다리를 베고 자는 모습도 참 귀여운 모양새다.
평소라면 잘 내놓지 않는 핑크 젤리가 천장을 보게 되는데 이때다 싶어 꾹꾹 누른다.
축 늘어진 머리와 귀를 보다가, 곁에서 조용히 이름을 부르면 희미하게 꼬리를 움직이며 대답한다.
그게 재밌어서 자꾸 부르면 꼬리를 세게 휘두르기도 한다.
큰 눈을 살짝 뜨고 자기도 한다. 그래서 잠이 든 줄 모를 때도 있는 것이다.
입을 벌리고 오물거리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고양이도 입술이 있다.
가끔은 잠꼬대처럼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감은 채로 벌떡 일어나 본인의 몸을 그루밍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깜짝 놀라고 만다.
내가 놀라든 말든 잠이 깬 고양이는 일어나 기지개를 한껏 켜고 물을 마시러 가곤 한다.
품 안에 안고 자다가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 일쑤이고
분명 자는 걸 보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어느새 내 머리를 누르고 있든지, 등 뒤에 누워서 내 베개를 빼앗아 베고 있는 고양이씨.
총총 걸어 내 곁으로 누웠을 모양을 상상하니 그저 소중하다.
따뜻한 내 품에 파고드는 고양이를 보면, 더 따뜻하게 해주고만 싶다.
귀로 전해지는 심장 박동을 듣다 보면
나의 파동과 만나고 그러면 이내 빠르게 잠이 든다.
나의 안정제, 수면제
네가 있는 곳이 나의 안식처이며, 숨을 곳이다.
나는 고양이 앞에서 역시 고양이가 된다.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 다른 부분을 옮긴다.
이놈은 한참씩이나 가장 좋은 자리를 물색하여 마땅한 곳을 정하고 나면 몸을 웅크리는 즉시 반쯤 잠이 든다. 그러는가 하면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다. 마치 잠드는 각단계를 계산이라도 하는 눈치다……. 이제 그는 행복한 꿈으로 접어든다.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앉아서 새 한 마리를 노려보는 꿈이다. 그는 새를 가까이에 붙들어두고 싶어 한다. 그 새가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색깔이 산뜻해서가 아니라 통통하고 묵직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물루는 새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심정이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물루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새는 뒷걸음을 친다. 물루는 새를 유혹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헛수고다. 마침내 새는 훌쩍 날아가 버린다.
고양이는 반쯤 잠이 깨어 앓는 소리를 내면서 기지개를 켠다. 또 새 잠이 들기 시작한다. 보다 가볍고 보다 상쾌한 잠, 도회지 여인들이 오전 아홉 시부터 열한 시 사이에 자는 것 같은 그런 잠이 들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바로 이때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 좋아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도록 귀 뒤로 손을 넣고 쓸어주는 것이 좋다.
…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