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서 새벽까지
<들어가기 전에>
고양이에 대한 탁월한 글이 하나 있다. 바로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라는 글이다.
그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 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여기의 ‘어떤 존재들’에는 연인, 반려동물, 자식 등 어떤 것을 가져다 놔도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내 고양이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사랑의 말을 내놓기로 한다. 적절한 순간에.
고양이는 본인의 넓은 성 안에서 잠자는 곳을 몇 곳 정해두고 있다.
대개는 혼자 자기를 선호하지만, 날이 춥거나 기대고 싶은 날에는 인간 사이에서 잔다.
얌전히 자는 것은 드물고, 꼭 인간의 머리 위를 감싸고 자리를 잡기 때문에 다음날 인간은 목에 담이 걸리기 일쑤다. 하지만 함께 체온을 나누는 일은 꽤 달콤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충하는 고양이들을 보고 장 그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사실 이 성에서 고양이가 대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매우 적다. 적어도 그르니에는 정원이 딸린 저택에 살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이 성은 방 몇 개와 거실, 화장실만이 있으며 문 밖으로 나가도 차가운 복도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본다. 결국 모든 것은 땅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니, 대자연과 접촉하고 있는 것이리라.
가만히 몸을 중력에 맡기고 뉘일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정기의 근원이요, 아늑한 품이다.
나의 고양이는 주로 거실의 탁자 밑 의자에 웅크려 잔다. 원목 의자에 장착된 패브릭 쿠션이 꽤 포근하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자기 시작한 그는 꼭 새벽이 한창일 때 일어나 어슬렁거린다.
일단 자느라 마른 목을 물로 축이고,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본다.
고양이는 모래만 두면 알아서 본인의 배설물을 잘 은닉한다. 특히 고양이의 소변은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에 자연에서 본인의 냄새를 감추던 본능대로 모래로 잘 덮는 것이다. 흔히 ‘감자’라고 부르는 게 만들어진다. 모래에 붙어 응고된 소변은 마치 흙 속의 감자처럼 캐지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깨지지 않도록 살살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 섣부른 손길에 감자가 깨지는 순간, 감자는 파편화되어 한 번에 담을 수 없도록 드넓은 모래에 섞여 버린다. 그렇게 섞인 모래는 얼마 가지 않아 고양이에게 청결하지 못한 느낌을 주게 되고, 우리 고양이처럼 예민한 친구들은 거기에 누길 거부하게 된다. 그 결과는? 다른 곳에 싼다는 말이다. 덮을 수도 없는 곳. 그러니 각별히 주의해서 감자를 캐야 한다.
고양이는 볼일을 본 후 잘 봤다는 의미로 바로 옆에 있는 스크래처를 긁는다. 스크래처는 다양한 곳에 다양한 모양으로 두는 게 좋다. 벽지가 뜯기고 싶지 않다면.
일련의 볼일이 끝난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 혼자 이리저리 다니고, 괜히 장난감도 건드려보다가 결국 밥을 찾는다. 지난날 본인이 다 먹은 것은 잊고. 새벽에는 밥이 없기 마련이다.
여기서부터의 루틴은 우리도 알 수 있다. 바로 우리를 깨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깨우면 본인의 밥이 나온다는 것을 아는 이 영리한 고양이는, 본인만의 방법으로 인간을 깨운다.
우리 고양이의 주특기는 핥기이다. 촉촉한 혀로 애정을 담아 핥는 게 아니다. 까끌한 혀로 사정없이 얼굴을 핥는다. 아프다. 그 시각이 새벽 4시 근처이다.
결국 이 부름을 무시하지 못한 날은 일어나 밥을 주고, 개운하지 않게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얄밉게도 우리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아주 잘 자고 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일어나면 그 따뜻한 체온이 남은 자리에 기어코 찾아가 눕는다.
우리가 다시 눕지 못하게 만드니, 기상에는 큰 도움이 된다.
이후에는 이전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다. 햇빛에 일광욕을 한다.
특히 로봇청소기가 활동하는 낮 12시부터는 확실히 깨어난다. 친해지는 법 없이 매일 경계한다.
그 시각 또 청소기를 피해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간다.
그리고 또 기분이 좋아져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을 실컷 물어뜯고, 나이 어린 고양이라면 우다다 뛴다.
오늘은 어디서 낮잠을 자볼까?
숨숨집에 들어갈까? 아님 박스에 들어가 볼까?
아직도 인간의 체온이 남아있는 침대에 몸을 돌돌 말아 웅크려 있기도 하다.
여름에는 차가운 협탁 위, 겨울에는 이불 위.
한참 자다가 또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간다. 스크래처도 착실하게 긁는다.
우리가 올 때를 아는 고양이는 이미 깨어있다.
아마도 고양이의 신체에는 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루틴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번호키를 누르는 순간 이미 목소리가 들린다.
니양-! 니양-!
혼난 나는 서둘러 들어간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고개를 들어보면 이미 중문 앞에 야차같이 서 있다.
예쁜 눈을 치켜뜨고 세모입으로 나를 부른다.
“감히 이제 오냐옹!!”이라고 말하는 게 틀림없다. 늘 이 시간에 와도.
그러면 어서 가방을 안전한 곳에 두고, 옷장에 못 들어오도록 들어가서 환복을 하고,
손발을 깨끗이 씻고 만져줘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불호령을 듣게 된다.
5초에 다섯 번 정도의 큰 호통이 화장실 너머로 들린다. 이웃집에 들릴까 무서울 정도이다.
모든 게 준비되면 얼른 바닥에 앉아 본인의 머리를 부딪치며 돌진하는 고양이를
쓰다듬어야 한다.
매우 사랑스럽게.
볼을 비벼주고, 정수리부터 목 허리까지 연신 쓰다듬고, 꼬리 위 엉덩이는 팡팡 두들겨 준다.
팡팡 두들겨주면 점점 상체는 바닥에 눕혀지고 엉덩이는 높이 들린다. 우리가 아는 그 고양이 자세가 나온다.
그렇게 계속 두들겨주면 못 이기고 결국 옆으로 바닥에 누워버린다. 그러면 배를 만져준다.
배를 만지면 안 되는 고양이도 있지만 우리 고양이는 상관없다. 갸르릉, 골골골, 골골골
강아지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에 만족하니 다행이다. 10분이 채 안되어 갈길을 간다.
그러나 지치는 날에도 봐주는 법은 없다.
결국 그런 날이면 인간은 냅다 같이 드러눕는다. 가끔 그렇게 잠들기도 하는 것이다.
잠을 이겨내고 충실히 임무를 다하면,
고양이는 소리를 지르느라 혹사한 목을 다시 축이고,
이제 어서 화장실을 치우지 않으면 큰 코를 다치리란 눈빛을 보낸다.
쌓인 감자와 맛동산을 캐고 나면 바로 화장실에 들어가신다.
특히 나의 고양이는 꽤나 청결에 예민하여, 바로바로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보통 화장실을 두 개 이상 겸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만 쓴다. 이유를 알고 싶다. 정말로.
모든 임무를 다하고 나서 인간 밥을 차리고 있으면 본인도 무언가 줄까 하여 어슬렁댄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 발 밑에 와서 무릎에 올려달라 애교를 부린다.
몇 번 거절하고 나면 그제야 본인의 밥을 먹으러 간다.
그렇게 밥도 먹고 쓰다듬도 받고 화장실도 잘 다녀오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온다.
일을 더 하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잔다.
어떤 날은 놀아달라고 애교를 더 부리기도 한다.
무시하면 연신 핥아댄다. 그러면 사냥 놀이를 해준다.
요새는 늙어서 그런지 사냥놀이를 하시지는 않더라.
평화와 함께 새벽이 어김없이 도래한다.
충실하게 하루 일과를 보낸 고양이와
육체는 지쳤지만 고양이로 인하여 충만해진 인간이
함께 잠을 청한다.
몇 시간 뒤 고양이는 먼저 깰 것이다.
그럼에도 영원같은 잠을 자는 고양이를 보며
인간은 깊은 잠에 빠진다. 깰 것은 잊고.
그와 함께 순간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