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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앤 라이프가 구분이 되나요?

어느 날 유명CEO가 이 질문을 내 눈앞에서 툭 던졌다

몇 년 전 내가 다니던 다국적 기업의 본사의 어느 사업을 총괄하는 유명 CEO가 한국지사에 방문하였다. 나는 그분의 한국 일정 중 직원들과의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통상 본사의 높은 분이 오면, 외부 행사에 이어서 마지막 일정으로 한국 직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참석자들 간의 오가는 대화가 자연스러울지, 분위기가 서먹하지 않을지 온통 걱정뿐이었다. 그 높은 양반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간담회에 참석한 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할리 없겠지만, 혹시 엉뚱한 질문이라도 나와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면 두고두고 한국지사의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국에 방문한 그 최고경영자의 한국에서의 일정표는 십 분 단위로 짜져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만나는 사람들도 순차적으로 수십 명씩 되었다. 당시는 잘 나가던 사업분야의 글로벌 총책임자였고, 다소 퉁명스러운 영국인이었고, 직선적이고, 냉정하고, 사업 추진력이 무서운 분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나는 매우 긴장했다.   


한국 방문일정의 마지막으로 이윽고 열댓 명의 젊은 직원들과 그분은 회의실에 둘러앉아 간담회를 시작했다. 초반에 아주 열정적으로 지금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방향에 대해 그분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어느덧 간담회가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이었다. 사실 질문 순서 등은 이미 각본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젊은 직원이 마지막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질문은 한국에 오는 높은 분들과 간담화를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었다.


"워크 앤 라이프 발란스를 잘 관리하시는 비결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사실 이 질문은 간담회가 이 질문으로 마무리가 된다는 어떤 암묵적인 시그널 같은 것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한 바로는, 높은 분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얼마나 자기가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자기 계발에 노력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는지 적당한 자기 자랑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면 직원들은 존경과 경이감이 넘치는 눈빛을 보내며 훈훈하게 기념사진을 끝으로 간담회를 마무리하였다. 그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그날 그만 이 예상은 깨져버렸다.   


간담회의 진행을 맡았던 나는 이미 공항으로 이동하는 의전차량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높은 분은 기념사진을 끝으로 박수를 받으며 공항으로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은 그분은 갑자기 얼음땡이 되었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얼음땡이 되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에 그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워크 앤 라이프가 구분이 잘 되나요? 난 안되는데"


모두들 한 5초 동안은 침도 삼키지 못하고 정적이 흐르는 것 같았다. 순간 난 속으로 말했다. '아.... 망했다."


이 분의 한국 방문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나면, 관련자들은 모두 짧은 휴가를 가려고 했었다. 이 행사만 잘 끝내자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순간 이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망했다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곳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뇌세포를 총동원해서 이 분이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비유적 표현을 하는 건지,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주려고 이러는 건지 등등 뭔가를 감지하기 위하여 초당 수백 번의 뇌 회로를 연기 나도록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몇 초가 흘렀다.


그분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걸 굳이 구분하려고 하는 것이 더 힘들지 않나요?"


다시 그분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요.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죠. 나는 그냥 내가 일을 하던지, 쉬던지, 뭘 하든지 그냥 그 시간을 좋아해요. 출장도 많이 다니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지만, 그냥 주워진 그때그때의 시간마다 최선을 다해요. 출장에서 돌아가서 내일도 제 아이의 축구시합에 참석할 거고요"


이 분의 인간적인 솔직한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역시 몇 초가 흘렀다. 왠지 찔러도 피 한방을 나오지 않을 이 로봇 같은 사람이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슬그머니 공감을 하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그냥 저는 이게 일이다. 이게 내 시간이다 굳이 구분을 하려 하지 않아요. 그냥 그때 그때마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그걸 구분하려고 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입니다" 


이 날 이후에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나는 그분이 그때 왜 그런 말을 그때 하필 했을까에 대해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듯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은 그런 질문을 한 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때 그분에게도 그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것이 아니었나 지금에서야 짐작해 본다.


주변에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위하여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분들의 용기와 도전에 물론 박수를 보낸다. 나 역시도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과감하게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한 경험이 몇 번이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싸워야 했고, 정말 다행이게도 결과는 좋았다.


그 시간의 성격은 내가 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나 스스로가 행복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요즘에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을 볼 때, 그걸 구분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현실에서는 힘들고, 오히려 명확한 선을 그을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그냥 바쁘면 바쁜 대로, 여유가 있으면 여유가 있는 대로 그 자체의 내 삶을 인정하자는 의미였다. 내 삶의 질에 대해 자꾸 스스로 평가를 하고, 선을 긋고, 점수를 매기는 순간부터 점점 더 불행해져 간다는 의미였다.


누구나 정신없이 바쁘게만 사는 시기가 있고, 또 여유 있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느 쪽도 다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시간이다. 그걸 밸런스라는 제목으로 스스로 '저울질'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밸런스라는 것은 어느 한쪽이 부족해지면서 균형이 깨지는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런데 나 자신이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비록 하루에 극히 제한된 시간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시간에서 얻는 만족이 크다면?  하루의 대부분을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보다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매일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내게 주어지는 내 시간이 얼마이건 간에 충분히 나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가 지금 사는 모습을 좋게 평가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밸런스가 아닐까?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것(work)이 자신의 원래 생활(Life)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우리의 인생을 흑백논리로만 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자신에게 따지고 물어볼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대답을 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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