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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ji berry Jan 16. 2023

왜 너는 기자해?

기자의 하루를 기록합니다.

VI.  끝내 담지 못한 참사 그 이후  



[트라우마(Trauma)]

1. 요약. 일반적인 스트레스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이고 압도적인 경험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건을 의미한다. 트라우마는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없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심각한 부상이 따르는 경험이며, '재난'은 대표적인 트라우마 사건 중 하나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울음소리가 귀에 멤돌았다. 그리곤 잊혀지지 않았다"


2022년10월30일 새벽.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유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택시에서 내린 뒤 검안증을 들고 펑펑 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병원 정문에서부터 장례식장 입구까지 고작 100m도 되지 않는 거리. 자식을 잃은 슬픔에 몸을 채 가누지 못한 그녀는 몇 번이고 길가에 주저 앉았다. 가족과 자식, 친구와 연인을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전달받다보니 나조차 마음이 일렁여 한동안 매일 울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열심히 일은 하고 있지만 잘하는 일 같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수도 없이 내보냈던 내 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희생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는 기사마저도 댓글들로 인해 유족들에게 또다른 생채기를 냈다. 그렇기에 다짐했다. 꼭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이들에 대한 위로의 기사를 쓰기로 말이다.  


다음은, 참사 그 이후 여전히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는 이태원 참사에 관한 글이다. 사정상 기사화 되진 못했지만, 국가적 참사 이후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은 이들에게 큰 흉터로 남아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장동환씨의 인터뷰 모습)


“애진이 아버님 당분간 TV는 안 보시는게 좋겠어요”   

  

그래 아물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연일보도 되자 가족협의회 간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장동환씨(52)에게 전화했다. 동환씨는 보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른 아침 무심코 튼 TV 속 ‘이태원 압사사고 발생...사상자 300명 넘어’ 뉴스를 보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가 지끈거렸어요.” 그는 몸이 기억 한다 답했다. “흔히 꿈속에서 악몽을 꾸듯이...딱 그날도 그랬어요.”      


2022년 10월30일 그렇게 그는 한동안 꾸지 않았던 8년 전 악몽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동환씨 딸과 달리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 딸의 친구는 여전히 꿈속에서 그에게 구조요청을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사정을 듣고 동환씨가 직접 돈을 보태주면서까지 딸과 함께 수학여행을 보냈던 그 아이다.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 동환씨는 한동안 또 눈물을 머금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감정은 여전했고 가시지 않은 슬픔에 숨까지 헐떡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다음날 아침 곧장 그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했던 녹사평 분향소를 빨리 가야겠어요.” 그렇게 버스를 대절해서 곧장 서울로 향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도착하자 동환씨의 눈시울은 곧장 불거졌다. “저 좁은 골목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옆 좁은 골목길. 뒤엉켜진 수백명의 사람들의 절규가 가득했던 공간을 그는 바라보지 못했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래 친구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분향소를 찾은 직장인 이지은씨(29)는 “이태원 분향소에서 누가 그렇게 크게 우는지 살펴보니 세월호 유가족 분이더라고요”라고 전했다.      



8년 동안 외쳐왔다.‘단식투쟁’과 ‘거리농성’을 한다고 그 중 1년 반을 길 위에서 있었다. 동환씨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잖아요. 달라졌어야 했는데 그대로더라고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동환씨의 손은 파르르 떨렸지만 목소리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 단호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쓰러져간 청년들 생각에 그는 다시금 8년 전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0분. 딸 아이게 전화가 왔던 그 순간 말이다.“믿지 않았죠, 배에 물이 찬다니깐. 컨테이너 박스가 바다를 떠다닌다는 말에 아차 싶었죠.” 그는 비상깜빡이에 의지한 채 곧장 시속 130㎞가 넘는 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도착한 진도체육관에서 ‘살아있다’고 전화를 한 딸아이와 마주할 때야 말로 동환씨는 그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이 쉬어라 울었다.      



‘차디찬 그 바다에서 살아나온 딸’ 장애진씨(27)는 지금도 손톱이 아프다. 선박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다리를 탔던 그날의 기억은 매년 4월쯤 애진의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애진씨는 그날의 아픔을 잘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친구들이 기억에 선명한 탓이다. “저는 벽 뒤의 봉을 잡고 있었어요. 한 순간 배안에 물이 들어차더니 눈앞의 친구들이 휩쓸려갔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해경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살려 달라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사고가 발생한 지 2달째 되는 6월25일 애진씨는 첫 등교를 했다. 등굣길을 함께하던 친구 7명중 혼자 살아남았던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다같이 모여 등교했어요. 학교가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재난은 남겨진 자들에게 가혹하다. 일상 속 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은 한순간 공포로까지 다가온다. 생존자 A양은 여전히 문을 닫고 씻지 못한다. 물이 무섭기 때문이다. 의가사 제대를 한 생존자 B군은 불 꺼진 내무반을 들어가지 못하고 가빠진 호흡에 가슴을 붙잡았다. 어두컴컴한 그날의 선박의 기억이 선명해진 탓이다.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경험자 가운데 34~39%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 불안장애, 물질의존을 겪는다.      


매년 벚꽃이 필 때쯤이면 단원고 부모님들은 하나둘씩 시름시름 앓는다. ‘4월16일, 5월18일, 7월24일’ 자신의 아이들이 인양됐던 날만 되면 그렇게 다들 아프다. 통증은 봄이 다 지나간 여름에서야 사그라든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추적검사를 진행한 결과 유가족 외상 후 PTSD 유병률은 2017년 36.7%, 2021년 28.5%에 이른다. 슬픔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지내온 세월 때문인지 단원고 부모님들 중 대다수가 치과 진료를 받는다.      


단원고 부모님들은 아직까지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예은이’ 아빠 , ‘민정이’ 엄마. 이제는 곁에 없지만 자식들의 이름만큼은 지켜주고 싶어서다. 하지만 김순덕씨와 박유신씨는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왜냐하면 죽은 정예진양과 장애진씨의 이름이 비슷해서다. 그렇게 이들은 단원고 부모님들 중 유일하게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다.     


생채기가 채 아물지도 않는데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비극은 계속된다.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걸어 나온 동환씨는 쏟아지는 눈물에 그만 주저앉았다. “위로조차 건네지 못하겠어요. 우리보다 더 힘들거에요.” 단원고라는 울타리에 묶여 서로의 감정을 보듬어 줄 수 있었던 자신과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달랐기에 그의 마음은 더욱 심란했다. 남은 사람들은 베여진 자신의 마음 깊이를 모른다. 드러나지 않은 상처는 일찍이 보듬어줄 필요가 있다. 초기에 정신건강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PTSD와 우울 장애 등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보고가 방증한다.       


그는 자신의 딸 역시 또 사고를 당했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태원을 가지 않았단 딸의 말을 들었지만 동환씨는 오늘도 걱정이 된다. “제가 세상에 없을 때 딸아이가 40-50살쯤 되어서 갑자기 트라우마가 오면 어떡하죠? 그 땐 예전처럼 지켜줄 수도 없는데 말이죠.” 버스에 올라타자 이내 그는 수화기를 들어 딸에게 전화한다.      


“딸 오늘은 일 하는거 괜찮아?”      


그래 아직 아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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