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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Dec 19. 2022

그 시절의 인연

시절인연

“나는 30대가 되고 지금은 

인연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해.”

그(그녀)가 말했다.           


“나는 가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안 막아.”

또 다른 그(그녀)가 말했다.     


“너도 결혼식 하면 인연 정리될걸?”

다른 그(그녀)도 말했다.

     

인연이란 말이 있다. 

인연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우리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했으며 

숱한 추억이 쌓였는데, 정리한다고?


인연의 의미가 가벼워진 걸까. 

내가 미련한 걸까.     


요즘 ‘환승 연애 2’를 몰아서 본다. 

거기서 해은이라는 여자 출연자가 

예뻐서 계속 보다가, 

그의 서사에 마음이 저려서 

몰입하게 된다. 


해은의 행동을 조정하려 하고, 

해은의 가치를 깎는 남자만 바라보는 그.

그 비상식에서 해바라기를 자처하는 

절절한 사랑에 마음이 아프다. 

한편으로는 해은이 너무 자기감정에 빠져서 

상황을 헤쳐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해은을 보다가 문득 나의 20대 때가 떠올랐다. 

나도 인연에 참 정이 많아서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내게 도움이 됐던 말은 

‘야 인연 끊어’ 혹은 ‘벗어 나’가 아니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슬픈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도움이 됐던 말은 

‘해볼 만큼 해봐’였다. 


그 말 덕분인지 여러 조언이 얇게 쌓일 때마다 

상대와 대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래도 멀어진 인연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연이 끊어진 

그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동성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20살 언저리에 서툴게 맺은 인연이었다. 

동네에서 벗어 나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이 

모인 대학교 친구였다. 

특히나 우리 학과의 인원은 매우 적어서 소속감이 강했다. 

그 소속감은 4년 동안 이어졌다. 

휴학한 친구들도 섞여 있었고, 

졸업하고도 매년 연락하고 만나서 파티도 했다. 

졸업하고 5년이 지나고, 

내가 매년 보냈던 생일 축하 메시지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스무 살 ot에서 다퉜던 그 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답이었다. 

우리가 지난 기억을 다 정리하고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 친구는 내가 잘 지내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싫던 것이었다.     


나는 20대의 한 번의 싸움이 관점의 차이라 여겼다. 

고의가 아닌 이상 서로의 입장을 전하고 넘어가면 됐다. 

왜냐면 한 사람 안에서도 다양한 ‘나’가 있고, 

그 성향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다툼이 상대를 단정 짓는 

계기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을 오래 만나고 보는 게 나라면 

같이 있을 때 가볍게 즐기는 게 

우선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를 반증하듯 나는 관계에 애정이 많았다. 

수십 명의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a4 용지를 꽉꽉 채운 손 편지를 썼으며 

주말엔 무료 과외를 해주곤 했다. 

이때 피자든 간식이든 사주는 것은 덤이었다.


심지어 이마트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내게 세 마디 이상 말을 걸어준 고객은 다 소중했다. 

당시엔 가능했던 종이 쇼핑백 무료 제공 등으로 

마음을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참 좋았다. 

    

애정이 많은 인연과는 다르게 20대의 나는 

불안한 철길의 레일을 따라서 걸었다.

소속되고 싶었으나 소속되지 못한 상태. 

직업적 상태 하나일 뿐인데, 

‘나’ 자체를 흔드는 불안이 지배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이 지속될수록 미래를 알고 싶었다. 

미래가 정해진다면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으니 

미래를 알고 싶었다. 

비슷한 내용임을 알더라도 

그냥 내 미래를 듣고 싶었다.

     

[경진 일주는 사람을 단호하게 끊지는 못합니다. 

아주 큰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의 사람을 품고 갑니다.

조금 힘들고 짜증이 날 때에도 틱틱 거리면서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다 나누어주게 

되는 일주입니다.]     


그렇다. 

그냥 이게 좋았다.

내게 한번 맺은 인연은 

내 삶에 스며드는 소중함이 있었다. 

하루 이틀 만난 사람이라도 

안부를 묻는 재미는 쏠쏠했다.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인생을 담은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각각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다 같이 수다를 떨고 노는 게 재미있었다.     

이런 내 모습에 보이는 반응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고마워하며 응답해주거나, 

인간 댕댕이로 보거나, 

관심 밖이라 조금씩 멀어지거나.


뭐가 됐든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 

어쩔 수가 없다.     

불안이 중첩될 때마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그 영상은 불안을 단단하게 묶어두어 

내 안에 퍼지지 않게 해주는 

접착제와 같았다. 


영상에서 오 박사님이 해주신 말이 있다.

“클래스 메이트랑 친구는 달라요. 

클래스 메이트는 같이 수업을 받는 동료지만 

친구는 그중에서 노력하고 싶은 사이를 말해요.”

그렇다. 

클래스 메이트는 클래스 메이트 대로 뒀으면 됐는데, 

너무 의미를 뒀던 것이다.


가슴 앞에 턱하니 존재했던 벽을 올라탄 30대가 되었다. 

30대가 지나고 나니 이전과 같은 미련은 크게 없다. 

흔히 말하는 ‘INFP가 흑화한 전형적인 케이스’가 

‘나’다. 


동료와 함께 하면 좋지만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할 때 마음이 편한지, 

그리고 나답게 해주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조금 키운 듯하다.     


어쩌면 두 번째 그가 말했던

“나는 가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안 막아.”

의 상태라고 할까.


‘합리적이다’, ‘경제적이다’라는 이유로 

‘손절 잘하는 방법’이 SNS에서 퍼지고 있다.

손절 잘 하는 게 나를 지키고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그렇더라도 나는 지금, 

내게 머물러있는 인연들과 

최선의 시절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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