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추석을 열흘 정도 앞두고 미리 나의 고향인 태백에 다녀왔다.
강원도 태백시. 탄광이 있어 80년대 후반에는 인구 12만이 넘었고 옛날 우스갯소리로 동네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도시. 점차 석탄 소비가 감소하면서 자연스레 폐광도시로 전락하여 요즘 사람들은 태백산 천제단이나 눈꽃축제, 고랭지 배추 정도로 기억하는, 지금은 인구가 5만 명도 되지 않는 군 규모의 작은 도시.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지만 나에게 있어 태백이란 '추운 곳'이다.
문자 그대로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고 여름에도 추워서 밤이면 긴팔을 입어야 했으며 겨울에는 60센티가 넘는 폭설이 내리기도 했는데 이런 지리적인 이유와 별개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 분위기도 그다지 따뜻하진 않았던 것 같다.
원래 말수가 적은 부모님이시기도 했거니와 농사일로 해뜨기 전에 나가서 해가지면 들어오시던 아빠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고, 막냇동생의 뇌성마비를 고쳐보겠다고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서울에서 동생의 보호자로 병원 생활중이시던 엄마도 마찬가지였기에.
'가족' 이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참 아픈 단어였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지은 글은 바로 가족신문의 가족 소개글이었다. 서로 대화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너무 부족했던 우리 가족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삐뚤빼뚤 서툰 글씨로 제 몸보다 커다란 전지를 채우기 위해 그림도 그리고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접한 화목한 가족의 이미지를 최대한 차용해 엄마는 요리를 잘하고, 아빠는 자상하고 하는 식으로 어설피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운동회 때도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가 오셔서 양념치킨을 사주셨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비를 쫄딱 맞으며 30분을 걸어서 하교한 일도 있었다. 옷도 거의 매일 같은 것을 입곤 해서 또래들 사이에 부모님 없는 애라고 소문도 나고 따돌림도 당했다. 초등학교 졸업식도 혼자 가서 운동장에 조회하는 식으로 모여있다가 국어사전과 옥편을 받아온 기억이 난다. 다행히 동정이었는지 의리였는지 거의 학창 시절 존재감이 없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은인 같은 멋진 친구와 착한 친동생들이 든든한 나의 편이었기에 크게 엇나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나고 자란 곳에서의 기억이 춥고 어둡고 쓸쓸하다 보니 외지로 나가 살게 되고부터는 일 년에 많이 와야 서너 번 정도 딱히 향수나 애틋함이 없이 예의상 오가는 식이었는데 이번 방문은 짠한 여운이 좀 남았다.
전날 야간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한 남편과 아이들 짐을 챙겨 전주에서 토요일 아침 9시쯤 출발해서 오후 1시가 넘어 도착했고, 아버지는 오전에 혼자 성묘를 다녀오셨다고 했다. 장거리 운행으로 피곤한 데다 긴 휴가도 아니어서 식사하고 손주들 재롱 보여드리고 하루 자고 일요일에 바쁘게 돌아오는데 차 안에서 문득 아버지가 어제 혼자 성묘를 다녀왔다는 말씀이 자물쇠가 채워진 상자를 열어본 것처럼 철커덕하고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가 채 10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어린 나이에 아버지 없이 자란 우리 아버지가 수십 년을 해마다 제사음식을 이고 지고 험한 산속을 올라 풀에 베이고 벌레에 물려가며 벌초를 하고 쓸쓸히 할아버지 봉분 앞에서 술을 따라 절을 올렸을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어릴 때 나도 한번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땡벌에 쏘여 몇 주를 고생하고 그 뒤로는 다시 가지 않았는데. 그냥 나 오면 같이 가자고 하지. 여태껏 좋은 내색이든 싫은 내색이든 없이 그냥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고 감당해온 아버지의 굳게 잠긴 삶이 이제야 틈 사이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내 자식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것이 아버지 삶의 목표고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 전생도 있고 후생도 있다면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내 자식들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내가 더 많이 표현해주고 토닥여줄 수 있도록. 우리 아버지가 환갑이 넘으셨는데도 아빠를 볼 때마다 자꾸 어린 현봉이가 겹쳐 보여 짠하고 안쓰럽다. 우리 아빠. 다음에 가면 쑥스러워도 한번 꼭 안아드려야지.
밤샘근무에 장거리 운전도 불사하고 고생이 많은 우리 신랑.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다. 우리가 애들한테 물려줄 건 사랑밖에 없으니 앞으로도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서 부디 우리 아이들의 유년시절은 '따뜻한 기억' 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