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말보다 글이 편한, 조용한 성격이다. 말주변이 없기도 하고 상대방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언어적 표현(눈빛, 제스처 등)과 상호작용이 좀 부담되고 서툴다고 해야 할까. 특별한 용건(업무연락이나 고객센터 문의 같은)이 있다면 몰라도 사적인 친분을 쌓아야 하는 관계라면 더더욱(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다수의 청중을 두고 발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눈에 띄게 긴장하여 식은땀이 나고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빨개지곤 한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봤을 때 실력도 물론 대단하지만 전 세계 관중에게 생중계되는 상황에서도 제 기량을 펼치는 강인한 정신력이 더 탄복스러웠다.
강인한 정신력. 그것은 간절함에서 오는 것인가 체질적인 심신의 건강을 근간으로 한 일종의 면역력인가. 남들보다 항상 평균 이하의 텐션을 유지하며 살아온 나는 평생을 우울함과 함께 했던 것 같다. 그것은 때로는 커다란 바윗덩어리처럼 온몸을 짓눌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모든 걸 체념하게도 하고 때로는 다른 감정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크거나 작거나 항상, 있었다.
내가 첫아이를 출산했을 때 즈음, 모친은 본인의 첫 임신 때를 회상하며 본인은 신혼초부터 결혼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나를 지우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굳이, 내게 해주었다. 마치 처음 보는 신부와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혼자 읊조리는 고해성사처럼. 미안했다거나 후회했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본인이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나를 가져 그것이 내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담담한 뉘앙스였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심연의 우울함은 모체로부터 탯줄로 이어져 전해진 처절한 자기 연민에 기인한 것임을.
비좁고 캄캄한 태중에서 어둠을 먹고 자라 생을 알기도 전에 사를 맞을 뻔했던 생명은 불행 중 다행히도 집안 어른들의 종교적인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고 태어나 부친과 모친의 이혼까지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발목을 잡고 어딘가 모난 성격 탓에 수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살았다. 용기가 없어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상상으로 저지른 나쁜 생각들까지. 보름달이 뜨면 변하는 늑대 인간처럼 그렇게 어두운 마음속에서 떠오른 우울이라는 슈퍼문이 종종 내 생각과 행동을 많이 지배했던 것 같다.
제법 시간이 흘러 이제는 우울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냥 나 자신을 휘두르게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나니, 더 이상 그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매번 같은 자리에 생겨 박힌 굳은살인지 하도 여기저기 두드려 맞아 키워진 맷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것과 내 삶이 병존함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것의 존재를 존중해주려 한다. 너구나. 또 왔구나. 이번에는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니.
선을 넘는다면 타협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절대로.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는 안겨줄 수 없을지언정 심리적인 가난과 불행은 결단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으므로. 사람은 넓은 의미에서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야. 모두의 1분 1초는 소중하고 유의미하게 쓰여야 하지. 우울 따위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