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Nov 02. 2022

이태원 참사에 관한 단상

사건ㆍ사고 그리고 경찰

지난달. 거실에 가짜 거미줄도 치고 파티 커튼을 달고 풍선도 불며 나름대로 정성 들여 집을 꾸며서 다섯 살 난 딸아이 친구들을 초대해 핼러윈 파티를 하고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함께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이태원에서 바로 그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인 자발적 행사 자리에서 안타까운 생명들이 희생되었다는 특보를 보게 되었다.

괜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어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던 파티 사진도 내리고 집에 장식했던 것들도 쇼핑백에 넣어 베란다 한쪽 구석에 치워버렸다. 사망자가 10대~20대가 주를 이룬다는, 그 숫자는 무려 150명이 넘는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 반복되어 언론에 보도되었고 자꾸 그 화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녁에 놀러 나갔던 자식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유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보니 책상 위에 근조리본이 놓여있었다. '근조'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서 패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우리 회사 인트라넷인 폴 메신저 쪽지에 녹색 신형 민방위복을 입은 고위공무원들의 근조리본 패용 참고용 사진을 보자마자  순간 거부감이 확 들었다. 경찰국 신설 때도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엄정 대응'이라는 재갈을 물리며 강행하고 기어이 목줄을 채우더니, 이제는 애도까지 강요하는구나 하는 괜한 반발심이었달까.

경찰청장은 112 신고 처리 현장 대응 미흡을 이유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강도 높은 감찰·수사를 선언했다. 감찰이 돌고 있으니 기본근무 철저하라는 메신저 쪽지들. 애당초 경찰 만능주의 극복, 불필요한 일 버리기를 주창하시더니 아니나 다를까 여느 청장 못지않게 동네북을 자처한 것도 모자라 내부 감찰이 웬 말? 가만 보면 경찰 조직은 참 특이하게도 수뇌부가 하위직을 못 짓밟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참사 관련 댓글 몇 개만 읽어봐도 국민이 생각하는 이번 참사 원인이 뭔지, 근본적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누구 말마따나 국어만 할 줄 안다면.

나의 초임지인 부안에서는 매년 마실축제라는 지역행사를 크게 했다. 코로나 이전, 순경 시절 축제 경비에 동원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의경들이 있을 때라 2~3미터 간격으로 서서 일명 '뻗치기'(몇 시간씩 자기 자리 지키고 서있는 것)를 했다. 초대가수가 장윤정, 송대관, 볼 빨간 사춘기 등 전세대를 아울러 인기 있는 유명인들이 온 행사라 많이 붐볐고 가족 단위로도 많이 모인 야외행사에서 담배를 피우는 한 중년 남성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제지하기 위해 다가갔더니 그에게서 확 술냄새가 풍겼다. 스피커 쪽이라 면전에서 소리를 질러도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손으로 담배를 뺏으려 하자 공격적으로 돌변한 남성. 당시 들고 있던 경광봉 덕분에 자리에서 이탈했어도 내 위치가 보였는지 근처에 있던 의경들이 다가와 상황이 일단락되었는데 만약 이런 단순 주취자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말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지휘부가 현장의 이러한 사소한 고충들을 귀담아 들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지역 축제도, 불이 나도, 심지어 전쟁이 나도 동네 홍반장처럼 모든 일에 나서서 출동해야 하는 경찰이지만 막상 예방적 제재조치를 하려고 하면 네가 뭔데 나서냐 하고,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도와달라고 찾고, 사상자라도 나오면 경찰 탓이 되어버리는 억울한 현실. 권한보다는 의무와 책임이 비정상적으로 크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요즘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면서 답답했진 속이 댓글을 읽으면서 풀리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대단한 처우개선이나 공치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최저시급에 버금가는 보수와 보이지 않지만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공기처럼 눈에 크게 띄지 않더라도 우리가 치안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것. 치안을 포기하면 이 땅에서 나의 가족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지킬 수 없기에. 경찰은 불길과 같이 타오르는 위험에서 국민을 구해내는 소방관이자, 치안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군인이기도 하니까.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게 다 경찰 책임이니 하위직 경찰들 잡도리는 그만하고 수뇌부는 책임을 통감하여 스스로 경질을 하든지 적의조치를 하시길.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작가의 이전글 신에게 사랑받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