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진 Oct 18. 2023

15. 고마워, 엄마.



딸아이와 극장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

둘이 손을 잡고 기분 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갑자기 딸아이가 자기를 낳고 싶어 했는지 물었다.

"당연하지! 엄마는 네가 빨리 안 생겨서 속상했어. 그래서 병원도 열심히 다녔는걸."

"정말?"

"그럼~ 그리고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서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데.

그래서 출산예정일은 원래 10월인데 2주나 빨리 나왔어."

"고마워. 엄마."

원래도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아이지만 갑자기 고맙다고 말하는 딸아이에게 심쿵했다.

나도 남편도 아이에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너무 고맙게도 이 아이는 그 애정을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어디 365일 24시간 사랑스럽겠는가...


오늘도 아침부터 깨우려는 자와 일어나지 않으려는 자의 짜증이 오가고, 결국엔 나의 큰소리로 끝이 났다.

아이를 보내고 청소를 마친 후 커피를 내려 어제 그리다 만 마지막 컷을 그리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이패드를 열어 그림을 마무리 지으려고 보니 딸아이의 '고마워, 엄마' 대사를 넣을 차례였다.

하아... 마음이 울렁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감정이 누그러지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을 내어주며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떠드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아침에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그 정도 전쟁은 늘 반복적으로 일어나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의 마지막 컷을 그리다 보니 아이의 고마워, 엄마라고 했던 그날의 공기와 나를 감싸 안으며 말했던 아이의 따뜻한 말투, 그리고 오늘 아침 화냈던 나의 모습이 자꾸 곱씹혔다.

순간 미안함이 목구멍 밑에서부터 밀려 올라왔다.

미안해 딸.









이전 17화 14. 원고독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