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의 끝에 드디어 나와 마주하다.

말 못 한다고 짖지 못하는 건 아니다.

by 야초툰

보통 회사에 입사하면 3, 6, 9개월의 퇴사의 욕망이 들끓는 고비를 넘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일분일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고와 시련 속에 꾸역꾸역 쓰디쓴 침을 삼켜가며 버텨야만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본 동료들은 두 가지 태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 자기가 일할 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하거나 나와 같이 출근하는 스케줄을 확인하고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에 떠는 태도였다. 심지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비아냥대던 J 부장도 이런 나의 일복에 대해서 나중에 책으로 써보라며 조언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중 기억에 남는 추억들을 몇 개 추려보자면 아래와 같았다.


*디저트를 만드는 셰프가 너무 피곤해서 '설탕을 넣어야 할 양을 대신 소금으로 소금을 넣어야 할 양을 설탕으로' 짜디짠 케이크를 만든 일


전화를 받았을 때는 손님도 확실하지 않은데 케이크가 달지 않고 짜다고 말했고, 나는 손님이 케이크를 무료로 받기 위해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손님의 목소리 톤은 너무 진지했고, 자신도 특급 호텔에서 만든 케이크라서 짠가 보다 했는데 먹다 보니 너무 짜다고 말했다. 손님과 통화가 끝난 후 반신반의하며 조리팀에 확인해 보니 정말 소금이 들어갈 자리에 설탕이, 설탕이 들어갈 자리에 소금이 들어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우유가 듬뿍 들어간 달콤한 케이크가 우유니 사막처럼 짜디짠 케이크로 변해 손님에게 팔린 것이었다. 더 이상한 건 분명 소금과 설탕이 뒤바뀐 케이크를 분명 업장에서 5개 팔았는데, 유일하게 전화 온 건 나에게 걸려 온 그 전화뿐이었다는 점이었다.


*'미국 유명한 박물관 관장님'이 객실 복도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객실 문이 안 열린다고 당장 당직 직원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가 봤더니 본인의 객실은 10층인데 11층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일


*전화를 걸자마자 자신과의 통화는 녹음되고 있고 본인과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적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던 '내 귀의 도청 장치 손님'


이야기해 보니 객실료가 본인이 말할 때마다 달라서 그랬다며 해명했지만, 나와의 통화가 녹음되고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마치 서스펜스 영화를 찍는 것 같은 주인공처럼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그래도 차분하게 호텔 투숙률에 높아짐에 따라 요금도 올라간다고 설명하면서 하루 뒤에 좋은 호텔 할인 프로모션을 시작하니 그때 내가 전화드리겠다 하니 좋다고 하며 전화를 순조롭게 마쳤다. 새삼 해답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계순이가 아닌 개순이 었던 손님


강아지 이름으로 케이크를 예약하는 사람의 요청을 이해하지 못 한 직원이 설마 개순이겠어? 계순이겠지? 라며 케이크 위에 올려질 메시지에 계순아! 생일 축하해 적어서 팔았는데 집에 도착해 강아지 이름이 잘못 적힌 걸 확인하고 화가 난 손님에게 전화가 온 사연. 강아지가 자기의 이름이 잘못 적힌 것을 보면 얼마나 서운하겠냐고 하면서 흐느끼던 손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게 이름이세요?


자신의 이름에 콤플렉스를 가진 손님이 전화 예약을 했는데, 성과 이름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전화받은 선배가 혹시 그게 이름이세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다른 사람 바꿔 달라고 해서 전화를 바꿔 받은 경험. 얼마나 이름을 조심해서 불렀던지 아직도 아랫입술이 덜덜덜 떨린다.



끝판왕! 대망에 부럽지? 사냥꾼

그는 매달 한 번 이상은 우리 호텔에 전화했다. 태연히 자신의 명성을 익히 들었느냐는 말투로 대화를 시작했다.


“저예요 저 아시죠?”


그 말에 나는 퉁명스러운 본심을 숨기며 대답했다.


"아 네 고객님 어떤 예약 번호를 확인해 드릴까요?"


“제 이름으로 된 8월 15일 1박 예약을 취소해 주세요”


그의 이름을 검색하자마자 수많은 예약이 검색되었고 반 이상은 취소된 예약에는 모두 같은 특이한 예약 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B.R.G 코드(Best Rate Guarantee)였다.


* B.R.G 호텔은 항상 고객에게 최저 금액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책으로 만약 손님이 다른 여행사나 사이트에서 호텔보다 싼 요금을 발견할 때 해당 요금을 캡처해서 담당팀에서 발견된 요금에 25% 할인 요금이나 추가 포인트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었다.


호텔 입장에서는 손님에게 항상 최저의 요금을 보장한다는 정책이었는데, 손님 입장에서는 이 요금을 찾아서 예약하면 다른 손님들의 부러움에 대상이 된다고 해서 부럽지(B.R.G)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그 부러움 사냥꾼 중에서 이미 최고 등급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의 업적과 스킬이 쌓는 시간과 동시에 해당 호텔은 그가 예약을 취소했더라도 쌓여가는 위약금을 마치 세금이 붙듯이 본사에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요금들이 호텔에서 제공된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경로가 많았고, 심지어 예약이 안 되는 금액들이 많았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그 요금의 출처를 오페라의 유령처럼 정처 없이 그 요금을 찾아 헤매다가 그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위약금을 내기에 급급했다.


그러한 날 중 크리스마스나 연말은 성대한 BBQ 파티가 아닌 BRG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매년 그 축제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예약 실 직원들을 초대했는데, 그해에는 일복만 많았던 계약직 2년 차 내가 초대되어,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를 뒤로 하고 밤 10시에 야근조 교대 근무 인수인계를 마치자마자 화장실 갔다 온다는 선배를 대신해 켠 대표 메일에는 사뭇 두렵게 번쩍이는 빨간색 수많은 B.R.G. 초대 메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B.R.G. 파티를 시작합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메시지들이 내 눈앞에 번쩍였고, 그 당시 일복 많은 말이 없는 허 아무개였던 나는 조용히 눈을 질끈 감고, 힘겹게 내 앞에 펼쳐진 이 아수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받아들여야 한다. 2년 동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만 생기는 거면... 그런데 왜 매일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그 까마귀는 항상 내가 되는가?’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벨이 울렸다. 이제는 전화번호까지 외워버린 부럽지 사냥꾼의 번호였다.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그의 전화를 받았다.


'따르릉'


“안녕하세요. 저예요 저 아시죠?”


“아.. 네”


이번에는 파티에 갑자기 끌려온 머리채 잡혀 끌려온 기분에 언짢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아 이번엔 제가 예약을 좀 많이 했어요. 예약 번호 불러 드릴까요?”


“네..”


“483032, 480033, 548977, 558903, 549307”


“네 확인했습니다.


“모두 취소해 주세요. 그런데 그 여행 사이트에 호텔 요금 좀 많이 이상하더라고요. 보통 이런 이상한 요금은 여행사 담당 세일즈 지배인이 해외에서 갑자기 당일 여행 취소건 나면 뿌리는 요금이잖아요. 아! 그리고 요새 B.R.G. 팀에서 승인할 게 아닌데도 그냥 승인해 주더라고요. 아시죠? 1달러 이상 차이가 나야 하는데 말이에요! 아마 몇 개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수고하세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언짢았던 감정을 벗어던지고 해맑게 나도 모르게 감사한다고 대답하고 만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호텔의 직원인가? 그인가? 나인가? 오히려 내가 그만두고 이 사람을 이제는 호텔로 스카우트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나는 부럽지 사냥꾼이 나에게 알려준 여행사 사이트를 찾아서 이상한 요금을 확인했다. 그 요금을 보는 순간 내 머리 위로는 우리가 메일로 ‘이 요금 뭐예요? 했을 때 세일즈 담당 지배인이 내국인 전용 여행객을 위한 판촉 프로모션이라며 인터넷에는 풀지 않는 내부적인 프로모션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이메일이 떠올랐다. 그와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세일즈 담당 지배인의 핸드폰 번호를 두들기며 전화했다.


'받아! 받아! 이.. 지배인!!'


물론 나도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었고, 그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B.R.G. 클레임 수만 봐도 호텔에 엄청난 위약금이 청구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서슴지 않고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가 내 전화를 살갑게 받았을 때 나는 부럽지 사냥꾼이 알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조용히 따져 물었고 그는 마치 자동 응답기에 녹음되어 나오는 대답처럼 어색하게 말하며 시치미를 뗐다. 너무나도 태연한 대처에 나는 순간 잘못짚었나 라는 생각에 조용히 그에게 크리스마스이브를 잘 보내시라고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끊었지만, 어느 영화의 반전처럼 그와의 전화가 끝난 후 갑자기 10분 후 조용히 사라지는 이상한 요금을 보고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럼 이제부터 두더지 잡기 게임을 시작하지!

차분하게 그의 세일즈 매출 실적을 펼쳐봤다. 그는 그런 식으로 본인의 실적을 높이고 있는 게 숫자로 딱 들어왔다. 요금 클레임이 많이 들어온 달일수록 그의 매출 성과는 뚜렷하게 올라갔다. 지금부터 어쩌면 나와 세일즈 지배인과도 B.R.G. 본사팀과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퇴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나는 다음날 J 부장이 출근하기 전까지 문제의 실마리와 증거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 모두 행복하게 웃으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나옴 직한 썩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면 먼저 그들을 갈기갈기 물어뜯을 자료를 먼저 모아보자!'


엑셀 파일을 켜서 기존 BRG의 이름을 다시 'BewaRe of doG 개 조심'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그 안에 그들에게 청구할 나만의 핏빛 청구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파일에 필터를 걸어 자주 걸리는 중동 여행사 이름을 확인하고 예약하기 시작했다.


"너냐? 오늘은 내가 너의 손님이 되어 너를 먼저 물어뜯어 주겠어 왈왈왈왈"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화장실 다녀온 유리 선배가 나를 보며 이제 얘가 말을 하네 라며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미친개가 실성한 듯 짖어?”


오늘을 기점으로 일복 많은 말 없는 아무개에서 일복 많은 마구 짖는 미친개로 나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


"아오오오오오 왈왈왈 “


나는 숨죽여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조금 전까지 눈속임을 위해 잠깐 숨었던 두더지 같은 요금이 다시 스리슬쩍 여행사 사이트에 나타났다. 심지어 이번에는 '특별 할인 쿠폰과 제공'이라는 깃발도 들고 있었다. 그 깃발은 마치 ‘이제 미친개한테 걸려서 할인을 못해요. 그러니까 오늘만 이 가격으로’라는 문구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두더지 같은 놈을 아니 가격을 잡기 위해 한국시간 새벽 1시에 사이트에 적혀 있는 중동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친숙한 아랍어가 들려왔다.


“살라 마리쿰 (신에게 가호가 있기를..)”


나는 그 인사에 오래전 두바이에서 배운 인사말을 자동 응답기처럼 그에게 대답했다.


“마리쿰 살람(응 그건 네가 필요할 거야)””


바로 이어서 그에게 영어로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는데 갑자기 아랍어에서 영어에 바뀐 언어에 당황한 그 직원은 “노 잉글리시”를 계속 외쳐댔다. 분명 이대로라면 그와 나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전화가 툭 하고 끊길 게 분명했다. 나는 이렇겐 안 되겠다며 ‘외국 손님들이 자주 하던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핸드폰에 마마고 번역기를 켜고 “거기 영어 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를 아랍어로 번역하고 스피커를 눌러 그에게 들려주었다. 다행히 그제야 그 직원은 알아들었는지 ‘오케이’를 연달아 말하더니 영어 가능한 직원을 바꿔주겠다고 아랍어로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직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사장을 바꿔준 것이었다.


그는 사장이고! 나는 사원이었지만 내가 당신의 고객이라며 한국에서는 고객이 왕이니 사장보다 왕이 아니겠냐는 억지 주장으로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예약한 번호를 불러 주었다. 마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듯한 이 태도로 나는 거짓말을 조금 뿌린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한국에서 다른 여행사를 통해 당신 여행사보다 더 비싼 요금으로 예약했는데 도대체 이 요금은 어디서 제공되었는지 미친 듯이 따져 물었고 이 정신 나간 애는 뭐지? 라며 나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중동 여행사 사장은 결국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서 이 요금을 직접 받았다고 실토했다. 그 여행사는 일전의 메일에서 내국인 여행객을 위한 판촉 프로모션 제공한다는 세일즈 지배인의 거래처였다.


“잡았다! 이 두더지!!”


하지만 여기서 그친다면 증거는 내 핸드폰 통화기록 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내 귀에 도청 장치’ 손님한테 배웠던 기술을 여기서 써먹기로 했다.


“저는 당신을 믿지 못합니다. 당신과 통화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세요.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숨 막히는 30분이 흘렀고 다행히 한국 여행사 이름이 정확히 적힌 이메일을 받아냈다.


그 시간이 새벽 3시


나는 바로 해당 메일을 첨부해서 한국 여행사에 경고성 메일을 보냈고 그 메일에는 담당 여행사 세일즈 지배인을 참조에 숨긴 참조에 J 부장과 김 과장의 이메일을 증인으로 달았다.


새벽 3시 30분


한 건의 두더지 조사를 끝내고 다른 두더지 조사를 시작했다. 나는 다시 본사에서 보낸 청구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 난 몇 가지 승인 오류를 찾아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보통 호텔 직원은 본사로 연락할 때 다른 직통 이메일 주소가 있을 것 같지만 나 역시 손님들이 보내는 이메일 주소로 몇 개의 메일을 보냈다.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직원이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일보다 손님이 보내는 메일의 답변이 더 빠르다. 그리고 몇 분 후 자동 응답으로 온 답변은 '48시간이 이내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전전긍긍하며 48시간을 기다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한 건의 사건을 물어뜯기 시작한 미친개였기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Never Stop!”


나 역시 손님들이 전화하는 24시간 핫라인 전화를 걸었다.


새벽 4시


이제부터는 손님들도 나도 타야 하는 파도타기를 해야 했다.


'아, 내 담당 아닌데 누구 바꿔줄게'


띠리리리리릴릴리릴 -통화연결음


'아 그거 나도 아닌데 누구 바꿔줄게'


띠리리리리릴릴리릴 -통화연결음


몇 번의 파도를 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점점 이제는 나도 모르게 들려오는 통화음을 따라 부르며, 마치 강원도 앞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통화 연결음을 흥얼거리며 마냥 즐기게 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리 선배는 미친개가 이제 노래를 부른다며 둘만 있었던 매우 무서웠던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이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통화 연결음이 뚝하고 끊기더니 얼음처럼 냉랭하고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가 한국 호텔 직원이냐고 이름을 물어보더니 본인은 앤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고, 우리 호텔 상황을 설명하고 본사에서 잘못 확인하고 최저가라고 승인된 건을 대해 환불받냐고 따져 물었다. 그 말에 그녀는 매우 난감해하며 지금까지 한 번도 최저가 확인된 승인된 건에 대해서 호텔에 위약금을 환불해 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번쩍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예전에는 알았다고 끊었을 대답에 이상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최저의 요금을 보장하는 건 전체 호텔의 정책이긴 하지만 본사에서 잘못된 승인된 건에 대한 위약금까지 호텔에서 떠맡는 건 포함되어 있지 않지 않냐며 따져 물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내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을 택했던 앤이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잘못 승인된 건이 몇 건이나 될까?”


“한 6건 되는 것 같아”


“그럼 그 케이스를 청구서와 호텔 시스템 요금을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줄래?"


“응응 그럼 언제까지 될까?”


나는 희망찬 대답을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지금 휴가 중이라서 지금은 확답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에 대항해 빨리 대답을 받을 수 있는 명확한 한국식 대답을 알고 있었다.


"휴가 중인데 미안해 … 그래도 빨리 부탁 좀 할게"


앤은 내가 보통 외국 직원들처럼 ‘그럼 휴가 끝나고 해 줘’를 기대했지만, 내가‘부탁 좀 할게’를 말하자 한숨을 쉬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불러줬다. 그때 나는 이메일 주소를 적기에 바빴기 때문에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본 이메일 주소는 anne@grandforeverfivestarhotel. com이었다.


'잠깐만 앤 1, 앤 2, 앤 3도 아닌 그냥 앤 이라고?’


갑자기 싸한 느낌에 나는 그녀의 직책을 찾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이름의 이메일 주소에 숫자가 붙지 않은 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책은 아시아 전체를 총괄하는 수익 관리 부서 책임자였다. 아.... 이번에도... 망했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덜덜덜' 손가락을 떨면서 메일을 보냈다.


사실 그다음은 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두려움에 필름이 끊긴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는 것 밖에는 말이다.


*외국은 보통 한국처럼 직책을 부르지 않아서 몰랐던 그녀는 우리 호텔 총지배인보다 높았다. 휴가 중에 쌓인 잔업을 하려고 나왔던 그녀는 자신 사무실 내에서 본사 직원이 계속 쩔쩔매는 전화를 듣고 자신한테 연결해 달라고 한 것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아침이 밝았다. 친절했던 세일즈 지배인은 출근하자마자 분노의 쌓인 답장을 나에게 보내왔다. 내용은 대충 업체에 자신의 이미지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메일을 보내면 자신의 입장이 뭐가 되냐는 내용이었다.


아마 그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숨은 참조로 J 부장을 달았다는 것을 말이다. J 부장은 '남의 일은 모른 척하겠지만 자기 옷에 똥을 묻히면 두 배로 갚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개고생이 그 메일로 범인이 확인해 주었으므로 그동안의 치욕을 두 배로 돌려주기 위해 J 부장은 빠르게 총지배인 및 임원진들을 참조로 달아 짧게 메일을 답변했다.


“세일즈 지배인님!! 오늘 아침 임원진 미팅에 참석 바랍니다.”


마치 저승사자의 초대장 같은 그 메일에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개 조심 엑셀 파일을 열어 '처단 완료'를 적고 저장했다. 그때 '띠링' 새로운 메일이 왔다. 그 메일에는 마치 ‘일개 허사원 나는 아시아 태평양 관리 책임자 앤이야’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선뜻 클릭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실눈을 뜨고 간신히 그 메일을 읽었다. 다행히 내용은 내가 보낸 메일과 자료를 보니까 본사 직원이 실수한 게 맞은 거 같다고 크리스마스 연말이라서 한국에서 B.R.G. 요청이 워낙 많이 와서 놓쳤던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는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럼 나를 거기 데려가 줄래'라고 답변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새벽에 내가 한 진상 행동 때문에 그 말을 아쉽게 꿀꺽 삼켰다. 그러면서 한 번도 승인된 건에 대해서 환불해 준 적이 없어서 지난 건에 대해서는 환불은 어렵고 이번 달에 승인된 6건에 대해서는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좋아서 김 과장에게 그 메일을 전달했는데 김 과장은 놀라서 나와 유리 선배에게 달려왔다.


“야! 미친 거니? 유리! 너 얘 안 말리고 뭐 했어? 아시아 책임자에게 전화를 하다니”

“미친개가 혼자서 짖길래.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어. 과장 얘 눈을 봤어야 해 미친개처럼 살짝 돌아있었다니까!”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건데.. 말해봐”


침착하게 지난밤 ‘중동 아시아 여행사 사장부터 아시아 책임자와 통화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설명하며 과장의 칭찬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답은 ‘미쳤어. 미쳤어'로 시작했다.


“미쳐서 그래 모르니까 용감한 거지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어. 잘했다 잘해서 하하하하하 그래"


미친 듯 웃던 김 과장은 J 부장이 부르는 소리에 J 부장의 사무실에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녀와 함께하게 된 점심시간에도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 한다며' 아까 마치지 못한 설교가 이어졌다. 전 부서에 예약실 미친개가 있어서 중동에서부터 아시아 전체를 총괄하는 관리자까지 전화했다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했다며 충고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문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본사에 메일을 보낼 때는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않았다.


“It's me!"


나야! 알지? 마치 그 부럽지, 사냥꾼처럼 말이다. 아마 어쩌면 그들도 나를 스카우트해야 하지 않을까? 논의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만 해도 잇몸 가득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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