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료들 내 동료

개성 매력 만점의 집합체

by 야초툰

사실 호텔 사원 시절 쏟아지는 업무 포탄들 사이에서 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와 생과 사를 함께 버텼던 나의 동료들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엉덩이 딱 붙이고 입술을 꽉 깨물고 그 자리에 7년 넘게 앉아 있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중에 소중해 꼭꼭 숨겨두고 싶었던 내 동료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나와 야근을 같이 하며 전우애를 다졌던 성유리를 전혀 닮지 않았던 유리 선배님


“C뱅이 어제 전화 많았다며?”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다가오는 유리 선배. 늘 그렇듯 그녀는 씨익 자신 있게 이를 드러내며 나타났고 그런 그녀를 살인적인 눈빛으로 쏘아보기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변명


“야 그러면 어쩌냐!!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나라도 별수 있냐?”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나는 천천히 위아래로 째려봤다. 구릿빛 얼굴에 심지어 구리에서 인천까지 장작 왕복 4시간을 공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그녀는 툭 튀어나올 것 같은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 눈 위로 진한 쌍꺼풀 두 줄이 짙게 그어져 있었다. 실룩거리는 입으로는 어느새 ‘미안해 근데 어쩌겠어’라며 연신 중얼거리면서 내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인상은 한마디로 ‘만약 인도에 가면 나마스떼라고 인도인이 먼저 인사를 먼저 건넬 것 같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마저 그 인상을 증명하듯이 자기 입으로 숱하게 “내가 인도에서 태어났으면 타고난 미인상인데 말이야”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말 자신의 이름 유리처럼 사람들과 관계도 유리처럼 자신을 비추며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보통 친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구분해서 친해지는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그녀에겐 모두 친한 사람이었으므로, 계급의 등급을 암수로 구분했다.


그런 그녀를 설명해 주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점심을 같이 먹고 직원 식당 복도 코너를 도는데 시설부 기사님이랑 유리 선배랑 어깨를 부딪쳤다. 당황한 나는 유리 선배를 보며 괜찮냐고 물었고, 유리 선배는 그런 나를 무시하며 자신과 마주친 기사님을 보며 씽끗 웃으며 말했다.


“아 이렇게 스친 것도 인연인데 친하게 지내요. 우리!”


아 어떻게 그 몇 초안에 저런 단어를 내뱉을 수 있을까 정말 감격했다. 다른 에피소드는 나의 야근 파트너였던 유리 선배와 야근을 같이 하고 아침 조에 인수인계하고 있는데 그날은 아침 조인 남자 선배가 매우 피곤해 보였다. 유리 선배는 역시나 그 선배에게 안색이 좋지 않다고 다가갔고, 그 남자 선배는 어제 과음을 해서 피곤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바로 그 유리 선배는 ‘아이고 선배가 피곤하면 안 되지 않냐 “면서 믹스커피를 타서 그 선배 앞에 대령했다. 심지어 호호 커피를 불어가며 식히고 오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리곤 뒤에 조금 늦게 온 여자 후배에게는 호통치며 “시간을 딱딱 제시간에 맞춰야지! 습관 된다”라며 혼을 냈다. 나는 매일 그렇게 남녀를 차별하는 선배에게 어느 날 물었다.


“이럴 거면 나도 남자로 태어날걸 그랬어 그랬다면 선배가 나를 아주 잘 가르쳐 줄 텐데~!!”


그 말을 들은 유리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럼~ 네가 남자 후배였으면 내가 무릎에 앉히고 우쭈쭈 교육했을 텐데 아쉽게 됐네. 넌 헛소리 말고 예약 들어온 거 정리나 해!!”


그 눈빛이 진심을 담고 있어서 나는 무척 서운했다. 어쩌면 선배와 더 친해지고 싶어서 한 볼멘소리가 부메랑처럼 내 목을 스치며 확인 사살을 하며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조심스레 믹스 커피를 타서 내 테이블 위에 툭 하니 놓고 갔다.


"C뱅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이거 마시고 해! “


그렇게 같이 야근하면서 같은 시간대 근무를 하면서 마치 군대 동기처럼 우리는 더 끈끈해졌고, 이 사람이 "C뱅이" 하면 내가 "어"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야근을 같이하다가 친분이 쌓여가면서 웃긴 일화들도 점점 늘어났다.


선배가 변할까? 일화 1


유리 선배는 아침에 굳은 얼굴로 출근했다. 왜 표정이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어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선배가 후배에게 욕을 하면서 일을 시키는 게 안 좋아 보였다며 오늘부터는 나에게 욕을 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대우해 준다고 했다. 개뿔 뜯어먹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 대한 호칭을 언제부턴가 C뱅이라는 자칭 애칭으로 불렀는데, 후배가 말은 더럽게 안 듣고 성격은 어찌나 골뱅이처럼 배배 꼬였는지 그렇게 지었다고 했었다. 차츰 그 애칭이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이제는 후배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다니 어이가 없어진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첫 전화를 받았다. 내가 받은 전화는 이미 화난 목소리 손님의 전화였는데, 나와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나보다 경력이 많은 상급자를 찾았다. 컴플레인할 게 있다면서 나는 조용히 유리 선배의 내선 번호를 눌렀다. 당시 선배는 나의 6개월 선배였다. 유리 선배는 내 내선 번호가 찍힌 걸 보고 웃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후배님~ 무슨 전환데 넘겨요?”


“응 컴플레인이요”


“아씨! C뱅이!! 설명하고..


“빨리 받아! 손님 엄청나게 화났어!”


“너!! C뱅이 이따 보자 아 고객님 네네..”


그 일은 5분 천하가 되었고 다시는 후배님이란 소리는 다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선배가 변할까?? 일화 2


같이 야근하다가 유리 선배는 어제 들어온 객실 예약이 총 5장 나왔는데 반반 나눠서 정리하자고 했다. 그러라고 했더니 당연한 듯 3장을 나에게 주고, 나머지 2장을 자신이 가지면서 ‘야 앞에 들어온 예약은 정리할 게 없어 원래 이거 C뱅이 네가 다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도와주는 거야’ 생색을 내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 말에 딱히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예약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다시 생색을 내며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야 이런 선배 없다! 2장이나 봐주다니~ 너 고마운 줄 알아!”


나는 그녀가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진작 눈치챘지만,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모른척하고 컴퓨터 모니터만을 보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자신이 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진 유리 선배가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


“아니!!! C 방이 아이고 선배님 고맙다고 해야지!”


더 이상 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거 마지막 한 장 예약 한 개잖아. 2장 아니고 사실 한 장이잖아. 내가 봤어!”


긴 머리카락 뒤로 두 귀가 새빨개졌다. 거짓말할 때마다 그 사실을 보여 주듯이 선배의 귀는 빨개졌다. 나는 그 빨개진 그녀의 귀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맞구나 “라고 사실을 확인하곤 했다. 유리 같은 인간관계를 가졌지만, 유리처럼 투명한 귀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유리 선배였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나는 따르고 싶었거나 존경하는 어른이 없었던 나에게 그녀를 점점 알아가게 되면서 나도 언젠간 저렇게 쿨하고 자신감 있게 한번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꿈꾸게 되었다. 비록 나와는 아주 다르지만 닮고 싶은 하지만 성유리를 전혀 닮지 않은 선배와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가 주임으로 승진해야 할 때가 되자 유리 선배는 예약 부서에서 홍보부서를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야 고인 물이 빠져야 물이 순환되는 거야!! 내가 거기 가야 네가 승진하지!”


자신을 고인 물이라 자청하며 아무렇지 않게 갔지만 마지못해 그녀가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홍보부서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데 주임으로 직책을 달고 가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홍보부에서 어깨가 축 처져 있던 선배에게 점심 먹자고 다가가면 그녀는 쌩끗 웃으며 마치 옷에 먼지를 털어내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야 그래 가자! 인생 뭐 있냐? 300만 원도 안 되게 버는데 한 달 카드 빚만 500만 원이다. 다 미친 술값이야 술값”


지금도 그녀는 호텔 어딘가에서 술 약속을 잡으며 미래를 약속할 남자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전쟁터의 포화를 같이 받아낸 것 같던 K 선배


어느 날 퇴사하는 K 선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파일은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말라”


K 선배의 목소리는 마치 본인이 강감찬 장군님이 된 것처럼 진지했다.


그래서였을까?


사뭇 진지함의 바통을 넘겨받은 나도 고개를 돌려 아무도 보지 못하게 모니터를 가리며 작게 끄떡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K 선배가 조용히 암호를 말했다.


“아 그리고 이 파일에 비밀번호는 7942”


나는 그게 ‘우리는 영원한 친구 사이’라는 뜻인지 알고 감동해 울 뻔했지만, 선배는 본인이 79여서 붙인 의미 없는 숫자라며, 남은 내가 걱정되는 듯이 어깨를 토닥였다.


K 선배와 나와의 나이 차이는 6살이었고, 신기하게도 우리의 입사 또한 6개월 차이가 났었다. 6이 가져다준 운명이었을까? 우리 둘은 각자 본인보다 잘난 동기와 같이 입사했다. 나는 고나라 라는 동기가 K 선배는 유리 선배라는 동기가 있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우리 호텔에서는 1+1 입사 정책이 있었다. 외적인 이유는 1+1을 뽑으면 서로가 경쟁해서 서로 끌어주고 발전한다는 이유였고 숨겨진 이유는 1+1에서 1을 뺀다 해도 1이 남기 때문에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듯 우리는 입사할 때부터 -1이 될 사람으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K 선배는 여행사 과장까지 하다가 우리 부서 신입직원으로 들어온 불편한 나이 많은 신입 직원이었고 나는 나이는 어린데 매일 사고를 치는 출근 할 때마다 옷에서 청심환 냄새나는 신입 직원이었다. (실제로 처음 전화받는 날부터 며칠간은 너무 떨려서 청심환을 쌩드리킹 연속으로 하고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미운 우리 둘의 여정은 본인의 동기들은 다 퇴근을 한 시간에도, 선배들이 정성껏 표시해 주신 빨간펜으로 적힌 지적사항을 수정하기 위해 늦게 퇴근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점점 우리의 나이 차이가 물가에 비친 신기루처럼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1년을 넘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우리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우리만 남게 되었다. 나는 점점 변해서 내가 미워하던 선배의 모습처럼 후배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K 선배는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신입을 가르칠 때도 한 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은 마주한 어떤 신입은 우리의 모습이 마치 천사와 악마가 같이 있는 모습 같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늘 좋은 사람들은 먼저 떠난다는 말이 있듯이 유리 선배는 홍보 부서로 떠나고 그녀도 서울에 있는 세일즈 본사로 승진해서 나의 동지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슬픔보단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보냈다. 어려움을 같이 한 동지란 그런 것이다. 언젠가는 그곳이 좋은 곳이라면 나를 불러줄 거라 생각하며, 말없이 나를 잊지 말고 그곳에 자리가 나면 꼭 불러달라고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그런 관계 말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사실 K 선배는 본사에 가서도 일이 너무 힘들어 잠을 3시간 넘게 자지 못하고 그곳에서도 텃세에 시달려서 차마 나를 부를 생각을 못 했다고 했다.)


선배의 바짓가랑이를 차마 붙잡지 못했고 K 선배가 남긴 파일을 조용히 USB에 담아 나 혼자 보라는 그 말을 지키듯 집에 가서도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그 파일을 열었다. 비밀번호가 뭐라고 했었지? 7941 아니 7942! 나는 비밀번호 칸에 7942를 입력했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여러 가지 탭으로 구성된 알찬 문서가 열렸다.


“와~~~~”


나는 그 파일을 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엑셀 파일의 첫 번째 탭에는 손님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심지어 자주 까먹는 정보는 빨간색으로 밑줄들이 쳐져 있었다. 빨간펜 선생님보다 더한 핵심을 찍는 교재와도 같게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탭에는 Q/A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몰랐던 침대 크기, 호텔 내에 우산 개수, 엑스트라 침대 현황처럼 모든 것들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 Ctrl+F로 찾으면 손님들이 질문에 답이 바로 찾아지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신세계인가를 거듭 외치며 두 번째 탭을 눌렀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엑셀 수식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각 셀에는 객실 기본 금액만 입력하면 나올 수 있는 패키지의 모든 경우의 수가 다 계산하게 되어 있었다.


그 당시 호텔에서 파는 패키지 7개가 넘었고 적용되는 금액 할인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예약할 때마다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들기는 게 호텔 예약실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 중 매일 아가씨를 외치며 계산기를 연신 두드리는 사람이 나였다.


“딱딱 딱딱 아가씨 잘못했다 다시! 다시!”


당연히 그렇게 계산하다 보면 늘 그렇듯 금액 계산에서 실수가 생겼고 다시 그 손님에게 전화해 사과하거나 김 과장에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석고대죄’한 뒤 금액 할인을 해 드려야 하는 상황까지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경위서를 써야 했다).


그 속에서 K 선배는 저기 저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 번도 금액을 틀린 적이 없었고 그 주변에는 나와 다른 직원들이 심어놓은 잡초들이 점점 여기저기 자라게 되었다. 결국, 그 잡초를 뽑다가 지친 김 과장은 매달 쪽지 시험을 보겠노라 선포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험문제로 인해 잡초들은 더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 시험 문제들이 그나마 조금 생겼던 잡초의 자신감마저 싹 쓸어버리는 제초제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Q) 문제를 푸시오!!!!


성인 2명에 자녀 3살 8살 자녀가 호텔에 A 패키지(RM ONLY)에 예약을 하려고 문의했다.

-객실 금액은 250,000원이다.

그들은 호텔 멤버십을 갖고 있어서 객실 10% 할인과 일찍 예약했기 때문에 EARLY BIRD 상품이 적용돼서 2만 원 할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패키지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아침 조식 비용을 따로 입금할 예정이라서 총금액을 알려달라고 문의했다.

*조식 금액은 성인 15,000원 소아 6-12 7,500원이며 호텔 멤버십 회원은 조식 할인율이 25% 적용된다.

*엑스트라 베드 추가 시 33,000 추가된다.


여기서 문제! 손님이 결제해야 할 총금액은?


매달 그 문제를 보고만 나온 직원들의 얼굴은 그들의 답을 말해주듯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져서 나왔고 그 쪽지의 답을 받아 든 김 과장의 얼굴은 반대로 점점 더 어두워졌다. “우리 부서의 장래가 매우 어둡다”라며 말이다.


그러나 그런 극악무도한 난이도의 쪽지 시험에도 늘 영웅은 존재하는 법 자신의 자리에 가서 당당하게 풀고 웃으면서 답을 제출하던 K 선배가 그 영웅이었다. 그런 선배 뒤로 백지 답안지를 들고 김 과장에게 죄인처럼 가는 내가 있었다. 그 선배의 비책이 이 엑셀 파일이었다니!!


그리고 엑셀 세 번째 칸에는 감동적인 편지가 담겨 있었다.


Dear 동지

조금 더 일찍 알려주지 않아서 미안해 동지!!

사실.... 내가 이 파일을 모두에게 오픈하면, 내가 엑셀을 잘하는 게 밝혀질까 봐 두려웠어! J 부장이 면접 때 여행사에서 과장급이었으면 엑셀도 잘하겠네?라고 물었는데 내가 1도 못한다고 했거든...

만약 내가 엑셀 잘하는 사실을 J 부장이 알게 된다면? 그 사람 엄청 소심한 거 알지? 나를 평생 쫓아다니면서 괴롭혔을 거야


이제라도 너에게 이 파일을 전해줄 수 있다니 나는 기뻐 알지?

아무도 모르게 너만 써!!


ALL THE BEST!!


미운 우리 아니 고운 우리 동지


그 메모를 보고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내가 쓴 경위서가 몇 장인데 라는 마음보다는 선배의 진심이 느껴졌다. 어쩌면 세상에는 빌런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나를 목메게 했다.


그리고 영웅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나에겐 K 선배의 엑셀 파일이 있었으므로 그다음부터는 손님이 자녀가 있다고 해도 목소리를 떨지 않았고 온갖 할인을 적용해도 틀리지 않았기에 경위서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들 나를 보고 일을 잘한다고 엄지 척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몰랐다. 그 파일의 존재를 그리고 나와 그 선배와의 비밀 파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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