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니! 너 내가 가만 안도!
기억이 어렴풋이 돌아오고 있을 때쯤 나를 향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깨셨어요? 대장 내시경 끝났는데, 3cm 큰 용종을 제거해서 배가 아프실 수 있어요"
아프실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정신을 차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배가 아프다는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옷걸이에 걸려서 찢어진 것처럼 배가 아파왔다. 다행히 배가 아파서였는지 용종이 더 컸으면 병원 입원해야 했다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게 되었다.
내시경 결과를 설명해 주는 담당 의사조차 아무렇지 않게 용종 사진을 보여주며, 태연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걸 느끼지 못 했던 것 같다. 이어서 의사는 차트가 아닌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혹시 집에 가서 배가 많이 아프거나, 열이 오른다거나 피가 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저... 지금도 배가 너무 아픈데요."
"아니 그것보다 훨씬 아프면!"
단호한 의사 선생님의 표정에 이 분이 진정한 명의구나 생각을 하며 나오는데, 문 앞에 심각한 남편이 서 있었다.
"아~왜? 그런 표정으로 서 있어? 어디가 안 좋데?"
"내 안에 3mm 용종이 있었데..."
"에~게? 그런데?"
"장이 너무 꼬불꼬불하기도 했고 너무 장 끝에 있어서 제거를 못했데."
"그럼 다음에 다시 해!"
"안돼 배가 너무 나왔다고 뱃살부터 빼고 오래!"
"그분이 진정한 명의네.."
갑자기 뱃살 다이어트를 처방받은 남편의 얼굴엔 침울함이 가득했다. 자기의 아내가 큰 용종을 제거했다는 간호사의 설명보다는 자기 안에 3mm 용종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듯 실의에 빠져 보였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갈 때까지 얼이 빠진 사람처럼 조용히 따라오다가 갑자기 내가 약을 지어서 나오자 나에게 따졌다.
"내 거는?"
"응?"
"내 약은?"
"네가 약이 어디 있어 용종 제거 안 했다며?"
"아니 아까 병원에서 처방전 두 장 줬는데.."
"아 하나는 약국 제출용, 하나는 보관용인데 니껀없어"
"나도 대장 내시경 하느라 고생했는데.."
남편은 마치 같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나만 주사를 맞고, 자기는 약 처방만 받고 나온 사람처럼 한동안 약국 문을 억울하게 바라봤다. 아픈 건 난데 마음이 더 아파 보이는 남편 때문에 아픈 것도 잃어버린 채 멍하니 서 있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데? 다 괜찮다지?"
"아.. 어.. 승준이는 용종이 있는데 작아서 아직 괜찮다고 했고, 나는 용종이 커서 제거했데~"
"얼마나?"
"한 3센티!"
"잘했다 잘했네 다행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엄마의 마지막 말에 문뜩 내가 배가 아파서 목소리를 쥐어짜듯이 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나 아팠지? 아팠네. 갑자기 배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아직도 약국 문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끊자마자 소리쳤다.
"마흔 살 금쪽이! 그렇게 억울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택시 불러! 나 배 아파"
"아.. 어"
악귀 같은 아내의 표정을 마주하고 나서야 남편도 자신의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인지했는지 남편은 택시를 서둘러 불렀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배 안에 있는 3mm 용종보다 자기 앞에 서 있는 158cm 큰 용종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던 모양이다.
택시를 타서도, 과거의 자신의 과오를 씻어내듯이 큰 수술을 했으니 앞으로 특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며 대장 내시경 용종 제거 후 음식에 대해 설명하기 신나서 시작했다.
"여기에 쓰여 있는데, 1센티 이상 큰 용종을 제거했을 경우 일주일간은 가능하면 죽을 먹어야 하고 일반식 먹을 때도 자극적인 것은 되도록 피하고 커피와 술은 절대 안 된데~."
"안 안~~~ 돼! 아 내 혈압!"
죽을 일주일 더 먹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걱정 마 이제 내가 죽은 마스터야! 밥솥으로 죽 한다니까!"
"너나 먹어 죽 마니!"
왜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은가? 그렇세 죽만 먹은 지 5일 차, 마실 땐 몰랐지만 커피 광고에서 들리는 커피를 따르는 '또르르르' 소리마저 이젠 내 심장을 아프게 했다.
죽을 먹다가 눈을 감으면 상상 속에는 한 손에는 이에 닿자마자 아삭아삭 깨지는 치킨껍질을, 다른 손에는 입안 온갖 소스로 범벅하세 만들 피자를 들고 있었다.그러다 눈을 뜨면 내가 먹지 못하는 자장면을 내 앞에서 태연하게 먹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뱃살 빼고 오라고 한 사람은 분명 저놈인데, 왜 내가 죽을 먹고 있는지 우울해졌다. 내 인생에 행복을 결정하는 건 팔 할이 음식이었다는 걸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남편이 남긴 자장소스에 코를 대봤다. 냄새라도,
"금쪽이 너 이 굴욕 똑같이 갚아주겠어!"
그리고 며칠 후 복수의 기회가 빠르게 찾아왔다. 요즘 머리카락이 얇아져 걱정이 많아진 남편에게…
Ps. 2024년 건강검진받는 거 어떠세요? 저도 받으니까 앞으로 건강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