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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Apr 13. 2024

안녕하세요, 회원님 방문은 처음 이신가요?

소개는 소개를 부른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악마 같은 분이 상주하는 상담소인가요? 승주 씨 소개로….”

“아! 들어오세요.”

 

선애의 눈빛의 한 마리의 사냥감을 포획했다는 듯이 번뜩였다. 그에 맞추어 불안한 듯 연신 손톱을 뜯는 진회색 운동복 차림으로 상담소에 발을 내디딘 여자는 다른 상담소와 다르게 아무런 조명 없는 상담실에 희미하게 지철의 사무실에서 어렴풋이 비치는 주광색 불빛에 현란한 불빛을 피해 오히려 따뜻한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마음에 불안하게 떨리던 눈동자가 점점 차분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억지로 끌려온 듯 보이는 여자는 온통 검은빛인 상담실이 신기한 듯 망설이며 들어왔다. 승주가 보낸 여자가 혹시나 도망갈까 봐 전전긍긍해 보이는 선애는 그녀의 등을 밀며 지철의 사무실에 억지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얼른 커피 타올게요~”

 

선애에게 떠밀려 들어온 사무실에 멍하니 서 있을 수만 없어서 자신 앞에 놓인 쓰러질 듯 보이는 나무 의자에 어쩔 수 없이 앉게 되었는데 문뜩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향기로운 시트러스 향이 풍기는 것을 느껴졌고, 그 향긋한 향을 맡으며 몸의 긴장이 한껏 풀어진 것 같은 찰나에 따뜻한 커피를 든 선애가 문을 열고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냄새 좋죠? 사실 여기 있는 남자분이 피우는 담배 향기가 고약해서 제가 오늘 향을 과하게 피웠어요~”

“남자요? 저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끼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애는 커피를 그녀에게 건네고 허공에 대고 손짓하며 지철을 불렀다.


“아니 원장님 손님 오셨어요! 기분이 아무리 안 좋다고 해도 나와는 보셔야죠?” 


 선애의 말에 부스스 코발트 벨벳 커튼이 열리더니 검은색 패딩을 입은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걸어 나왔다.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패딩 입은 흙빛 피부를 가진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건장한 체격을 커튼 뒤에 숨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보다 더 억지로 커튼 속에서 끌려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웃음소리에 지하철은 정색하며 그녀를 죽일 듯이 째려보았고, 그 모습에 선애가 당황해하며 지철을 등을 뒤로 돌리며 주의를 주었다.


“원장님! 손님을 그렇게 쳐다보시면 다 도망가요. 승주 씨 소개로 오신 분인데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웃어 주시면 더 좋고요.”

“악마는 아니 악마 같은 사람은 다정하게 미소 짓는 법을 모릅니다! 선애 씨.”

  

그의 말에 상담받으러 온 여자 혜련은 이곳의 간판이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같았다. 악마가 상주하는 심리 상담소. 사실 승주 씨가 악마 같은 상담사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뜩 그녀는 자신을 안내해 준 여자가 그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심도 잠시 저 사람이다 하며 지철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이 원장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혜련이 상상했던 악마 그 자체였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저 눈과 당장이라도 욕을 뱉을 것 같은 한쪽으로 올라간 입꼬리 하며. 하지만 왠지 또 매력이 흘러넘치는 코끝. 저 정도 외모라면 악마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잠시 혜련의 머리를 스쳤다. 지철은 자신을 쳐다보는 혜련의 시선에 지철도 이에 질세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필라테스 강사 라고?” 

 

 이번에는 다른 상담 기록지에서 없었던 천국에 가기 위한 방법이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철을 놀라게 한 건 혜련의 직업이었다. 딱 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혜련이의 몸이 필라테스 강사라고 하기엔 다소 푸근해 보이는 인상과 건장해 보이는 그녀의 몸매가 그의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철의 시선에 놀란 선애가 지철의 팔을 꼬집었고 그 모습을 본 혜련은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아하하 어떻게 아셨어요? 사람들은 제가 말 안 하면 잘 모를 텐데…. 역시 승주 씨 말대로 악마와 같은 통찰력이 있으신가 봐요 하하하.”


 민망한 듯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철이 물었다.

“혜련 씨 그 필라테스 학원에 회원은 있어요?”

“원장님!!! 그렇게 실례되는 말을!”


 지철의 말에 질색하는 선애의 모습에 혜련은 괜찮다며 손을 휘저어 보였다.

“없죠…. 당연히 강사가 이 모양인데 어떻게 손님이 있겠어요. 사실 필라테스 지도사 자격증도 뭐랄까? 도피용으로 딴 거죠. 숨 막히는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칠 이유를 찾은 거죠.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졌고요.”


 멋쩍게 웃는 혜련을 지철은 무심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피형 인간들은 대부분 지철의 지옥 불에 던져지는 대다수의 영혼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지옥 불에서도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악마 베스탄을 만난 후에도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곤 했고 그러면 그는 그들을 한참 돌리다가 거의 그들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쓰러질 때쯤 잡아다가 지옥 불에 던지곤 했다. 


 그 기억들이 떠오르자, 지철은 잠깐 어둡게 드리워졌던 감정의 검은 구름이 잠시나마 걷히는 것 같았다. 씁쓸하게 웃고 있는 혜련을 보고 선애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시는데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건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돼요.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말이에요. 그때마다 온갖 핑계를 대며 그곳에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고 막상 도망치다 보니 이렇게 혼자가 되어있었죠. 결국 집에서 혼자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는 신세랄까? 어쩌면 저는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기름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어울리려고 할수록 저는 계속 분리되는 거죠.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저 자신으로부터 말이에요 승주 씨를 만난 것도 제 인생의 최악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이었어요.”

“유명한 씨의 무료 법률 상담소에서 만나신 거요?”

“맞아요. 제가 운영하는 필라테스 사업을 접으려고, 건물주 분께 나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음 세입자 찾을 때까지 전세금을 못 주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계약 만료일까지 텅 빈 가게를 지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요?”

“그런데 저희 아파트 내에 못 받은 전세 값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무료 법률 상담해 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처음으로 용기 내서 가봤어요. 갔더니 대기자가 많아 며칠씩 기다려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커피를 주셨는데 맛이….”

“없었군요?”

“네 저한테는 이상하게 맛이 없었어요. 아파트 내에는 커피 맛집이라고 분명 소문난 곳이었는데…. 제가 기름 같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승주 씨가 탄 커피를 제 혀가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그런 맛이었어요. 아무튼 저도 모르게 맛없다고 말하는 순간 승주 씨의 얼굴이 엄청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손까지 덜덜 덜 떠시더라고요. 처음 봤어요.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순식간에 빨개지는 건….”

“그리고 승주 씨에게 이곳을 추천받으셨고요.”

“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악마의 상담소라니. 하지만 승주 씨가 너무 진지하게 권하시는 바람에 거절할 수 없었죠. 무료로 가식 없는 상담도 받을 수 있고 맛있는 커피도 있다며 추천해 주셨어요.” 


 선애는 자신이 탄 커피가 어떤지 문뜩 궁금해져서 더 가까이 혜련에게 다가갔다. 선애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에 미안해하며 혜련이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저에겐 맛이 없네요…. 죄송해요.”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혜련을 뒤에서 지켜보던 지철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기름 같은 사람이라. 그럼…. 그 기름을 없애려면 시원하게 불을 한번 질러야겠네요 하하하.”


 선애와 혜련은 놀란 듯 지철을 쳐다보았고 지철은 혜련에게 핸드폰이라는 말을 뱉고, 구릿빛 검지 손가락을 혜련을 향해 까딱까딱 흔들었다.


“흠. 이것 또한 흥미롭군….”


 한참을 혜련의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를 응시하던 지철은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적더니 다 되었다며 혜련이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곤 혜련에게 한 달 후에 보자며 선애에게 다음 상담 일자를 잡으라고 말한 뒤 커튼 뒤로 숨어버렸다.


 혜련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지철의 손가락이 마치 자신을 홀린 듯이 핸드폰을 건네준 상황이 아직 믿기지 않는지 멍하니 자기 손에 들린 핸드폰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상담받으러 왔으나 상담도 하기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이 털려버린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고 선애 또한 이런 갑작스러운 지철의 행동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음 상담 예약을 받기 위해 혜련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다음 상담 예약은 언제가 편하시겠어요?”

“아! 네…. 상담이요?그러니까 한 달 후면 그러니까 5월 5일 어린이날로 잡아주세요. 보통 일하는 날은 오전 11시부터 10시까지 필라테스 사무실에 앉아 있거든요.. 만약 한 달 뒤까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필라테스 가게를 운영할 수도 있으니까, 공휴일로 잡는 게 낫겠네요”

“네….그럼, 그때로 예약해 드릴게요. 5월 5일 오후 10시 아! 혜련 씨 연락처는 이곳에 적어두세요. 혹시 모르니까 말이에요”

“그럼 그때 봬요” 


선애는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혜련을 문밖까지 안내하고 지철의 사무실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지철이 선애를 기다렸다는 듯이 웬일인지 커튼 밖으로 나와 있었고 선애에게도 혜련에게 그랬던 것처럼 검지 손가락을 까딱이며 그녀의 핸드폰을 달라고 말했다. 선애는 입으로는 그전에 혜련의 핸드폰으로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고 있었지만, 선애의 손은 마치 악마의 주술에 걸린 것처럼 지철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있었다.


“아니! 내 손이 왜 이래?” 


 핸드폰을 받아 든 지철은 전화번호부에서 누군가의 번호를 찾더니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상대편이 전화를 받는 듯한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지철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승주 씨! 오랜만이에요?잘 지냈어요?”

“네 원장님 무슨 일로?”

“아니 손님을 소개해 주셔서 고맙다고 전화했어요. 또 그 고마움을 갚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게….무슨?”

“아니 소개해 준 손님 그러니까 혜련 씨가 상담받고 나가는데…. 자기네 아파트 카페에다가 무료 변호해 주는 상담소에 대해서 글을 올리는 것 같더라고 내용을 슬쩍 보아하니 승주 씨 커피에 대한 글이던데…. 내용이 아주 별로더라고…. 나한테는 그렇게 커피 잘 탄다고 하더니 아니었나 봐?” 


 선애는 지철이 하는 말에 경악해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지하철은 선애를 피해 벨벳 커튼으로 쏙 들어가 숨어버렸다. 그리고 혜련이 남긴 그러니까 지철이 혜련이 핸드폰으로 남긴 글을 승주가 보고 전화기 너머로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408동 1901호/ ID: 혜련 필라테스

아파트 내 무료 변호해 주는 상담실 커피 웩! 퉤! 완전 극혐! 식은 커피보다 더 혐오하는 한강 물에 탄 커피 같았음

재방문 의사: 없음


“이 여자가 미쳤나!!! 아파트 카페 게시글에 이딴 글을!”


 승주의 화난 듯한 목소리가 지철의 수화기 너머로 찢어질 듯 갈라지며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뭔지 알아요? 그 여자 호수가 글쎄 1901호였어요. 일전에 우리가 층간 소음으로 섭외하려고 했던 유명한의 바로 윗집 말이에요”

“1901 호고 뭐고! 당장 이 여자를 찾아가 글을 내려달라고 해야겠어요! 이렇게 글을 올리면 어떻게 이게 다 동네 장산데!”

“아니 그런데 승주 씨 글을 내리면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이미 20명이 넘었는데 갑자기 내리면 당연히 승주 씨를 의심하지 않겠어요? 아니면 협박 받았다고 그 여자가 다시 글을 올릴 수도 있고 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지역 커뮤니티에서 분리수거 안 되는 쓰레기 되는 건 한 순간이야! 하하하.” 


 전화기 너머로 분노로 치를 떠는 듯한 승주가 계속해서 소리 지르는 소리가 커튼 밖으로 들려왔다. 그 모습에 지철은 신이 난 아이처럼 웃고 있는 것처럼 커튼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을 놀리면서 자신의 기분을 푸는 듯한 악마 같은 지철의 모습에, 선애는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그의 행동을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거의 다. 거의 다 왔었는데 저! 미친 원장 때문에….’


 선애는 웃고 있는 지철이 방심한 틈을 타 커튼 속에 손을 넣어 지철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더니 커튼 끝을 잡고 돌려 지철을 김밥처럼 그 속에 둘둘 말아버렸다. 뭐 하는 거냐고 거칠게 반항하는 지철이 있는 커튼 끝자락을 자신의 등으로 누르며 승주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승주 씨…. 잘 들어요 아직 우리에겐 아직 방법이 있어요!”

“네…. ”

“그 손님 그러니까 혜련 씨가 5월 5일에 다시 우리 상담소에 오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녀의 생각을 바꾸는 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조심스럽게 게시글을 다시 올려달라고 부탁하면 거죠.”

“어떻게요?”

“매일 그녀의 집을 찾아가 커피를 배달해요! 시간은 대략 오전 9시가 좋겠네요. 눈을 딱 떴을 때 커피가 당기는 시간이잖아요. 이유는 음…. 원장님이 상담 후에 먹는 약 대신 승주 씨 커피를 매일 배달해 주는 걸로 처방해 주었다고 하면서 무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시라고 하는 거죠. 물론 내가 문자를 먼저 보내 놓을게요”

“그게 될까요? 주소는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요?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거 아니에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혜련 씨 주소는 아까 원장님께서 핸드폰으로 검색하셔서 아셨다고 하면 돼요. 요즘은 배달 앱에 주소 잘 나오잖아요.”

“계속 배달한다고 평가가 나아질까요?”

“그럼요.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맛이 없더라도 점점 그 손맛에 익숙해지잖아요. 물론 승주 씨가 타준 커피가 맛없다는 건 아닌 걸 알죠?” 


선애는 혹시 승주가 화를 낼 수 있으니 빠르게 변명을 했다.

“에이.. 선애 씨 맛있기는 무슨 한강 물에 탄 커피인데요.”

“그거 별말 아니잖아요. 맞아 승주 씨도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 있었잖아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그 커피 홀더에 문구를 적어야 해요. 예를 들면 오늘도 파이팅 힘내세요. 오늘 벚꽃이 예쁘게 피었네요. 같은 말 있잖아요. 그런 문구가 가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든요. “

“에이~ 선애 씨 무슨 옛날 사람도 아니고 무슨 그런 거를 써요?”

“옛날도 지금도 그렇고 통하는 건 통한다니까요. 저도 그랬었고….” 


 씁쓸하게 웃어 보이는 선애의 표정이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승주와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커튼에 돌돌 말아두었던 지철도 다시 풀어주었다. 잔뜩 날이 선 지철이 커튼에서 나와서 말했다.


“쓸데없는 참견을 했어요. 선애 씨 그런다고 나아질 것 같아요?”


 이번에는 예전과 달라진 선애가 눈에 핏기를 세우며 말했다. 


“그럼요? 뭐라도 해야죠. 원장님이야말로 왜 그러셨어요? 가만히만 계셨어도 다 자연스럽게 해결할 일들을!”

“해결은 무슨! 그분이 나보고 해결하라는 듯이 혜련 씨가 천국에 갈 방법을 상세히도 상담지에 적어 주셨더라고요. 고귀하신 그분이! 그래서 속이 더 뒤틀리는 것 같았죠. 그냥 싹 다 불 질러버리고 싶었다고요 나야말로!”

“그렇다고. 어떻게 승주 씨에게 그런 짓을?”

“잊었어요. 선애 씨? 저는 악마예요. 더한 짓도 할 수 있죠. 상상을 해봐요. 아름답지 않아요? 기름 같던 혜련 씨와 불 같이 타오르는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승주 씨가 만나면 얼마나 아름다운 불꽃이 튈까. 하하하 저는 더 이상 지옥의 신이든 사신이든 그들의 꼭두각시와 같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거예요.”

 목에 핏줄을 세우며 분노하는 지철의 모습과 반대로 선애는 차분하게 눈을 감으며 말했다.

“원장님! 그게 진정한 복수라고 생각해요? 그건 복수가 아니에요. 그들이 내 억울함을 알아야 진정한 복수죠. 저는 무조건 원장님을 지옥에 다시 돌려보내고 저도 다시 제 자리에 돌아갈 거예요. 지옥에 가서 복수를 하든 타협을 하든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아시겠어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에서 불꽃이 튀는 것처럼 보였다. 지철은 감히 악마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 것이냐는 듯 쳐다보았고 선애는 자신을 방해하면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지철이 선애의 눈동자에 비친 자기 모습에 선애가 간신히 참고 있는 눈물에 가려져 일렁이고 있음이 느껴졌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베스탄의 귀환을 오직 그녀만이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생각에 퇴근해 보겠다는 뒤돌아선 선애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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