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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Apr 13. 2024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도 악플러가 될 수 있다.

“쿵쾅쿵쾅”

 

 평소에 조용한 지철의 사무실에 요란한 망치 소리가 울렸다. 코발트 벨벳 커튼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지철은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깨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사무실 문에 검은색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선애가 직접 타온 커피를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사무실 문이 고장 났다고 당근마켓에 방금 올렸는데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그런가요? 제가 마침 근처에 있어서”

“이렇게 페인트칠까지 해주시고 감사해요. 아 여기 커피 마시고 하세요.”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이런 인테리어가 유행인가 봐요. 얼마 전에 방문했던 유명한 무료 법률 사무실도 이렇게 벽지 문 거의 검은색으로 인테리어를 하셨더라고요 혜련 필라테스도 그렇고 이제는 우드 앤 화이트가 아니라 다크 앤 다크니스가 유행인가 봐요?”

“아…. 그런가요? 그것 참 우연이네요.”

“그분들이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앉아 있을 때 왠지 모를 편안한 감정이 몰려온다고요. 그래서 그렇게 바꿨다고 하던데…. 혹시 이곳의 영업 비밀이 노출된 건 아닐까 걱정되네요. 상담이라는 게 사실 법률 상담을 받으면서 할 수도 있고 운동을 하면서도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손님 뺏기시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하고요.”

“뭐 그렇긴 한데…. 저희는 특별한 상담을 하는 거라서 그렇게 걱정을 굳이.”

“아니에요. 그렇게 손 놓고 계시다간 손님 다 뺏겨요. 어떤 조치를 빨리 취하지 않으신다면….”

 

아무 예고 없이 자신의 낮잠을 깨운 상황에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지철은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선애는 그런 지철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아 원장님! 눈 좀 그렇게 뜨지 말라니까요. 제가 어떻게 부른 분인데. 그리고 요새 이렇게 무료로 나눔을 하시는분 많지 않는단 말이에요. 얼마 전부터 사무실 문이 고장이 나서 제가 열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나는 게 신경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몰라 당근마켓에 기술을 무료로 나누실 분 있냐고 조심스럽게 올렸는데, 인테리어 업자라는 분이 오셔서 고쳐주시고 있단 말이에요 아시죠? 이번 달 예산 빠듯한 거. 그러니까 조금만 참으시면….” 


 자신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선애를 뒤로하고 무표정의 지철이 작업하는 남자를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변한 게 없군요…. 당신은 남의 일에 왈가왈부하는 게 말이야.”

“이렇게 다시 뵙네요. 원장님 제가 다시 볼 거라고 했잖아요.”


 마치 구면인 듯 보이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지철은 그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듯 말을 이어간다.


“아직도 여기저기 악플을 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글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태연하게 지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다시 페인트칠하기 시작한 민철은 지철이 보이지 않게 씩 웃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두 사람의 대화에 선애가 불쑥 끼어든다.


“원장님? 구면이세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처음으로 한 상담자였죠. 그리고 저에게 인간은 절대 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 준 인간이기도 하고요 성함이? 구민철 씨. 절대 잊을 수가 없죠”

“아니죠. 저는 원장님과의 상담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다른 인간으로 말이죠.” 


 양처럼 평온한 듯 보였던 민철은 지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확 눈빛이 바꼈다. 비열한 웃음을 띠며, 선애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저는 저밖에 모르는 오만한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을 감정 없이 대했다고 해야 하나? 감정이 아예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 저도 열정 많은 신입 사원이었어요. 맡은 일은 그냥 앞만 보고 열심히만 하는 불도저 같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사회는 그런 사람보다 남들의 에너지를 빼앗아 자기 능력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빠르게 승진했죠. 그러다 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저도 대리를 달고 부장 자리에 오르다 보니 오히려 감정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시죠? 그들을 채찍질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직원들은 부속품처럼 대했어요. 그 자리에 맞지 않으면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독설을 뱉었죠 “이게 일이라고 한 거냐?” “너를 대체할 사람은 쌔고 쌨다”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요?”

“그런데 퇴직하고 보니, 제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거예요. 직장 동료도 친구도 가족들까지 모두 제 옆에 없었죠. 그래서 그냥 갈 곳이 아무 데도 없는 부품처럼 되어버린 거예요. 그렇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죠. 악마의 심리 상담소에.”


 민철은 과거에 기억이 떠오르는 듯 사무실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 모습을 본 지철이 입꼬리를 오른쪽으로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제안했죠. 그렇게 하릴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며 빈둥거리지 말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서 취준생들 취업 상담을 해주라고 말이죠. 두 번의 상담으로 민철 씨야말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었죠. 하지만….”


 지철이 눈썹을 찌푸리며 민철을 쳐다보자, 민철은 마치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점점 취업 준비생들이 던지는 질문에 독설 하기 시작한 거예요. 영어 질문이 나오면 어떡하냐는 둥 회사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냐는 둥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태도로 무슨 면접이냐? 때려치워라, 세상에! 너 같은 애는 쌔고 쌨다며 점점 수위가 센 답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비록 집에서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감을 느꼈달까? 아무튼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때의 행복한 기분을 떠올리는 듯 민철은 뿌듯하게 웃고 있었지만, 지철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제가 세 번째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악플에 중독이 된 상태였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익명이라는 장치에 숨어 점점 거짓말이 그에게 진짜라고 느끼는 허언증 중독 상태였어요.”

민철은 지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반박을 했다.


“그건 아니죠. 원장님! 저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걸 알려준 것뿐이라고요. 그리고 한번 제가 뱉고 나면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이미 모두에게 기정사실이 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나름 저도 노력했잖아요. 악플 다는 걸 그만두려고 했어요. 진짜예요. 마지막으로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했는데 그랬는데….” 


 민철은 선애에게 말하다가 그동안의 억울한 사연이 불현듯 생각난 듯 페인트칠하던 붓을 던지며 지철에게 달려들어 지철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다시 악플을 못 달게 당신에게 이곳에서 꾸준히 상담받게 해달라고 했잖아! 이곳에서 털어놓겠다고 했는데…. 당신 감쪽같이 사라져서 주소도 바꾸고 내가 몇 번이나 찾아왔는데….공터였다고! 당신은 나를 그냥 방치한 거야! 상담사라는 사람이 말이야!”

“아니 나는 안 거야! 세 번의 상담으로 당신은 가망이 없다는 걸.”

“아니야! 나는 당신이 만약 상담만 해줬다면 당신이 내 아이디를 다 실명으로 나 몰래 바꾸지만 않았어도 악플을 달다가 마녀 사냥 당할 일도 없었다고! 내 신상이 털리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악몽으로 바뀌는 게 얼마나 찰나였는지 당신이 알아? 당신은 나를 지옥에 아니 지옥 불에 던져두고 도망간 거야 이 악마 같은 인간!”

 

 지철에게 점점 다가왔던 민철은 순식간에 지철에게 달려들어 지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선애는 민철에게 달려가 지철의 목을 조르는 그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민철에게 목이 졸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지철은 차갑게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지…지옥? 같같… 았다고? 진짜 지옥은 네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있었어! 내가 너를 보내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 너 같은 인간을 지옥에 보내지 못한 걸 말이야!”

“웃기지 마! 나는 그들 자신이 차마 자기 자신에게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해 준 거야. 오히려 내가 구세주라고 지옥? 보내봐! 내가 한 일들을 그곳에서는 알아주겠지. 하지만 그전에 네가 먼저 지옥에 가게 될 거야!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지.” 


 지철의 목을 더 힘껏 조르던 민철을 막는 선애를 뿌리치려고 왼손을 휘둘렀는데, 그사이 지철이 자기 오른손을 펴 민철에게 뻗었다.


“지옥에 가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내가…보내…주지” 


 순간 보라색으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지철의 목을 조르던 민철이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민철이 휘두르던 손에 넘어진 선애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혹해하며 물었다.


“민철 씨? 민철 씨! 어디 간 거예요?”

“어차피 지옥에 갈 인간…. 지옥으로 보내버렸어요.”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원장님은 지옥에 갈 사람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 여기 온 거잖아요. 그런데 지옥에 보내면….”

“벌을 받겠죠. 아니 영원히 지옥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요.”

“안 돼요! 저는 그럼 어떡해요?” 


 울먹이는 선애의 목소리에 지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순간 정적만이 흘렀다. 그리고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지철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검은색 핸드폰 화면에 핏빛처럼 빨간색으로 찍힌 번호가 그 발신자를 말해주고 있었다.


“지옥의 신.” 


 지철이 전화를 받자마자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상담실을 울렸다.


“베스탄! 도대체 무슨 짓을 또 한 것이냐?”


 지옥의 신의 목소리에 놀라기는커녕 얼음을 끼얹은 듯 차분한 목소리로 지철은 말했다.


“안녕하세요. 지옥의 신님 친히 전화를 직접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아니! 생명이 아직 남아있는 인간을 이곳에 보내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아니죠. 지옥의 신님 저는 오히려 그를 도와준 겁니다. 아시잖아요. 그 인간은 아니 그 짐승은 어차피 이 인간세계에 남아있어 봤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그가 남기는 혐오와 증오의 표현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겠죠. 그러다 그 죄로 인해 비행기 추락사고로 타 죽을 운명이었다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그의 마지막을 아픔 없이 사라지는 구원을 베푼 것뿐…. 그가 감수해야 할 것은 처참한 죽음 대신 지옥에 조금 일찍 도착한 것뿐입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신들이 정하는….”

“물론 그러시겠죠. 이제부터 그를 위해 신들이 정하는 일을 하시죠. 저는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그러니까 지옥에 갈 사람을 미리 지옥에나 먼저 보내야겠으니, 말이에요”

“베스탄!! 네 이놈 감히...”

“아니다. 그냥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까요? 어차피 제가 봤을 때 이곳이 지옥보다 더 끔찍하게 변해 가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어떠세요? 제가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면 당신이 있는 그곳은 지옥이 아닐 테니까. 당신도 필요 없게 되는 거죠.”

“그게 무슨…말도 안 되는..”

“왜요? 제가 못 할 것 같으세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워요. 이미 그들은 지옥에 살고 있거든요. 지옥의 신님은 인간들이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으세요? 지옥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는 세상? 둘 다 틀렸어요. 그들은 끝도 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미로 속에 갇힌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들은 빛이 자신을 비추는 출구에 있다고 믿고 있죠. 하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그 끝에 좌절하거나 지쳐버리고 말아요. 제가 다 봤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천국에 갈 빛을 주라고 너를 이곳에 내려 보낸 것 아니냐?”

“글쎄요. 그 빛이 영원하면 좋지만, 그들이 볼 수 없는 한 그건 허상에 불가해요. 만약 제가 그들에게 “어차피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써봤자 당신은 어차피 지옥 행이야”라고 귀띔이라고 해준다면? 그 이후부터 그들이 살아있는 이 인간세상 자체가 지옥이 되는 거예요. 더 이상 지옥도 필요 없게 되는 거죠. 그럼, 당신도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지옥에서 신도 아닌, 쓸모없이 버려진 쓰레기에 불가하게 되겠네요. 저처럼 말이죠.”


 지철은 그동안 쌓였던 울분은 그에게 쏟아내듯 토해냈다.지옥의 신은 당장 무슨 사고라도 칠 듯 따지는 지철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변명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악마라니…. 그건 아니다. 나는…. 지옥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했어.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신들이 네가 벌려놓은 혼란을 잊고, 모든 걸 다시 복구할 시간이 말이야. 그 이후에 나는 다시 너를 부르려고 했다. 진짜야! 너는 우리 지옥에서 최고의 악마 베스탄인데 내가 버릴 리가 있느냐?”

“이제 와서 변명해 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모든 게 저에겐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베스탄. 네가 돌아오지 않고 인간세계에 영원히 남는다면 넌 얼마 못 가. 그곳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 내가 너를 그곳에 보낸 것과 네가 그곳에 남기로 한 건 천지 차이니까.”

“알아요.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제가 마지막으로 죽이는 존재가 하찮은 인간이 아닌 바로 지옥에서 가장 유능했던 악마 베스탄이라니….”

“베스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넌 늘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게 문제였어. 유능하지만 생각이 짧았지!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너를 부를 테니….”

“이미 다 끝났어요. 더 이상 저를 건드리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확고하니까. 다만 당신께 드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려드리죠. 만약 당신이 민철 씨를 다시 내려 보낸다거나 선애 씨에게 다시 생명을 주지 않는다면. 저는 이곳을 불바다 지옥으로 만들 생각이거든요.”

“너 혹시 알고 있었던 게냐? 선애가 이미 죽은 영혼이었다는 걸?”

“처음 사무실에 온 순간부터 알았죠. 그녀에게 지독한 악취가 났거든요. 내가 지옥에 온 죽은 영혼에게 수 백번 맡았던 악취가.”

“하지만 선애를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건 불가하다. 알지 않느냐? 내가 지금 선애에게 불어넣은 인간의 생명은 한시적인 악마의 계약 때문이야.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철을 달래는 지옥의 신의 말투와 다르게 당장이라도 지철을 죽이고 싶다는 듯이 악마의 상담소 밖에 창문에는 여러 개의 번개가 번쩍이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건 여전하시네요. 저를 이해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저를 죽이고 싶으신가 봐요? 안 되겠네요. 시간은 다섯 시간 드리죠. 아시죠? 저는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어서…. 아! 그럼 민철 님이 이승에서 다 쓰지 못한 생명을 선애 씨에게 불어넣어 주시면 되겠네요. 어때요? 간단하죠?”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다면. 세 시간 드릴게요. 지금으로부터”


 지철은 시간을 통보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지철의 통화를 듣고 있던 선애의 얼굴이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아니…. 원장님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제가 죽었다고요? 저는 분명 인력 사무소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죠? 아카시아 향이 짙게 묻어 나는 그런….”

“맞아요. 그랬어요.”

“당신은 아마 대기실에 앉아 있었을 거예요. 그곳에서는 자신이 죽은 지 깨닫지 못한 채 이승에서 일로 재판을 받게 되죠.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그리고 때마침 지옥의 신이 내가 벌인 천기누설에 관련된 일 때문에 긴급회의를 하기 위해 그곳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고.”

“맞아요 그때 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밖에 나온 거라 신이 나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옥의 신은 당신을 보는 순간 깨달은 거예요. 나를 옭아매기에 딱이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아직.”  

“맞아요! 당신은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서 해야 할 복수가 있겠죠? 제가 복수라는 말을 할 때 빛나던 당신의 눈빛을 봤어요.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당신은 이미 이 세계의 생명이 다 한 사람이에요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남은 생명으로 이어가는 거죠. 이 세상의 삶을 말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어차피 남아 있어도 남에게 해가 될 목숨이었어요. 당신이 이어간다 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알잖아요. 남의 목숨을 빼앗고 살아가는 제가!”

“어차피 다시 태어나면 당신의 기억은 모두 지워져 기억을 못 할 텐데 무슨 소용이에요?”


 지옥의 신이 깊은 고민에 빠진 것처럼 밖은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번쩍인다.


“말도 안 돼요. 저는 정말 다시 지옥에 돌아가게 하기 위해 아니 제가 제 자리에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갑자기 이럴 수는 없어요. 당신은 이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죠? 그런데도 저에게 한마디만 해줬어도….”


 지철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부정하듯 선애는 머리를 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아니요. 제가 한마디를 했다 해도 선애 씨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을 거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늘 지금처럼 이렇게 울부짖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지철은 선애를 쳐다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선애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아니에요! 악마인 당신이 뭘 알아요! 저는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요 있었다고요!”

“글쎄요…. 그런 게 있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요? 당신께 그보다 중요한 건 제가 당신을 인간세계에 다시 돌아갈 기회를 드렸다는 사실이죠.”

“다시 인간세계에 돌아가면 뭐 해요! 복수해야 할 인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선애는 지철의 거만하고 독선적인 태도에 질렸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창문 밖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지옥의 신이 보낸 사신 K가 왔나 싶었지만 목소리가 왠지 익숙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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