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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Apr 13. 2024

핏빛 얼룩 진 선애의 과거

악연은 죽어서도 계속된다.

“유명한이 이쯤이라고 했는데…. 어디지? 보이지 않잖아. 이 사기꾼 또 나에게 사기를 친 거야? 그 악마가 상담해 준다는 상담소 어디 있다는 거야!”

 

잔뜩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된 남자가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만을 서성이고 있었다. 지철은 창문 밖 그의 모습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 남자는 몇 달 전 팀워크 대외비를 쓰기 위해 가는 길에 만난 유명한을 때리고 있었던 남자였다. 사신 K가 말했던 지철이 놓쳤던 사이코패스. 그가 지철의 상담소가 보이지 않는 듯 서성이며 건물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봐요~ 정지철 씨 어디 숨었어요? 나 조주만이요 당신들 덕분에 사진 찍혀 인생 망친 사람이요! 나와봐요.” 

 건물을 쩌렁쩌렁 울리는 조 주만의 남자의 목소리에 지철은 선애와 나누던 대화를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기 상담소의 문을 겨우 통과할 것 같은 뚱뚱한 체구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겠군.”


 조주만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하는 지철의 목소리에 흥분한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기 있었군. 이 쥐새끼 같은 놈!”


 지철의 멱살을 잡으려고 달려드는 주만의 두 손을 날렵하게 피하며 지철이 말했다.

“있잖아 나는 두 번은 안 당한다고!”

“그래 나도 두 번은 안 당하려고 직접 찾아왔지. 당신 내가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인터넷에 얼굴뿐만 아니라 신상이 죄다 털려서 하고 있었던 사업도 친했던 거래처도 다 끊겨서 죽을 맛이라고 그런데 이런 어쭙잖은 문자까지 보내?”

“무슨 문자를 보냈다는 거야? 나는 보낸 적이 없는데?”

“어 그래? 이제와서 발을 빼시겠다? 그럼 내가 보여주지. 이딴 거지 같은 문자에 내가 속을 줄 알아?”

 주만은 자신의 핸드폰을 지철에게 들이밀며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유명한 무료 법률 사무소 1주년 VVIP 특별 이벤트!§

축하합니다. 조주만 님께서 당첨되셨습니다.

 6월 한 달간 이 문자를 받으신 분들에게 유명한 무료 법률 사무소에서 1:1 개인 상담을 무료로 체험할 기회를 드릴 예정입니다. 심지어 1+1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저희와 법률 상담이 끝난 후 저희와 연계된 악마의 심리 상담소에서 무료 상담을 받을 절호의 기회! 아시나요? 얼마 전 화제가 된 악마 같은 배드파파의 신상을 세상에 고발한 분이 바로 악마의 심리 상담소의 원장님입니다.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다면 저희 유명한 법률 사무소와 악마의 심리 상담소가 지친 영혼의 파트너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전화 주세요.



 지철은 자신이 혜련을 위해 보냈던 문자를 주만에게 보란 듯이 편집해 보낸 듯한 이 문자에 흥미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흥미롭군요. 선애 씨 제가 보낸 문자를 흉내 내다니요.” 


 지철의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선애가 앞으로 나와 지철의 옆에 서서 조 주만을 째려보며 말했다.

“원장님께서는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죠. 아니에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말이에요!”


 서로를 쳐다보며 나란히 서 있는 지철과 선애를 조주만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무튼. 뭐 다 필요 없고 나한테 이딴 문자를 보낸 저의가 뭐야? 당신들 때문에 이미 충분히 망해가고 있는 나한테 이딴 문자를 보내서 왜 화를 돋우냐고?”


 길길이 날뛰는 그의 태도에 지철은 재미있다는 듯 손을 비비는 채로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글쎄…. 나도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선애 씨? 이 사람은 악마에게 바치는 제물인가? 아니면 고마움의 표시일까요?”


 지철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선애를 쳐다보며 말하자, 지철을 뒤로하고 선애는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주만에게 점점 다가가며 말했다.


“원장님 둘 다 틀렸어요.”

“그럼요?”

“저를 위한 제물이죠. 이 사람이에요! 제 전남편. 자기 아내도 기억 못 하는 가련한 사람.”


 조주만 바로 앞에 선애가 다다르자, 조주만은 흠칫 놀란 듯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지금 내 아내는 지금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있는데….”

“아니 당신 두 번째 아내 말고 첫 번째 아내 말이야!”

“내 첫 번째 아내는 그러니까 민국이 엄마는 죽었는데…. 분명 교통사고로….”

“아니! 교통사고가 나를 죽인 게 아니야! 당신이 이미 나를 죽였었어! ” 


 첫 번째 아내 이야기를 하자 얼굴이 사색이 된 주만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명찰에 뚜렷이 적힌 선애라는 이름을 보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미 예전의 모습이 사라진 듯 보이는 선애가 주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뭐…. 얼굴을 기억 못 하는 건 예상했어. 당신은 늘 나를 쳐다보지 않고 바닥이나 허공을 쳐다봤잖아! 마치 나와의 결혼을 부정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내 이름을 기억하는 건 흥미롭네.. 그래 잘 봐도 내 이름 오늘 너를 이곳에 불러내 죽일 사람이니까 말이야!”


 선애는 뒷걸음치는 주만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이 투명하게 변해 주만의 목을 통과했다. 몇 번의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선애의 모습에 지철은 안타깝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선애 씨는 아무리 그를 죽이려고 해도 당신은 그를 죽일 수 없어요.”


 아직 자신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혼이 빠진 사람처럼 넘어져 있는 주만을 향해 목을 조르려고 하는 선애의 팔을 지철이 그만하라는 듯이 잡아끌었다.


“원장님! 제 손이 갑자기 왜이러죠? 제발 이 인간을 죽이게 해 줘요. 저도 그만 혜련 씨처럼 고통스러웠던 기억에서 헤어 나오고 싶다고요~”

“아마도 얼마 안남은것 같군요. 지옥의신이 당신에게 준 이 세상의 시간이. 그럼 그때 주만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저를 막아선 것도. 그를 도망치게 한 거였어요? 제가 그를 지옥으로 보내면 끝이 나버리니까?”

“맞아요….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 어떻게든 저 인간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제 손으로 꼭 죽이고 싶었거든요…. 제가 당한 그대로를 아니 몇 배로 갚아주고 싶었다고요!!”


 지철에게 팔이 잡힌 선애는 감정이 복받친 듯 쓰러져 울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을 보며 주만은 넘어진 채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미쳤어! 저들은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었어…. 사람들 여기 미친놈들이…. 읍”


 주만의 등 뒤에 검은 그림자가 조용히 다가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재미있는 장면을 보려면 당신은 좀 조용히 있어야겠어”

“읍읍.. 읍” 


 쓰러져 울고 있는 선애와 그를 바라보는 지철 그리고 먼발치에서 조주만의 입을 가리며 그들을 바라보는 검은 그림자까지.. 악마의 심리 상담소에 어울리는 핏빛 향연의 마지막 무대가 준비되고 있었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았던 한 가닥의 희망마저 잃은 것처럼 보이는 선애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털썩 주저앉아서 지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내듯 말하기 시작했다.


 “제.. 전남편 그러니까 조주만 저놈은…. 제가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이었어요. 학자금 대출을 갚으면서 과외로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는 형편 때문에 늦게까지 카페 남아서 학교 과제를 하거나, 과외 공부하는 학생들 내준 숙제를 확인하곤 했거든요.  그렇게 매일 잠도 잘 못 자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연거푸 커피를 마시던 저는 어느 순간 이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졌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끝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닷가에서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 문뜩 그가 커피 홀더에 써주고 있던 글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힘내요!” “오늘은 날씨가 흐리니 꼭 우산 챙겨요.” “굶지 말고 오늘은 꼭 끼니는 챙겨 드세요. 요즘 좀 마르신 거 같아요” 그리고 그 글귀들이 점점 저에게 속삭이기 시작했어요. 이런 사람이라면 너에게 믿음직한 등대가 되어 줄 거야라고 말이에요.”

“승주 씨에게 조언했던 말들이 그럼?”

“맞아요. 제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던 거예요. 그때는 그가 나에게 적은 말들이 진심인 줄 알았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얼마 안 가 알게 되었죠. 그 커피 홀더에 적힌 글귀들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에게 던지던 추파 같은 것이었고, 제가 상상했던 등대는 저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를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바람을 피웠군요.”

“맞아요. 바람을 피우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제 앞에서 뻔뻔하게 상간녀와 통화를 하거나, 막말하기 시작했죠. 자기에게 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있는 벌레라는 등 정말 입에 담기 힘들 말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죠.”

“….” 


선애의 말을 들은 지철의 표정이 점점 묘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선애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도 저는 도망갈 수 없었어요. 제 안에 새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땐 저는 이미 그에게 길들여진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나? 나는 이제 그 없이 살 수 없는데…. 그런 불안감이 더 저를 작게 만들었죠. 그러다가 그가 내 아이에게 폭언하며 손을 대기 시작할 때 깨달았어요.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지철이 그 당시 선애의 심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몸속에 악마가 들어온 것은 아닐까 싶었겠죠?” 


 놀란 선애의 눈이 깊은 한숨을 쉬는 지철을 바라보았고, 그는 선애의 시선을 피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얼마 전 사신 K가 자신에게 넌지시 던졌던 말을 떠올랐다.


“나중에 선애를 돌려보내지 않은 일을 후회하게 될 거야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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