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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Apr 13. 2024

천국에 있는 악마 훈련소

지옥에 갈 뻔한  선애 천국에 가다

선애와 지철이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대며 바라보고 있던 사신 K는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는 듯 천천히 지철을 지나쳐 선애를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 시작했다.


"선애 씨, 저승에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아요. 그중에 으뜸은 아마도 천국에 있는 악마의 교습소가 아닐까 싶군요."


"악마의 교습소요? 악마를 악마로 만드는 곳인가요?"


"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악마가 될 영혼들을 미리 훈련해 두는 장소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악마가 될 인간이 자주 출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갈 훈련사는 지옥의 신이 직접 결정해요. 지옥에서 악랄하기로 유명한 자로 말이죠."


"설마... 그 악마가.. 원장님이에요?"


"맞아요. 베스탄... 그는 인정하기 싫지만, 최고의 악마였으니까. 지옥의 신이 그의 불평을 듣지 않기 위해 보낸다는 썰도 있었는데, 뭐 지옥에서는 그가 최단기간 악마가 된 건 사실이고, 사실 지옥의 문을 지킨다는 역할 자체가 이미 그가 최고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악인들을 줄을 세워 들어가게 하는 일인데,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많이 하겠어요? 그리고 그 사실을 저자의 오른손이 증명하고 있죠. 인간을 직접 지옥으로 보낼 능력 지옥의 신이 아무한테나 저 능력을 주진 않죠. 최고의 악마 훈련사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거랄까?"


"닥쳐!! 너 따위가 함부로 올릴 능력이 아니야!"


지철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은 사신이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그 악마의 훈련소라는 곳이 왜 천국에 있는지 아세요? 공식적으로 알려진 설은 악마들이 천국을 보면서 교화되길 바랐다는 거였는데, 실상은 항상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지옥에 훈련소를 설치하면, 개나 소나 다 그곳에 가게 해달라고 폭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천국에 숨겨둔 거였죠. 그럼, 이쯤 되면 슬슬 그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어떤 일을 했는데요?"


"미래에 악마가 될 영혼들을 훈련하는 일이요. 보통 인간이 아무리 인간세계에서 못된 놈이긴 했어도, 지옥에서 악마로서의 업무는 한 차원 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악마의 훈련소를 지어, 미래에 악마가 될 사람들에게 몸에 내려가 미리 그들을 교육하게 되었죠. 최고의 악마가 알려주는 남에게 상처 주는 연습, 잔인하게 괴롭히는 교육, 끝이 없는 지옥을 보여주는 그런 일들을 말이죠.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악귀가 들었다거나, 악마를 보았다고 말하더군요."


"그럼, 저희 남편도..."


"아마도요. 물론, 베스탄도 누구에게 내려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미래 악마가 될 사람에게 들어가 훈련할 때의 기억은 훈련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삭제되죠. 예전에 어떤 악마가 교육한 신입 악마가 들어왔을 때 자기 애제자라고 편애했던 기록 때문에 한번 난리가 났던 적이 있어서 그런 규칙이 생겼죠. 하지만 선애 씨 이야기를 들을 때 생각이 난 것 같군요. 자신이 했던 일들이라는 걸..."


사신 K는 보통 때라면 자신에게 달려들고 남았을 지철이 우둑하니 서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신의 이야기를 들은 선애는 살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당한 일들이 지철이 한 일이라는 말에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니 그럼 그 악마 같은 사람들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예요? 왜 그들은 이유도 없이 내리치는 벼락을 매일 맞아야 하죠?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냐고요?"


지철을 쳐다보며 핏줄을 세우고 따지는 선애를 바라보며, 이제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이 사신 K는 한 발짝 물러났고, 그의 옆에 서 있던 지철은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선애를 향해 대답했다.


"진정해요. 선애 씨! 사실 그들에겐 오히려 로또 같은 거예요. 지상에서 그들에게 희생한 시간을, 죽어서는 천국 행 티켓으로 보상받는 행운 말이에요. 저 같은 악마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런... 선택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선애는 뻔뻔한 지철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끝까지 이기적이네요 원장님! 희생이요? 왜 제 인생이 왜 이 거지 같은 인간을 위해 희생돼야 해요? 아무리 제 남은 인생이 천국이라도 지금이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라면 의미가 없는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요? 말도 안 돼요!"


"선애 씨 그만 쓸데없는 고집 그만 피워요. 신이 아닌 이상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유일하게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저 인간 조주만을 지옥에 보내고 당신을 다시 인간세계에 보내주는 것밖에 없어요."


지철은 조주만을 지옥으로 보내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오른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조주만에게 다가갔다. 지철의 오른손에 밝은 섬광이 번쩍이더니, 그의 오른손이 향한 조주만이 그 빛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예상치 못한 한 그림자가 그 빛을 향해 뛰어들었다.


사신도 지철도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사라지는 섬광 속에 두 명의 그림자가 사라지더니 선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악마인 당신도 해결 못 하는 일이라면 제가 직접 지옥의 신을 만나야겠어요."


사라진 선애와 조주만의 그림자 뒤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사신과 지철이 서 있었다. 사신 K가 조심스럽게 지철에게 물었다.


"베스탄... 지금 우리.. 뭘 본 거야?"


"천국에 있는 줄 알았던 죽은 영혼이 직접 살아있는 인간을 지옥의 신 앞에 데려가는 걸 본 거지... 사신과 악마의 눈앞에서 말이야."


"한바탕 난리가 나겠네.. 지옥의 신이 천국에 배정된 죽은 영혼을 직접 인간세계에 내려 보낸 게 알려질 테니까 말이야. 그걸 막고자 나를 직접 내려 보내신 걸 텐데.."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듯이 요란한 천둥과 번개가 그들 앞에 요란하게 치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마치 그들에게 소리치는 지옥의 신의 목소리와 같았다.


"사신 K! 베스탄!! 내 참을성을 어디까지 시험하느냐? 지옥으로 와서 이.. 이.. 엄청난 혼란을 당장 해결하지 못할까!"


지옥의 신도 자신 앞에 펼쳐진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이 목소리를 미세하게 떨면서 의자에 앉지도 서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고, 그런 지옥의 신의 앞에서 조주만의 멱살을 잡고 오히려 자신이 지옥의 신인 것처럼 당당하게 그를 노려보는 선애가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당신이었어. 그리고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갖고 놀았어!"


어두운 방 안 화려한 불꽃들이 연신 번쩍하더니 번쩍이는 불빛 사이로 얼이 빠진 듯 보이는 주만과 그 옆에 맹렬히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눈이 빛나는 선애가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난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지옥의 신은 악마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말이 무색하게 형형색색 디저트를 맛있게 베어 물다가 자신 앞에 나타난 영혼을 보고 당황한 듯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영혼이 헛것인 것처럼 팔로 눈을 몇 번을 비비더니, 자신 앞에 나타난 살아있는 인간 주만과 자신이 내려보낸 선애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한 듯 갑자기 놀란 듯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그리곤 그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무언가 난감한 일에 봉착한 사람처럼 손을 물어뜯으며 매우 불안해 보였고, 그런 남자의 모습을 마치 내려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울리는 전화기만 쳐다만 본채 받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긴 한숨을 쉬며 전화를 들어 올리는데 상대방 목소리가 어찌나 그 소리가 크던지 밖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아니 지옥의 신님! 천국에 와야 할 영혼을 마음대로 지상에 보냈다는 게 사실인가요? 제가 본 저승 출입국 기록에 찍힌 기록이 사실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천국의 신님 제가 해명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아무리 지옥의 신이라도 저희 세계에 배정된 영혼을 어떻게 마음대로 납치해서 이승에 보냈단 말이에요?”


“납치라뇨 말이 좀 심하시군요…. 그게…. 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데.. 그걸 좀..”


“글쎄요 그건 제가 방금 소집한 긴급회의 시간에 해명하셔야 할 것 같네요. 이번에는 엉터리 거짓말로 무마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것 같네요.”


난감해하는 지옥의 신의 목소리를 무시하듯 상대편에서 전화를 먼저 끊어 버렸고, 지옥의 신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에 두려움이 몰려오는 듯 애먼 끊긴 전화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선애가 입을 열었다.


“저희 때문에 난감한 일이 일어났나 보네요”


“....”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타는 듯 보이며 전화를 향했던 눈빛이 선애를 노려보며 입을 꾹 닫고 자리에 서 있는 지옥의 신에게 선애가 다가갔다.


“지옥의 신님 천국에 갈 사람을 지상에 내려 보냈다는 건…. 제 이야기인 건가요? 그렇다면 쉽게 이승에서 날뛰는 악마를 감시하려고 저를 내려보냈다고 하면 되잖아요?”


비꼬는 선애를 보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지옥의 신이 말했다.


“어리석은 인간! 그들은 지옥을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단다. 그게 이 세계의 룰이고 천국은 천국을 위해서 지옥은 지옥을 위해서 존재하기 그런데, 그런 규칙을 깬 베스탄을 위해 천국에 배정된 영혼을 내려 보냈다? 불 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행위와 같은 것이란 말이다!”


선애는 자신에게 내려질 벌들을 상상하며 정신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지옥의 신을 보며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따져 물었다.


“그러면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저를 내려 보낸 건가요?”


“어차피 넌 이 일이 어떻게 끝나든 조용히 내 구역인 이 지옥에 다시 끌고 올 생각이었으니까. 넌 베스탄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단다. 인간이란 말이야 늘 귀찮고 시끄럽기만 하지. 그래도 너의 입이 베스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제가요?”


“베스탄이 인간세계에 내려가 마지막 교육한 인간이 저 조 주 만이었단다. 최고의 악마를 키운다는 명목 하에 아주 신이 나서 폭주하듯이 내려갔으니 얼마나 온갖 막말과 저주를 퍼부었겠어. 아주 줄을 타듯 신나게 너를 괴롭히던 베스탄은 네가 죽었다는 소식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조주만의 감정을 느껴 버린 거야. 그때 베스탄은 그의 몸속에 있었으니까. 그때부터는 베스탄은 철저히 무너져 버렸단다. 그래서 더 이상 어떤 인간도 교육하지 못하게 되어 문지기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지. 물론 기억엔 없었겠지만, 당신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당신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게 되었겠지. 양심의 가책이라는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서 말이야..”


“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지옥에서는 쓸모 없어진 소모품이 인간의 영혼 되기도 하고, 감정이 생겨 버린 악마가 되기도 하지. 말만 많고 악함이 사라진 악마는 쓸모가 없어 쓰레기통에 던져질 뿐이지. 버려진 쓰레기통이 더 많은 악한 사람을 배출한다면 나야 땡큐고.”


지옥의 신은 모든 게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있었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마치 그의 웃음을 모조리 앗아가기라도 할 듯이 찢어나갈 듯한 목소리가 지옥 내에 울렸다.


“10분 뒤, 신들의 긴급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지옥의 신은 올라오실 때 해명 자료를 들고 회의에 참석하세요”


그 방송을 듣고 마치 목이 타는 듯이 지옥의 신은 옆에 있던 빨간 통에 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선애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럼, 차라리 천국에 배정된 영혼을 악마를 교육하기 위해 인간세계로 보냈다는 건 어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가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막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더 상처받을 때가 말이에요. 천국에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거예요. 악마보다 더 나은 훌륭한 훈련사가 천국에 있었다며, 지금 테스트를 막 끝내고 돌아온 거라고 말하면 통할 것 같은데… 어차피 천국엔 할 일도 없다면서요? 악마가 될 사람을 천국에 배정되었던 영혼이 교육한다고 하면 얼마나 뿌듯해하겠어요? 아마 박수갈채가 쏟아질 걸요?”


“그걸 누가 믿어준단 말이냐?”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원장님 그러니까 베스탄님을 다시 이곳에 제 앞에 불러주세요. 제가 따져야 할 일들이 많거든요”


나쁘지 않은 것 같은 조건에 지옥의 신이 그러겠다고 말하고 사신 K와 지철이 있는 악마의 상담소에 번개를 치며 말했다.


"사신 K! 베스탄!! 내 참을성을 어디까지 시험하느냐? 지옥으로 와서 이.. 이.. 엄청난 혼란을 당장 해결하지 못할까!"


 지옥의 신이 선애를 돌아보며 약속을 지켰다는 듯이씩 웃어 보였고, 선애는 자신의 또 다른 계획을 숨기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옆에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조주만이 고개를 지옥의 신과 선애를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지옥의 신이 휘파람을 불자 근처에 있었던 까마귀가 날아와 지옥의 신 어깨에 앉았다.


“마귀야 우리가 다녀올 동안 이 인간을 감시하거라.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그의 눈을 파먹어도 좋아”


 지옥의 신의 명령이 매우 흡족한 듯 까마귀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알겠다는 표시를 하였다. 지옥의 신은 선애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가자는 제스처를 보였고, 선애는 그의 손을 잡은 동시에 굳은 결심을 한 듯 자신의 입술을 꽉하고 깨물었다.


지옥의 신이 왼손 검지와 엄지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더니 지옥의 신과 선애가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사신 K와 지철이 그곳에 나타났다.


“지옥의 신님 저희 왔어요 어디 계세요? 베스탄 뭐라고 말을 해봐 너도..”


“내가.. 다시 이곳에 오다니...”


다시 돌아온 지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지철 아니 악마 베스탄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멍하니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몇 분 뒤 흡족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옥의 신이 한참 신나서 떠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신 K와 베스탄 그리고 조주만이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천국의 신의 표정을 봤느냐? 굉장했어. 너의 그 현란한 말솜씨에 매료돼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말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느냐?"

 

 선애는 우쭐한 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리더니, 입을 쭈욱 내밀며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처음 사신 K님에게 지옥의 훈련소라는 곳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어요. 왜 악마를 탄생하게 하기 위해 한 명의 인생을 꼭 희생해야 하는지…. 악마가 아닌 그 악마 같은 사람에게 당한 사람이 그를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을 말이에요"

"그래서 네가 조주만을 지옥에서 가장 유능한 악마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이냐?"

"맞아요. 심지어 저는 그 일이 일이 아니라, 평생 바라왔던 숙원 사업 같은 거니까 말이에요"

"하하하 그렇게 현란한 거짓말로 꾸며대니 천국의 신도 이제 천국이 지옥의 위에 있다고 생각하더구나. 천국의 영혼이 악마를 가르치다니... 말이 되냐 말이다.. 하하하.. 물론 이 이야기가 너랑 내가 말 맞추어 다 꾸며낸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안 그러냐?"

 

 중앙 상단에 위치한 금색 월계관 휘장을 두른 빨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쩍벌은 한 지옥의 신은 신이 난 듯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고, 선애는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신 K와 베스탄은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리기 위해 그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을 눈치챈 지옥의 신은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이 선애에게 말했다.

 

"흠흠…. 그러니까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선애 너도 베스탄에게 풀 게 있다면 풀고 저 보기만 해도 성가신 인간을 데리고 인간세계로 돌아가거라 거기까지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인 것 같구나. 나도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은 보기도 듣기도 싫구나.. 더 이상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양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다가, 이제 그만 가라는 듯 손을 휘저어 보였다. 그러나 선애는 그의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옥의 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옥의 신님 제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앞으로 제가 할 일들이었어요."

"그게 무슨…. 우리는 그냥 화가 난 천국의 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마치 없었던 일을 만들려는 지옥의 신의 속셈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선애는 자기 옆구리에 꽂아 두었던 문서를 지옥의 신에게 들이밀었다. 그 문서에 지옥의 신은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가짜 서약서가 아니야? 어차피 너랑 나랑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 그만인 한낱 종이 조각에 불구한 것을.... 왜?"

"아니에요. 저는 진짜였어요. 여기 쓰여 있는 문구를 읽어 볼까요? 나 지옥의 신은 힘든 인간세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선애에게 악마를 키우는 훈련사로 정식으로 채용한다. 또한 그 첫 번째 인간으로 지정된 조주만을 시작으로 악마가 직접 인간의 몸에 내려가는 게 아닌, 인간이 잠이 들면 악마의 훈련소에 들어와 선애에게 자신이 인간세계에서 지은 죄의 3배의 해당하는 막말과 폭언 그리고 신체적 훈련을 듣게 될 것이며, 인간세계에서 이러한 훈련을 "가위눌렸다"라고 명명하게 될 것이다."

 

 그 문구를 들은 지옥의 신은 당황한 점점 얼굴에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선애는 쐐기를 박듯이 말을 이어 갔다.

 

"아 그러므로 베스탄님도 이제 지옥에 돌아올 명분이 생기신 거고요."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왜요? 저는 지옥의 신님의 말에 의하면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지옥으로 떨어질 영혼이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천국에 있는 지옥의 훈련소에 있게 되었으니, 지옥에 갈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면 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아 아까 작성해 주신 서약서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빨간 글씨로 거짓말을 잘해도 약속은 꼭 지키는 지옥의 신이라고...?"

 

 그에게 따지는 선애의 말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한 지옥의 신이 어안이 벙벙한 듯 쳐다만 보고 있자 사신 K가 자신의 살길을 모색하듯 선애에게 다가가 말했다.

 

"건방진 영혼 어디 지옥의 신께 약속을 운운해? 여기가 어디 천국인 줄 아느냐? 이곳은 지옥이라고 지옥의 신의…. 뭐라고? 빨간 글씨? 그럼, 지옥의 신님 혹시 악마의 맹세를 하신 건가요?"

"아.. 그건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한 건데..."


사신 K는 선애가 펼쳐 든 서약서에 붉게 타오르는 듯한 서명을 보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아.. 맹세하신 거면 지키셔야겠네요. 지키지 않으면 서열상 당신의 후계자인 악마가 지옥의 신이 지정될 테니 말이에요. 서열상 다음 순위는…. 어차피"

"당신의 후계자는…. 저네요"

 

 베스탄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 빙긋 웃어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궁지에 몰린 지옥의 신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선애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활한 영혼에 내가 속아 넘어갔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하찮은 영혼들 주제에 감히.."

"전에는 그랬을지도 몰라요.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죠. 듣기만 해도 억울하게 살았던 제 삶을 보상받기 위해 무언가는 해야 됐거든요. 그리고 당신의 후계자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죠. 지옥에 갈 사람들도 항상 방법이 있듯이... 아무것도 못 하는 하찮은 영혼도 입술을 꽉 깨문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정말 그가 유명한 악마의 훈련사였다는 게 사실인가 봐요"

 

 뿌듯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선애의 얼굴에 어느 순간 어둠이 물들여져 있는 것 같았다. 인간세계에서 원장 정지철과 함께 지내면서 하얗게 백지 같았던 선애의 얼굴에 점점 검은 물이 들어갔고, 이제는 웃는 얼굴로 태연하게 지옥의 신도 상처를 줄 수 있는 영혼이 된 것이었다. 그 모습에 지옥의 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알아서들 하거라 다만 나에게 피해 가는 일이 생긴다면..."

 

우르릉 쾅쾅 번개가 번쩍 선애와 사신 K 그리고 베스탄 앞에 꽂혔다. 그리고 점점 화가 치민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빨리 안 나간다면 다들 없애 버리겠다! 당장 내 방에서 나가 모두 다 꼴도 보기 싫으니.."

 

문밖으로 나온 선애는 사신 K에게 조주만을 부탁하며 악마 베스탄을 보며 씽긋 웃으며 말했다.

 

"거 봐요 인간은 모든 바꿀 수 있어요. 독한 마음만 먹으면 말이에요. 이제 원장님 아니 베스탄님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요. 저도 원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갈 테니..."

"선애 씨는 쓸데없는 짓을 한 거예요. 저도 제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었어요. 다만 돌아오기 싫었던 것뿐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베스탄님 마음이 편하다면..."

 

선애는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신이 앞으로 일할 천국에 있는 악마의 훈련소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에는 앞으로 자신이 조주만에게 갚아줄 많은 일들을 떠올리며 신이 나 보였다. 자신이 절대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복수를 자기 손으로, 그것도 상대의 우위에 서서 할 수 있는 수많은 고문들을 상상하며 걷는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천국과 지옥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영혼처럼 빛이 났다.

 

그에 반면 인간세계에서 그들이 생생하게 겪던 고통을 듣던 곳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 지르는 고통은 어떠한 흥미도 느낄 수 없게 된 악마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지옥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멀어지는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그림자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지옥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탄은 더 이상 이곳이 예전같이 평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소리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영혼들이 이제 그에게는 그저 무색무취의 죽은 생선들과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가 인간 세계에서 있었을 때는 인간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지금 막 첨벙이는 바닷속에 살아있는 생선들과 같은 신선함이 가득 묻어나는 신선한 고통의 향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이곳은 죽은 영혼들의 고통일 뿐이었다.

 

 서류에 하루 종일 파묻히다가 온 유명한에게 늘 났던 비에 젖은 듯한 꿉꿉한 서류 냄새, 바리스타 승주 옷에 진하게 배어 있던 탄 커피콩이 진하게 배 있던 커피 향, 그리고 혜련에게 났던 살 겹겹이 쌓인 곳에서 나는 달큼한 땀 냄새 같은 것들에 이미 베스탄은 익숙해져 버린 듯 보였다. 그중 제일 그가 그리운 건 아무래도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그에게 선애가 타 주던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 향이었다. 선애가 커피를 잘 타지 못하는 관계로 설탕을 가득 넣은 그 커피 한잔을 마시면, 식도를 타고 구르며 까끌까끌 목을 긁으며 내려가던 설탕들이 어느 순간 자기 몸 곳곳에 퍼져 따뜻하게 데워주는 느낌에 하루 종일 차가웠던 온몸을 녹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심지어 뜨거운 지옥 불이 베스탄을 향해 활활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바람이 자기 온몸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베스탄은 지옥의 문 앞에 서서 검은 그림자처럼 무색무취의 영혼들이 자신 앞을 스쳐 지나가라는 듯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마치 논밭에 묶어 놓은 검은 옷을 입은 허수아비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 탓이었는지 베스탄은 자기 몸도 마치 비가 오는 날 물에 젖은 이불처럼 힘 없이 무너져 가는 것만 같았다. 그를 단단히 지탱하던 근육들도 어느새 스르륵 힘없이 뼈가 발린 생산의 살들처럼 축 처져 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베스탄은 지옥 최고의 엘리트도, 지옥을 지키는 수문장도 아닌 그의 모습에 다른 악마들이 수근 거리는 소리가 지옥의 신의 귀에까지 닿게 되었다.

 

“저런 거적때기 같은 모습으로 우리 지옥을 욕보이고 있는 베스탄을 지옥의 신은 왜 가만히 둔대?”

“알잖아. 우리 인원 부족한 거…. 허수아비 같은 모습이라도 그 앞에 둘 수밖에 없는 거겠지!”

“하지만 너도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야? 너도 저렇게 편하게 일하고 싶잖아. 가만히 서서 멍 때리다 집에 가는 게 우리의 로망 아니었어?”

“맞아…. 사실 부럽긴 해 안 보이면 모를까? 저렇게 떡하니 지옥의 문 앞에 서 있으니까 점점 저 자리를 빼앗고 싶어 지더라고..”

“그래? 그럼, 우리 뺏자, 지옥의 신을 찾아가서 따지는 거야 우리가 저 허수아비 같은 베스탄보다 낫다고”

“야 아서라 이미 그랬다가 많은 악마가 번개 형에 처했어. 다리를 절게 됐다거나 한쪽 눈을 실명하는 등 지옥의 신이 죽일 수 없으니까, 일만 가능하게 번개를 치셨데! 악”

 

 자신의 뒤에서 대놓고 자신의 흉을 보고 있던 악마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베스탄이 이제는 시끄럽다는 듯 귀를 파며 그들 중 제일 시끄러운 악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용히 너희 차례를 기다려 조만간 공석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한참 그를 흉보던 악마 둘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베스탄과 최대한 멀리 달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베스탄에 가까이에만 가도 얼음장같이 얼어버린다는 루머의 효과인 것 같다. 누가 낸 소문인지는 몰라도, 베스탄으로서는 나쁜 것 없기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악마의 심리 상담소에서는 선애가 자신의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던 것이 익숙해져 그 어떤 소문도 자기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더 이상 이 상태로는 근무도 지옥의 생활도 하기 힘들 것 같다는 듯 깊은 한숨을 '후' 하고 쉬며 어두운 낯빛이 되어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익숙한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설마..”

 

저 멀리에서 뛰어오는 그림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처럼 베스탄의 동공은 아주 커지기 시작했다.

 

“원장님~~ 잘 지내셨어요?”


자신과 일할 때보다 더 밝아진 선애가 저 멀리서 인사를 하며 베스탄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럭저럭 이요. 선애 씨는 아주 좋아 보이네요"


 자신과 다르게 밝은 모습에 선애에게 질투가 난 베스탄은 자신도 모르게 빈정대며 대답했다.

 

"아 정말요? 제가요? 그런가요. 호호호 어쩌면 그럴지도요. 이 악마의 훈련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는 것 같거든요. 제가 당한 대로 그에게 갚아주고 있는데 느껴지는 희열이랄까 그런 것들이 저를 행복하게 만드나 봐요? 도파민 중독 같은 걸까요? 최근에는 지옥의 신의 신임을 받아서 악마 인턴제를 시작했는데 아주 반응이 좋아요. 가위가 눌린 악마가 될 사람들을 훈련해서 인턴 형식으로 현장에 투입하는 건데…. 일을 곧잘 하더라고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사이코패스는 교도소에서는 모범수가 된다는.. 타인의 관심받고 싶어서 말이에요. 그래서..."

 

베스탄은 더 이상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선애에게 말했다.

 

"아, 어쨌든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머리가 아파서 그럼 이만.."

 

선애를 스쳐 가며 가던 길을 그냥 가려는 베스탄을 팔을 붙잡고 선애가 빼꼼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진짜 원장님 무슨 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 정말 안색이 안 좋으세요 그렇게 원하던 지옥에 왔는데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으세요?"

"인간세계에 내려간 사이에 그들의 향에 중독됐나 보죠. 뭐.. “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선애의 팔을 뿌리치며, 그 없이 마냥 행복해 보이는 선애를 보고 있기 힘들다는 듯 힘 없이 돌아서는 베스탄의 뒷모습을 보고 선애는 가만히 서 있었다. 멀어지는 베스탄을 보며 선애는 혼잣말했다.

 

'소문으로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라져 버린 베스탄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던 선애는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눈빛으로 이제는 매일 찾아가 익숙해져 버린 길을 향해 뛰어갔다.


선애는 자주 찾아가서 어느덧 익숙해진 어두운 복도를 지나 체리 색 나무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어느 때보다 강한 아카시아 향이 가득 풍겨 나왔다. 그 향기에 묻어 들려오는 콧노래 소리는 인간세계에서 늦은 저녁 마트가 닫을 시간에 간신히 들어갔을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와 같게 느껴졌다. 수고했어요. 오늘도 많은 악행을 저지르셨다고 속삭이는 듯한 노래가 오늘 선애가 가르친 예비 악마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선애의 인기척을 늦게나마 눈치챈 지옥의 신은 신나서 부르던 콧노래를 멈추고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다. 이런 환영이 이제는 익숙해진 선애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기분이 매우 좋아 보여요. 지옥의 신님"

"모두 다 네 덕분이다. 네가 열심히 악마가 될 인재들이 훈련한 덕분에 악마들의 직업 만족도가 역대 최고로 나왔단다. 하하하 악마들이 5점 만점에 3점을 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란 말이다. 그중 네 전 남편이었던 조주만에 대한 칭찬이 아주 많이 적혀 있었는데.. 마치 베스탄의 전성기 때를 보는 것 같다더구나. 악마들은 일만 줄어들면 온순해진다니까. 하하하"

"제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하는 줄 아니까요"

"그나저나 상으로 무엇을 받을지 생각해 봤느냐? 저번에 베스탄 소문 내주는 일도 아닌 거 말고 이번에야말로 지옥의 신이 주었다고 소문낼 수 있는 걸로 말해보거라 흠흠"


지옥의 신은 무엇이든 말하든 들어줄 수 있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선애는 환생 없는 천국에서 삶이라고 말하려다가 문뜩 조금 전 만난 베스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악마라 하기엔 독기가 사라진 얼굴에 터벅터벅 걷던 발걸음 소리. 그 소리 뒤에 들려오던 다른 악마들의 비아냥 소리 "베스탄! 이 화장실 쓰지 마! 부정 타 다른 데 가서 싸" 예전 같으면 화를 내며 본보기를 보여줬을 테지만, 이제는 그마저 귀찮다는 듯 말없이 발을 돌려 다른 화장실을 찾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선애는 눈을 질끈 감고 지옥의 신을 향해 말했다.


"지옥의 신님 제가 악마의 훈련사를 하다 보니까... 이미 악마가 되기로 정해져 있는 인간들은 몇 없더라고요. 이렇게 지옥에 오는 영혼들은 많은데..."

"그게 문제긴 하지.. 아무래도 3%밖에 없는 성향이다 보니까... 그래 말해보거라"

"그런데 제가 겪어본 바로는 굳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더라도 악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인간세계에 있어요. 그러니까 다시 악마의 심리상담소를 열어서 그런 인간들을 미리 찾는 거죠"

"인간세계에서 말이냐?"

"맞아요.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 말이에요 제가 조주만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처럼 그들도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에게만은 더 잔인하게 될 수 있는 거죠. 아마 그럴 수 있다면 그들도 저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옥의 신님과 계약을 하려고 할 거예요"

"흠 그럼 나는 천국에 갈 인재들을 미리 지옥으로 빼낼 수가 있겠구나"

"맞아요. 지옥의 신님도 보셨잖아요. 천국에 있던 천사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불평도 없고? 흠.."


선애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지옥의 신에게 선애는 그에게 붙어있던 마지막 잎사귀를 떼는 것처럼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생각해 보세요. 지옥의 신님 지금보다 더 많은 악마가 들어온다면 당신은 몇 명의 악마를 거느리는 게 아닌 몇 백 명 아니 몇 천명의 악마를 거느린 진정한 지옥의 신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다른 신들도 당신을 쉽게 건들지 못할걸요?"

"하지만... 우리의 이런 계획을 천국의 신이 허락해 줄까?"

"그럼요 제가 천국에서 보니까.. 천국의 신님은 아직도 천사들을 지옥으로 끌고 간 베스탄님 얼굴을 마주칠 때면 심기가 아주 불편해 보이시더라고요... 베스탄님을 아예 인간세계로 내려 보내 얼굴도 안 보게 해준다고 한다면 지옥의 신님의 손을 잡아주실 거예요.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계획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죠"


선애의 마지막 입김에 지옥의 신은 눈을 번쩍하고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 지옥에서 쓸모가 없어진 베스탄에 대한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고, 왜 베스탄을 다시 불렀냐며 회의 때마다 자신을 가재 눈을 치켜뜨며 따지는 천국의 신의 얼굴도 슬슬 지긋지긋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말이다. 정 지철은 지금 베스탄이 지옥에 온 뒤로 오늘내일하고 있단다. 목숨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지옥의 신님 벌써 잊으셨어요? 베스탄님이 저에게 주려고 남겨둔 목숨이 있잖아요."

"구민철!"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지옥의 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검은 종이로 쌓아 두었던 검은색 올록볼록 뛰어나온 무늬가 있는 아보카도 같은 과일을 꺼내 보였다. 생명이 깃든 것이라는 걸 나타내듯 보라색 빛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옥의 신은 살아생전 가장 좋아했던 음식에 생명력이 깃들 수 있다고 말하며 선애에게 아보카도를 건넸다. 선애는 다시 아보카도를 쌓여있던 검은색 종이로 덮으며 고개를 지옥의 신을 향해 끄떡였다.


"일이 잘못된다면 그건 너의 일 나는 모르는 일이란다."

"물론이죠. 지옥의 신님 모두 제가 책임지죠."


선애는 지옥의 신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인사를 하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그 시각 오늘도 똑같은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베스탄은 알림을 끄고 자리에서 멍하니 일어났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가 엉겨 붙은 것처럼 윤이 났고, 배는 마치 빈 속에 커피를 연속으로 때려 마신 것처럼 쓰라렸다. 아무래도 어제 마땅한 화장실에 찾지 못해서 집까지 겨우 기어서 왔던 후유증 때문인 것 같았다. 아픈 배를 움켜잡고 검은색 이불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테이블을 향했는데 익숙한 향긋한 커피 향이 코끝을 스쳤다. 가늘게 뜬 실눈 사이로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하얀색 종이컵과 메모가 눈에 띄었다. 간신히 테이블까지 걸어가 적힌 메모를 읽어 보았다.


"집 비밀번호가 상담소와 같더라고요. 너무 곤히 잠들어 계셔서 깨우지 못했어요. 지옥에서는 아보카도 커피가 인기라고 해서 한번 만들어 봤는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 커피를 마시고 다시 예전 원장님의 모습으로 돌아오시길 바랄게요"

-선애-


인기척 없이 어떻게 자기 집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맡는 향긋한 커피 향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쓸고 내려가 쓰라렸던 배를 따뜻하게 데우는 것 같았다. 그 기분이 베스탄이 인간세계에서 정지철이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춥지만 따뜻했고, 귀찮았지만 설레었지.."


가만히 눈을 감고 베스탄은 그가 있었던 곳을 떠올리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몇 분이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갑자기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어요. 여보 우리 지철이가... 지철이가.."

"지철아! 너 정신이 드니?"


어렴풋이 두 명의 그림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에도 봤던 장면을 다시 겪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꿈인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뜨거운 체온이 자기 얼굴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철이 고맙다. 다시 우리 곁에 와줘서"

"여전히 시끄럽네요. 아주머니."


감싸고 있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지철을 이때가 아니면 안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와락 껴안았다.


"돌아왔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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