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가 울더라도 '글쎄요'
“끼이이익”
두바이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삼겹살을 그렇게 먹고 싶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 그것도 두바이에서 삼겹살이라니.
처음 일 년 동안은 침만 삼키며 버텼죠.
그러다 우연히 중국인 친구 '홀리'와 가까워졌고, 저희는 위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잖아, 우리 꼭 삼겹살을 구해서 먹어보자!”
물론 결심만 한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건 아녔습니다. 돼지고기를 파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고, 찾기도 쉽지 않았죠. 그런데 다행히 우리 호텔에 묵던 여행객이 호텔 근처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판다는 귀한 정보를 전해줬습니다. 호텔에서 마트까지는 버스로 십 분 거리. 도보로는 사십 분.
아직 길을 잘 알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하는 저희로서는 도보로 사십 분밖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니. 그래서 나름 촘촘하게 (바디랭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날.
저는 애써 홀리에게 “우리 꼭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앨리스 같다”라며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돼지고기를 사다가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래도 홀리보다 한 살이 많다는 이유로, 나만 믿으라며 입술을 앙 다물고 삼겹살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죠. 다행히 한 시간이 조금 넘어서 마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듯 보였습니다.
정작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는 마트 너머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마트에 들어갔습니다. 밝은 분위기의 노래가 흐르는 마트 안, 우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삼겹살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화살표를 발견했지요. 하얀 종이에 작게 Pork Belly라는 글씨가 암호처럼 휘갈겨 쓰여 있었죠. 마치 가서는 안 될 위험한 곳이라는 경고처럼 보였습니다.
심지어 화살표가 향하는 곳 끝엔, 빨간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순간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마트 끝 구석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비 오는 날을 어떻게 버텼는데…’
순간, 홀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떨리는 손을 꽉 잡고 천막을 향해 걸었습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발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천막의 빨간색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았어요. 하필, 그 천막은 왜 피처럼 빨간색이었을까요? 다른 색이었다면 덜 무서웠을 텐데 말이죠.
그냥 도망갈까 몇 번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고 말겠다는 열정, 그리고 맡기기만 하면 삼겹살을 맛있게 요리해 주겠다는 친구가 있었기에, 저는 두려움을 삼키고, 무서운 빨간 천막 속에서 삼겹살 두 줄을 꺼내올 수 있었습니다.
마트에 나오자마자 터져 나오는 한숨. 해냈다는 안도감에 마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저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외쳤습니다.
“We made it!”
이번 ‘먹는다는 것’에 대해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친구 '홀리'가 자주 떠올랐습니다. 서로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먹고 싶은 음식이 같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뒤로도 끈끈한 사이던 친구.(홀리는 지금은 중동 3대 항공사에서 멋진 사무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글로 만난 친구. 브런치에서 글을 읽으면서도 마치 그 글을 쓰는 분들과 저도 어느새 끈끈한 사이가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밥을 같이 먹으면 그 사람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듯이, 같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허물을 녹이는 것이겠지요?
우리 꾸준히 글밥 지어서, 내년쯤엔 흑백요리사 시즌 2 출연해 보시지 않으실래요?
닉네임은 글쎄요 어떠세요? (글이 쎄엔! 요리사)
브런치 틈 '먹는다는 것'
https://m.daum.net/?view=channel_t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