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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Nov 11. 2024

이토록 사소하게 친밀한 우리들은

#7 입동 11월 7일 무렵



"헉, 벌써 입동이라고? 날이 이렇게 좋은데?"

"우리가 날을 잘 잡았네."



29년 지기들과의 호캉스. 두어 달 전에 미리 잡은 날짜를 달력에 표시하다 입동 근처인 것을 확인했다. 겨울이라니. 여어어어름을 지나 가을의 ''도 즐기지 못했는데 벌써 겨울이라니. 하는 수 없지. 가을을 있는 힘껏 즐기면 되지. 겨울을 미리 환대하면 되지. 두 계절을 함께 통과할 수 있다니, 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는걸.




절기로부터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입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아무래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겨울을 건널 준비를 하라는 말 같다. 까치밥도, 치계미도 모두 앞으로 닥쳐올 추위에 대비해 주변을 둘러보던 마음씨. 그래서 입동 이후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온기를 생각하며 틈틈이 연말 선물을 사 모은다. p267




무소식이 희소식이던 다섯 명의 단체카톡창이 모처럼 분주했다. 사진 촬영을 할까, 흑백으로 할래 컬러로 할래, 내가 예약할게. 지난번처럼 책 선물을 할까, 아니면 같은 책을 읽고선 책 얘기를 나눌까, 와인은 내가 사 갈게, 두 병이면 될까, 숙소는 임직원 특권으로 내가 쏠게, 너 혼자 비용 부담하는 거면 안 돼, 1/N 같이 하자, 그럼 조식만 나눠서 내자, 그래, 그럼 내가 총무 할게, 다들 입금해,  시에 어디서 만날까, 버스표 예매할게. 접수완료. 일사불란한 역할 분담은 한두 해로 다져질 수 있는 내공이 아니었으리라.



블랙 앤 화이트로 만나 반갑게 인사하자마자 어색하지만 유쾌하게 셀프 촬영 리모컨을 눌렀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남이 해 주는 밥과 커피를 먹고 마셨다. 반드시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  시절 비하인드 (연애 및 일탈) 스토리를 풀며 눈가 주름 걱정 없이 눈물겹게 웃었다. 단풍이 호젓한 호숫가를 걸어 123층 워와 금 걸어온 호수를 창 가득 담은 숙소에 들어섰다. 남편 애들 직장 사회 건강 경제 운동 얘기들을 하면서 노곤하게 늘어졌다. 매 시간 시간이 아쉽도록 빠르게 흘렀다. 가자, 일분일초 알차게 채우러.



가을밤의 호수를 바라보며 부딪히는 시원한 한 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어쩜 딱 좋은 낮과 밤은, 공기와 온도마저 선물이었다. 오가는 거리마다  마주한 성급한 연말 경은 지금만 누릴 수 있는 짧지만 강렬한 사였다.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 건 세상으로 충분하다. 연말엔 나라도 나를 좀 봐줘야지. 해내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나무라는 방식으로 연말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해낸 일들을 되짚어보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음으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내게 달린 일이라면 언제라도 후자를 택하고 싶다. 창 너머의 저 나무들처럼. 후회나 실망은 가지 끝에 남은 마른 잎처럼 바람에 날려버리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면 된다. 물론 일단은 좀 '연말답게' 지내고 나서. p262-263




와인러버는 와인 두 병을 들고 먼 거리를 이동했고, 숙박을 제공한 대기업 근속 친구는 동선과 즐길거리, 마스크팩 다섯 개챙겨 왔다. 1학년 2반 부반장 친구는 큰 키를 이정표 삼아 우리를 안내했다. 접시가 비면 샤인 머스캣을 씻어 담아냈다. 소설과 원서와 영어공부를 함께 한 러너는 내년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치 페이스메이커처럼.



수다 떨며 틀어 놓은 드라마 제목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함께 읽은 책 제목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친밀하지만 내밀하고,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곧 추억이 될 순간들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연말 잘 보내."

"리 크리스마스, 내년에 보자."



이른 연말과 더 이른 새해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단체카톡창은 곧 다시 잠잠해지겠지만, 누구도 염려하거나 안달 내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만나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간의 세월이 쌓아놓은 편안함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말과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배려 속 뭉근한 온기도 오래 품을 것이다.  번의 계절 끝에 마침내 마주해 다시 지어 보일 우리의 다섯 미소들을 기다리며.




별것 아닌 마음은 전해지는 순간 별것이 된다. 마른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멀리서 보면 꼭 오렌지색 전구를 켜둔 것 같다. 한겨울에도 꺼지지 않는 전구 하나 켜둔 마음으로 한참 이른 연말 선물을 고른다. 모든 선물의 꽃말은 하나. 이걸 보고 네 생각이 났다는 말. p270







■ 입동 무렵의 제철 숙제



□ 다가올 연말 모임을 위한 선물 틈틈이 사두기


책에서 '양말' 선물 이야기가 나와 깜짝 놀랐다. "이거 별거 아닌데..." 하며 꺼냈을 때 모두가 즐겁게 발을 집어넣던 순간, 작은 선물이 큰 행복으로 되돌아왔다.



□ 올해 남은 두 달 동안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적어보기


만나고 싶었던 그들과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한 1박 2일.     이미 그대들이 나의 연말 선물



□ 감나무 가지 끝에 달린 다정한 마음, 까치밥 찾아보기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다정한 까치밥이 되어 겨울을 나게 해 주겠지.








● <제철 행복> 김신지 작가 북토크

(2024.11.10. AK 수원점 문화센터)



지기들과의 1박을 마친 오후, 김신지 작가의 북토크에 참석했다. 책을 쓰게 된 배경, 제철과 절기에 대한 일타 강사 못지않은 설명을 들었다. 제철 감각을 지니면 좋은 점들에 크게 공감했다. 벚꽃배웅여행, 무주야외영화제, 창덕궁 후원 산책 등 작가님의 연례행사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의 연례행사를 즐겁게 고민했다.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살짝 어리둥절한 시작은, 경직된 미소들이 야들해지는 산뜻함으로 마무리되었다. 별것 아닌 빼빼로 선물에 대단히 기뻐해 주시는 모습에 행복한 가을 추억을 하나 더 쌓았다.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 p102



강의 말미에 낭독해 주신 부분을, 29년 지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내년이면 30년을 맞이하는 우리들. 정말로 <토지>를 읽고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 가게 될까. 촘촘한 24 계절 중 언제 어디라도 제철이 될 것을 확신하며.



김신지 작가 북토크, 반갑고 감사합니다







입동

立 설 입 冬 겨울 동

겨울에 들어서며 겨울나기 채비를 하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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