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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Dec 28. 2022

당신에겐 '리처드 파커'가 있나요?

원서북클럽 2022 하반기 #3 - Life of Pi

Life of Pi - Yann Martel




선정 이유


제가 진행하는 다른 소설모임 소공녀 (소설로 공감을 나누는 여자들)의 11월 선정도서입니다. 1년 치 선정도서를 준비하던 작년 말, 중고서점에서 이 원서를 구매했어요. 두께에 겁이 나 그냥 한글책이랑 같이 장식용으로 꽂아두어야지 했어요. 하지만 꼭 완독 하고픈 욕심이 나서 원서북클럽 책으로 선정했어요. 영어교사인 지인의 인생책이라는 한 마디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고요.     



완독 소감



드디어 완독 했습니다. 주인공 파이의 끈질김이 저를 완독까지 올 수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합니다. 저 망망대해에서 생존이라는 줄을 놓지 않는 그에게 육아와 직장이라는 슈트레스는 별게 아닌 게 되어 버리네요. 계속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은 리처드 파커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한 한없이 나약한 살아 있지만 더 이상의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 따위는 놓아버리는 시체 같은 존재만 머릿속에 서 있었습니다. 살려고 무엇이라도 하려는 모습이 아닌 모든 걸 손에서 놓아버린... 그래서 더 이 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파이가 살아남은 거처럼 나도 어떻게든 해 보자라는 너무 거창한(?) 각오로 말이죠. 꾸역 꾸역이라는 말이 맞을 같네요. 하지만, 그 꾸역꾸역 하루들이 오늘을 만드네요.      


         

초반의 지루함을 참고 나아가니 새로운 국면의 Part two에서부터는 흥미진진하게 이어갔습니다. 두렵고 피하고픈 존재가 때론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아이러니,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일들을 찾아볼 수 있겠지요. 매일 기상 후 잠들기 전 기도까지 반복되는 루틴 또한 파이를 277일 동안 생존하게 만든 또 하나의 리처드 파커가 아니었을까요. 가족을 잃은 후에도 그를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희망'이라는 한 매듭을 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리처드 파커가 정말 존재했던 것인지, 파이가 식인을 한 것인지 의아합니다. 맨 마지막 일본인들과의 대화 말미 파이가 눈물을 훔친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남습니다. 재독과 영화를 통해 의문점이 풀리길 바랍니다.

한글도서와 오디오북에 의존해 겨우 겨우 왔어요. 완독 했다고 자부하기에는 이전 원서들보다 설렁설렁 넘긴 감이 많아 부끄럽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 원서북클럽 모임 자체가 제게는 이 두꺼운 원서를 버틸 수 있는 '리처드 파커'가 되었던 것도 같아요. 좋은 책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완독을 향해 함께 가는 우리의 긴 여정 감사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책을 읽은 지 십 년 정도 전..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전이었던 것도 같아요.. 어쩌면 결혼하기 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말은 알지만 중간의 내용들이 가물가물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번에 원서를 읽으면서 여전에 독서기록 노트에 제가 적었던 문구들이 기억이 나는 거예요! 노트가 지금은 한국에 있다 보니 바로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때 그 노트에 적었던 그 문장들은.. 바다, 어둠, 두려움과 절망, 희망과 덤덤함..(실제로 책을 보면 어떤 인물이나 사건들이 휘몰아치는 건 아니었는데..) 단어와 문장의 묘사들이 엄청난 파도처럼 마구마구 쏟아졌던 건 확실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영어로 다 소화하려니 힘들기도 했고요. 아쉽게도 많은 부분과 모르는 단어들을 흘려보냈던 것 같아요. 결말을 보면.. 좀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어떤 이야기가 더 진실인지.. 진짜 가능한 일인지..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거 자체가 뭐.. 환상 같은 진실을 겪으며 살아가거나 진실을 믿기도 힘든.. 그런 사건들의 연속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배 침몰의 원인을.. 너무나도 무심하고 추측적이며 사무적인 결론으로 치부해버린 마지막에서.. 우리도 뭐가 중요한 것인지.. 그냥 그렇게 모르고 살고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다른 것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그냥 주인공이 참 부지런하구나.. 매 순간 이렇게 온 힘을 다 쏟는구나.. 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청소와 먹이를 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그 와중에 촘촘히 일기를 쓰며 하루에 자신을 버렸다고 원망할 수도 있을법한 신을 위해 기도를 3번 하고.. 그런 게 저도 모르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리고 "with despair, a foe even more fomidable than tiger" (절망은 호랑이 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다)라는 문구.. 그걸 예전에도 독서 노트에 적었었는데 이번에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문구였어요.! 길고 어려운 원서 읽기였지만 그리고 중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좀 있었지만.. 긴 항해를 마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담달은 미루지 말고 읽어야겠어요.     


           

겨우 시작했고 아슬하게 끝냈네요

Part 1 지나가기가 너무나 어려웠고 역대 최장 길이 92 챕터가 마지막 고비였습니다. 마지막 반전이 있다는 완독 소감에 네이버도 찾아보지 않고 꾹 참고 읽었습니다. 그 보람이 있네요 ㅎ 책을 다 덮고 다시 이것저것을 되짚어보며 의미들을 해석해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castaway라고 하면 톰행크스와 윌슨밖에 몰랐는데 그들은 파이에 비하면 천국에 있었던 것 같네요. 무엇이 파이를 7개월여의 극한 상황을 버티게 했는가? 우리 중 누가 파이가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들을 잔인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나는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등등 많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가장 두꺼웠고 가장 힘들게 끝냈지만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읽은 원서 북클럽의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으로 Wonder를 꼽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바뀌었습니다. Life of Pi가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폭에서 앞지르네요.

파이가 처한 상황은 극한 중에 극한, 최악 중에 최악이지요. 가족을 모두 잃고, 망망대해에 홀로, 아니 당장에라도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호랑이와 한 배에 남겨지다니, 더 나쁜 설정을 생각해 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파이는 살아내더군요. 파이처럼 생사를 가로지르는 얄따란 줄을 타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 해도, 우리도 각자의 배에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목적지를 향해 순항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떠 있기만 해도 다행인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저는 파이가 언제 구조될지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내려놓고, 날마다 배를 관리하고 마실 물을 만들고 기도를 네 번씩 해가며 보냈던 날들이 마음에 깊이 남아요. 이게 제가 책에서 찾은 답인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거요. 그러면 최악의 밤이 지나가고 새날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런 게 사는 일 같아요.            


    

이렇게 두꺼운 원서를 완독 한 게 처음이라 먼저 뿌듯함이 앞섭니다. 덕분에 파이이야기 한글본, 영화까지 다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는 사뭇 다른 의식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 인해 안정적인 삶의 터전을 벗어나 캐나다라는 새로운 곳을 향하던 중, 의도했던 새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움을 마주한 소년 파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존을 위해, 그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하면 안 되는데요..) 227일이 그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파이였다면 조난구조 매뉴얼을 그렇게 읽고, 적용할 수 있었을까..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리처드 파커라는 동반자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에, 내게 주어진 힘든 상황들과 더불어 돌보아야 할 가족들,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그 상황을, 가족들을, 사람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이, 가족들이, 사람들이 저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는 그런 사고는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올해의 마지막 원서도 기대해 봅니다.          



초반 잘 진도가 나가지 않아 영화를 보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읽어나갔습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스터리 한 섬이 물, 음식, 잘 곳을 제공하지만 계속 안락함에 빠져있다가는 결국 죽음뿐이라는 걸 깨닫고 (자기 안의) 호랑이를 데리고 섬을 빠져나오는 챕터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 초반과 중반 저는 호랑이가 힘든 과제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들도 나를 힘들게 하지만 결국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누군가(회사 고객 관공서 거래처 등) 생각했습니다. 후반으로 가면서 그 호랑이는 내 안에서 더 견디고 버티고 다시 일어서기로 한 제 마음, 결심, 내 안의 강한 자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내 안의 강한 자아를 잘 길들이고 성장시켜서 앞으로의 삶을 견디고 버티면 저도 어디엔가 도착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곳이 제가 원했던 도착지일지 아니면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일지는 신께 맡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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