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의 변화를 꿈꾸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수도 많지 않고 행동도 크지 않지만 어떤 일이든, 어떤 결정이든 마음먹은 순간 바로 시도해봐야, 알아봐야,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조용한 듯 내면이 급한 사람은 그래서 위험하다. 늘 뜻밖에 일들을 저질러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단 저지르고 본다. 이런 성격이 인간관계에서 감정과 관련되어 작용할 때는 회복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지는 일이 생긴다. 나는 이미 이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에둘러서라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은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타고난 성격까지 바꾸지는 못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에는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책을 통해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엄마가 되면서 더욱 도움이 되고 있다.
사람의 심리에 대한 책들, 관계 회복이나 언어습관 등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마음가짐이나 상대를 대하는 법, 말하는 방법 등을 달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처 받거나 속상한 날에는 글을 쓰며 상대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실컷 글로 표현하기도 했다. 읽고 쓰며 내 감정들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나에게도 내공이라는 게 생겼는지, 아니면 마음이 단단하게 수련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에서 꽤 자유로워졌다. 그들을 대하는 방법을 달리하고 그들과 지내는 시간들 속에서 나만의 처세술을 터득하며 마음이 쉽게 무너지거나 상처 받는 일들이 많이 줄었다고나 할까? 단단해졌다고나 할까? 적어도 책을 읽기 전에는 누군가의 시선 하나에도 하루 종일 마음을 쓰는 소심녀였다면, 이제 그런 시선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나의 성숙도와 상대의 인격성 정도까지 감히 가늠해가며 상황을 바라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많이 변했다. 과거의 ‘나’라는 사람은 작은 것에도 상처 받고, 앞뒤 따지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휩쓸려 일을 저지르고, 급한 성격 탓에 불붙듯 계획한 일들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예외였겠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나 자신과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젊은 날에는 스스로 사는 모습이 한심하고 답답하면서도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이것이 꽤 오래 지속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 자신과 소통을 해보려 시도했던 것이다. 이후 나는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질문들에 스스로 답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공부하듯 들여다보고 오답을 수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과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과 소통이 되겠는가? 아이든, 남편이든, 그 누구와도 소통이 어렵다면 자신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스스러와는 잘 소통이 되는지, 자신의 인생은 답답하지 않은지... 만약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바로 자신의 탓이다. 만약 지금 누군가와 소통이 잘 안된다면 책을 재료 삼아 스스로에게 자주 말을 건네며 자신과의 소통을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오래 살아보지 않아 아직 정답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 또한 타인과의 소통이나 관계는 늘 쉽지 않지만, 자신과의 소통을 위해 진정으로 시간을 내어 방법을 찾아보려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에게, 특히 가족에게 상처 주는 일이 적어진다. 스스로와 소통이 안되는데 어떻게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타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늘 남의 삶을 힐끔거리고 기웃거리다가 결국 불필요한 감정에 휩싸이거나 스스로 피곤한 관계를 만든다. 자청해서 무덤 파는 일이다.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하며 그렇게 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는 독서 나이도 조금씩 먹어가고 스스로와 어느 정도 잘 소통하며 나름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내려놓을 마음들은 내려놓고, 입술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며 남의 삶을 기웃거리지 않고 그 시간들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했다. 철이 없다고 하기에는 적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건만, 스스로 자기 성찰에도, 자기 계발에도 노력하며 살아온 시간도 적지 않게 쌓였건만, 처음 결혼생활은 정말 힘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10년쯤 살고 있는 내 남편에게 ‘나 같은 사람과 살아줘서 고맙다.’하는 마음을 내색 없이 속으로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혼 내공이 부족한 탓에 아직도 매번 이런 마음은 너무 자주 바뀌고 있어서 절대로 겉으로 표현할 수가 없지만... 결혼 초에는 말도 없고, 이벤트도 없고, 몸짱도 아니고, 돈과 시간까지 없는 이 남자와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수없이 생각해보았다. 말을 걸어도 빠른 반응이 없는 남편에게 답답해하며 화를 내기도 하고, 쉬는 날이면 피곤하다며 늘어져 있는 남편에게 운동 좀 하라고, 자기 계발 좀 해보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항상 일과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병행하고 있던 남편에게는 시간도 없었다.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계획하며 놀러 다닐 생각 같은 것은 일찌감치 접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짜증과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갔다. 더욱이 워킹맘으로 독박 육아까지 한동안 계속되면서 단조롭다 못해 힘까지 부치는 결혼생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보통의 아내들이 퍼붓는 많은 잔소리들을 나도 똑같이 하는 그런 여자였다. 스스로 꽤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다행히도 그 대부분 잔소리 중에 내가 남편에게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잔소리는 ‘돈이 없다. 돈 좀 많이 벌어 와라.’ 이것뿐 인 것 같다. 돈은 내가 벌어도 된다는 생각에 그런 것으로 학생 신분인 남편 기 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 말까지 해버렸다면 나는 정말 밑바닥까지 보일 뻔했다. 인내심 제로였던 그 시기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그쯤, 아무리 화가 나도 큰소리를 내며 싸워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집에서 종종 큰소리가 나기도 했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왜 소리를 질러야 했을까? 나는 어느 날 책을 읽으며 한 스승과 제자들이 나누는 우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았다.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가르침을 얻었다. 어느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강에 목욕을 하러 갔을 때 강둑에 있던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왜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가?” 제자들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마침내 스승이 설명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소리를 질러야만 멀어진 상대방에게 자기 말이 가닿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화가 많이 날수록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소리를 지를수록 상대방은 더 화가 나고, 그럴수록 둘의 가슴도 더 멀어진다. 마침내 서로에게 죽은 가슴이 된다. 죽은 가슴에겐 아무리 소리쳐도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큰소리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남편에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를 때가 있었다. 주어진 모든 상황에 화가 났던 것이다. 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남편과 아이와 점점 가슴이 멀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계속 멀어지기만 했더라면 아마 다시 되돌아올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결혼생활 초, 혼란스러운 상황들 속에서 잠시나마 나를 피신시킬 수 있었던 돌파구가 바로 책 읽기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과 스스로 답한 대답들을 통해 나는 차츰 변해가기 시작했다. 책 읽는 그 시간만큼은 분통 터지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고, 그 시간이 길어지고, 읽는 책의 양이 늘면서 나는 좀 더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스스로와 대화를 하며 달래진 마음으로 남편과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소리친 다음의 침묵은 가슴이 죽어버렸음을 알리는 신호라는데 다행히 책을 읽으며 나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서로 죽자는 신호를 보내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아이의 가슴이, 내 남편의 가슴이 그리고 내 가슴이 죽어버리도록 놔두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책 덕분이다. 책 속에서 만난 가슴을 울리는 문구들을 통해, 작가가 겪어낸 비슷한 감정들에 공감하며, 조금씩 인내심과 자제력을 키워갔다. 이제 글 쓰는 아내, 글 쓰는 엄마가 되면서 나처럼 부족한 사람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준 남편과 내 아이에게 한없이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책과 글쓰기가 엄마인 나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책이 아니었다면,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내게 찾아오지 않았을 감사하고 평온한 오늘이다. 늘 지지고 볶으며 감정을 내세우고 칼날을 세운 혀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런 몹쓸 짓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배웠으며, 내 옆에 있는 가족이라는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가게 되었다.
책을 통해 너와 내가 아닌 제삼자의 이야기인 듯 우리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의 장이 열릴 때가 많아졌다.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거든,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거든 생각해보자. 왜 내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나? 분명 찾게 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그들로부터 너무 멀리 와서 그 거리를 좁히고 싶어 그런 거라는 속마음을. 내 아이가 자꾸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면 ‘엄마 마음이 너무 멀리 와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구나.’ 생각해보자.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여주면 어떨까? 그것이 자신과 가족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작은 목소리로 사랑을 전하는 일은 서로가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하고, 죽지 말고 행복하게, 정답게 살아가자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다. 이렇게 책 속에서 발견한 우화 한편이 또 부족한 엄마에게 아름다운 가르침을 준다.
책을 읽고 기분전환이 된 순간들 속에서 감정이 해소되고, 누그러져 정화되는 경험들이 쌓여 나는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어지간해서는 타인에 대한 미운 감정들도 생기지 않으니 책 읽기는 어쩌면 나를 어른으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최고의 도구가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읽고 쓰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