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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Oct 08. 2021

경로를 이탈해 재검색합니다.

가끔은 꼭 지나야만 하는 길이 있다.


오늘 명함을 팠다. 내 이름 아래에 적힌 '작가'라는 직함이 애틋해서 도안을 제작하는 내내 몇 번이나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출판 경험 한번 없는 내게 작가라는 이름이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작가 자격증은 따로 없기에 그 이름에 내 꿈과 열의, 애정을 담아서 무게를 늘려보기로 했다. 마라토너가 출발선에서 이미 등번호를 달고 있듯이, 나도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내 등번호를 단 것이었다. 그간 작가로서 낸 성과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냐고 묻는다면 내 인생의 많은 경로 이탈들이 귀납적으로 가리킨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가끔은 아주 약한 힘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자면 부모님께서는 항상 내가 '아주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고 하셨다. 그건 아마도 내가 정말 특출 났다기보다는 자녀의 작은 부분도 크게 알아봐 주고 칭찬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자라면서 느끼기론 그 말이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재잘대기를 좋아한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비유법을 배웠고, 나의 마음을 직접적인 표현의 단어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꼭 같은 느낌을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효율적인 동시에 낭만적이라고 느꼈다. 그 무렵 나는 일기를 쓸 때 시를 지어 하루를 표현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때는 시를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그게 짧게 일기를 마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시를 짓는 것이 -그게 얼마나 좋은 시인지는 차치하고- 그만큼 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의 일기를 주의 깊게 읽어주시는 다정한 분이셨고, 그 덕에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내 일기이자 시를 도 백일장에 제출했다. 내 시는 입상하여 좋은 성적을 거뒀고 지역 관공서에 가서 제복을 입은 어른에게 직접 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때 '내가 글을 잘 쓰나 보네?'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아래에 은근하게 깔린 '운이 좋았나 봐'하는 생각도 눈치채고 있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길 좋아한 중학생이 되어서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생겼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오빠와 나를 주인공으로 팬픽을 썼다. 유치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그 나잇대 친구들에게는 그럭저럭 몰입되는 이야기였는지 주변 친구들은 나에게 구독료처럼 칭찬을 건넸다. "너 커서 작가 하면 되겠다!" 하지만 '운이 좋았나 봐'하고 속삭이던 목소리는 '친구들이라 좋은 말 해주는 거지.'로 바뀌어서 들뜨는 마음을 눌렀다. 그 목소리는 결국 내 안의 소리였으므로 나는 이 정도로 자신 없고 열정 없는 마음은 꿈이라던가, 가야 할 길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시교육에 하루를 맞추던 고등학생 때는 책을 읽는 것이 몇 안 되는 허락된 취미였다. 나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이후로 유치원부터 학창 시절 내내 책을 꽤 많이 읽은 편이었는데 그게 나름대로의 자랑거리였다. 사춘기의 나는 책을 읽는 내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10권이 넘어가는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로서의 능력이 확장된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래도 창작자보다는 독자, 감상자, 소비자에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고 스스로를 한정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대학 졸업할 시기가 됐을 때, 불현듯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걸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나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싹텄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나의 작품이라고 할 만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졸업반인 나는 늘 시간이 모자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쓰기에 할당할 관심과 여유가 모자랐고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후순위였다. 그리고 글쓰기가 본격적이게 될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어쩌면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나의 보험과도 같은 글쓰기 실력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또 한 번 생각했다. 역시 나는 작가가 되기엔 게을러. 재능은 있지만 노력하지 않아서 작가가 될 수 없는 거야. 그렇게 진열장 안의 모형 음식처럼 속없이 겉으로만 감쪽같은 재능을 내 안에 곱게 진열해놨었다.


그 후에도 몇 번 글을 쓰는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매번 대단한 순간이 아니었고, 그저 상냥한 사람들의 격려와 친절한 대화 방식이라고 넘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내 생각은 어쩌면 겸손하고 스스로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태도였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오만하게 넘겨짚고 내 맘대로 치부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때가 있다. 그때가 아닐 때는 들어야 할 말이 들리지 않기도 하고, 이어야 할 일을 끝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순간을 만났다.


아무리 아닌 것 같은 길이라도 목적지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들어가야 한다.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 함께 사는 언니와 셋이 대화를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문화예술계 종사자였는데 그 언니는 특히 기획자로 활동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꽤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마친 참이었는데 그 말미에 언니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인 씨, 글 써볼 생각 없어요? 작가 쪽으로." 평소처럼 그저 웃어 넘기기엔 진지한 분위기라서 직접 대답을 했다. 내용은 물론 몇 번이나 나 자신을 다독였던 그 말들이었다. 저는 창작하기보다는 소비하는 사람이라서요.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그걸 글로 옮기기엔 너무 게을러요.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이어진 며칠 동안 언니의 목소리는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습관적으로 나를 격려해줄 이유가 없는 관계의 사람이라 그런 건지, 글쓰기와 닿아있는 관련 업계 종사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언니의 진지한 태도에서 희망을 읽은 건지 나는 그 순간을 자꾸만 떠올렸다. 결국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가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걱정 없이 나 혼자 만족할만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완성된 글로 실체를 드러낼 나의 과대평가된 재능을 마주하는 좌절감보다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않는 비겁함이 더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이 모셔뒀던 재능이 아주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갈고닦아 조금이라도 빛나게 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그 순간 내 눈앞에 보인 단 하나의 경로였다.


경로를 이탈해 재검색합니다.


운전 중에 내비게이션을 보다 보면 정말 이쪽으로 가는 거라고? 싶은 길들이 있다. 누가 봐도 막다른 곳을 향하는 좁은 골목길이라던가 이상할 정도로 급격하게 꺾어 들어가는 곳이라던가. 그런 의심으로 갈림길을 지나치면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음성이 나온다. 경로를 이탈해 재검색합니다. 나는 몇 번이나 경로를 이탈했고 그때마다 인생은 재검색된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길은 탄탄대로도 아니고, 그 목적지가 화려한 성이라는 보장도 없다. 가보기 전엔 목적지가 어떤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것이 의심과 찜찜함을 안고 계속 이탈된 경로를 뱅뱅 도는 것보다는 더 자유로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는 지금 좋은 작가는 아닐지라도, 나쁜 작가일지라도 어쨌거나 작가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헤매느라 주춤대던 나는 이제 맞는 길을 찾아 기쁘게 쾌속 주행하려고 한다. 이번에 여러 가지를 준비하면서 힘든지도 모르고 굉장히 몰입했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기분이 어떤 건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작가로서의 기록을 남길 이 공간에 많은 장면과 조각들이 잘 보관되기를 바란다. 진열장 안에 마냥 놓여있는 모형이 아닌 직접 쓰이고 손 때탄 나의 글을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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