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순간에 글을 쓸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한 동경이 있던 시절에는 자신 안의 우울과 슬픔을 예술로 승화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화가, 작곡가, 영화감독들을 보면서 마냥 멋지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라고 나서 '예술'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의 우울이라든가 복잡한 속내를 승화해보려고 하니 그건 멋진 일만은 아니었다. 그럼 나의 우울과 슬픔은 잠시 넣어두고 기쁨과 행복을 글로 써내면 될 텐데 그건 또 그것대로 어려우니 여러모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왜 나의 기쁨을 글로 쓰는 것이 어려울까? 시도는 해보았지만 몇 줄이면 금방 마무리되었다. '기쁜 일이 있었다. 정말 뛸 듯이 기쁘고 감사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끝.' 반면, 복잡한 속내는 풀어내고 풀어내도 이제 막 잡아당기기 시작한 털실처럼 끊임없이 늘어졌다. 그렇다고 매번 우울에 코를 박고 있는 글만 쓸 수는 없다. 하지만 그저 울적함의 전시가 아닌 약간의 분석을 곁들인 고찰이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영양가가 있지 않을까? 어린이 젤리에 들어간 미량의 비타민만큼의 역할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나의 기쁨과 행복이 글로 잘 적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글을 쓸 때 경계하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시대에 리스너는 너무 적고 스피커는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글이 번화가에서 범람하는 매장 음악이 되지 않기 위해 늘 경계하려고 한다. 요즘처럼 고민이 만연하고 일상인 때에 그 고민을 자신의 공간에서 공유하는 것은 아주 약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운 좋으면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공감을 불러오고 적어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나는 저 정도는 아닌데.'라는 새침한 위안이라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기쁨과 행복은? 말 그대로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가 된다. 물론 좋은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거나, 행복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읽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경계가 굉장히 세밀하다고나 할까. 행복의 전달은 자칫하면 자랑이 되고, 행복의 감상은 아차 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말을 고르고 고르다 보면 몇 줄로 마무리되고 그마저도 운을 떼기에 곤란해지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속이 복잡할 때 써 내려가는 글은 마치 수압 청소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곳저곳 까다롭게 따질 것 없이 시원하게 밀어내고 씻어낸다. 물론 그 먼지를 씻어낸 구정물을 보여주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최종적으로는 개운하게 씻겨서 깨끗해진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항상 그 점을 유의하고 우울의 전시가 아닌 그 속에서 진행된 사고의 단계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게 완벽한 단계가 아니라 과정의 조각일지라도 막무가내의 배열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직 내가 다양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살면서 나에게 기쁨과 행복은 참으로 명료하고 단순했는데 고통과 우울, 슬픔, 불안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다채롭고 복잡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인생에서 기쁜 일은 '항상 이렇게 기쁜 건 아니지. 이런 날이 있으면 또 슬픔도 있겠지.' 하는 마음을 꼬리에 달고 흘러가는데 힘든 일은 '많이 아팠으니까 이제 행복한 날이 올 거야!' 하는 마음을 내가 일부러 꾸역꾸역 붙여주어도 도통 흘러갈 줄을 모른다. 시간의 힘을 빌려 겨우 밀어낸다 해도 그 역치가 다른 것은 가끔 억울할 정도다. 기쁨의 역치는 나날이 높아만 가는데, 고통은 내가 강해지는 만큼 더 거칠게 다가와 매번 속살을 찔리듯 찌릿하게 한다. 야속하게도, 기쁨은 깃털처럼 작은 바람만 불어도 금세 날아가는데 우울과 슬픔은 금방 눌어붙어 찌든 때가 되어버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이치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기쁨과 행복은 점점 단조로워지는데, 고통과 고민은 매번 새롭게 구구절절 길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수는 없다. 어떤 일에서건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는 것처럼 인생도 살다 보면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요령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음식도 배가 고픈 사람은 맛도 못 느끼고 허겁지겁 먹어치우지만, 미식가는 숨겨진 맛과 향까지 찾아 음미한다. 매번 단조로워지다 못해 이제는 인스턴트 행복을 겨우 느끼고 있는 기분이지만, 그 행복을 내가 어떻게 음미하느냐에 따라 더 오래 여운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쉽게 때 타는 마음을 씻어내는 수압 청소부지만 조금 더 신경을 기울이고 나를 격려해서 조금씩 기쁨의 미식가 활동을 늘려나가고 싶다. 내일 또 먼지가 앉을 지라도 오늘은 청소가 끝난 마음에 기쁨의 깃털을 뿌려놓을 정도의 희망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이렇게 글로써 마음의 청소를 마쳤으니 내일은 나를 웃게 하는 행복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