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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Feb 03. 2022

기회가 있을 때 아끼지 말기

사소한 행복에 나중은 없다.




나는 요즘 판 초콜릿을 뜨거운 커피와 함께 먹는 걸 좋아한다. 영화 <크루엘라>를 보고 나서 그 OST에 빠져서 롤링스톤스와 더 좀비스의 노래를 반복 재생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카레를 해 먹는다. 마블 영화를 이틀에 한 편씩은 꼭 챙겨보고 있으며, 몸이 시원해지는 스트레칭 영상을 발견한 이후로는 매일 같이 그 유튜버의 홈트 영상을 따라 하고 있다. 눈에 띄는 배우가 있으면 관련된 영상과 그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있는 영화들을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예전에는 젤리를 좋아해서 다양한 젤리를 직구까지 해서 먹어보고 시트콤 <빅뱅이론>을 시간 날 때마다 틀어놨으며 근처 공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 늘 그 공원에 갔었다. 외식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쌀국수를 사 먹었고 크림치즈 프렛즐을 사서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매년 1~2번씩은 꼭 해외여행을 다녔다. 집 근처 와인바 분위기가 꼭 맘에 들어서 치즈 플레이트와 올리브를 안주로 와인 마시는 것에 취미를 붙이기도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내심 나의 애정과 즐거움을 최대한 고르게 펼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좋아하는 시리즈를 매일 보다가도 너무 한 가지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시간을 쪼개서 다른 시리즈를 숙제처럼 보기도 하고 다양한 취향을 위해 취미들을 갈랐다. 쉽게 빠져드는 성격인 나를 잘 알아서 그런지 하나에 깊게 빠져드는 일이 없도록 늘 나를 관리했다. 그렇게 관심과 애정을 아끼곤 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한결같지 않았다. 매분 매초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19년에는 가고 싶었던 도시들이 많았다. 홍콩, 블라디보스토크, 보라카이, 타이베이.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들로 짧게나마 다녀오고 싶었지만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나의 일상이 안정된 이후에 가자고 나를 달랬다. 가까운 곳이고 나중에 가면 되니까.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해외여행의 길이 막혔다. 맘만 먹으면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여러 도시들이 순식간에 과거의 꿈으로 자리를 잡았고 막상 내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려 했던 회사에서는 허무할 만큼 간단하게 퇴사해서 아예 직종을 바꿨다. 과거의 내가 세웠던 우선순위는 지나고 보니 적절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후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아쉽기는 했다. 그 전 몇 년간 해외여행에 몰두했을 때는 내가 너무 무모하게 살고 있나 문득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 나름대로 과감하게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 다녔던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나고 나니 아쉽거나, 지나고 보니 다행인 순간들이 많았다.

나중에 정말 유용한 순간이 오면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아껴놓았던 물건이 시간이 흘러 그 기능이 뒤처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고, 물릴 만큼 실컷 사 먹은 메뉴가 이후에 단종되거나 그 식당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외부의 영향이 아닌 지극히 내부적인, 그리고 아무 이유 없는 변화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보고 또 봐도 재밌었던 컨텐츠가 어느 순간 시들해지기도 하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던 음식이 더 이상 구미가 당기지 않기도 했다. 정말 오롯이 내 마음의 변화만으로 가장 소중하고 중요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되기도 했다. 산책을 좋아하던 내가 홈트를 더 좋아하게 되고, 젤리를 좋아하던 내가 초콜릿에 빠지기도 하고, 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포근한 침대에서 OTT 사이트로 여러 영화들을 보는 걸 더 좋아하게 되기도 했다. 


코로나19에 끈적이게 붙들린 시대를 겪으면서, 나의 개인적인 삶에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변화나 상실을 겪으면서 그리고 그저 나의 변덕을 느끼면서 나는 좋은 게 있을 때는 바로 그때 실컷 만끽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면 원없이 사랑을 쏟아야한다. 한결같이 기다려주는 것은 없기 때문에. 너무 듣기 좋은 음악이 당장 내일부터는 듣기 싫거나, 혹은 관련된 예술가의 잘못된 행동으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질 수도 있다. 내 마음의 기복이든 외부적 변화든 미래에 있을 일은 모르니 바로 그 순간을, 현재를 즐겨야 한다. 그렇게 행복의 출력치가 가장 큰 순간에 최대한 행복을 많이 느껴놓는 것이 좋다. 사소한 행복에 나중은 없다. 기회가 있을 때 아끼지 말고 닳을 때까지 행복을 느끼고 쌓아 놓는 것이 요즘의 내 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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