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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Oct 24. 2021

미국 여행도 식후경 3

여행 중 겪었던 음식과 관련된 작은 이야기들


미국 여행 음식 에피소드의 마지막 편. 이 외의 음식들은 여행지의 장면을 쓰는 다른 글 속에 함께 말할 예정이다.



7. 소스 좀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마이애미에 갔을 때는 여행 성수기가 아니었는지, 아니면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변이 아시아 관광객들에게 유명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우연의 일치로 내가 머문 그 며칠만 딱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근처에서 아시아인을 보기가 어려웠다. 마이애미 시내로 나갔을 때는 그래도 아시아인들을 꽤 마주쳤었는데, 숙소 근처가 유독 그랬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다른 도시에서보다 많이 만났고, 마트에서 맥주를 살 때는 처음으로 여권을 보여달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다가 서브웨이를 마주쳤더니 너무나 반가웠다. 한국에서 사 먹던 기억이 나서 우리나라 브랜드도 아닌데 괜히 반가웠던 나는 냉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앞사람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직원은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다른 직원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선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알려주는 대로 내 앞 손님의 샌드위치를 차근차근 만들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나를 몇 번 곁눈질했다. 내 차례가 되고, 능숙해 보이는 직원은 초보 직원에게 내 주문을 맡기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와 둘이 남은 직원은 유달리 긴장한 티가 났다. 연신 눈을 깜박이면서 대치하듯 서있어서 조금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잠시 서있던 그는 여전히 흔들리는 눈으로 내 주문을 받았다. 올리브를 빼 달라는 나의 말에 올리브부터 집었다가 다시 허둥지둥 내려놨지만, 어쨌거나 큰 문제없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소스 차례가 되었을 때, 처음 먹어보는 메뉴를 주문한 나는 평소처럼 물었다. "소스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의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그는 어색하게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식당 직원에게 추천을 거절당할 수도 있는 건가? 그 모습을 본 나는 덩달아 당황해서 그냥 되는대로 소스를 골랐다. 아무거나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 직원은 그마저도 다른 걸로 넣어줬다. 다행히도 샌드위치는 아주 맛있었다.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맛있는 조합을 만나게 된 기분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8. 보기 좋은 과일이 먹기도…?


우리나라 과일이 굉장히 맛있는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과일인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은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간식으로 과일팩을 사 먹었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새빨갛게 익은 딸기에서 정말 딸기 꼭지 맛이 났다. 딸기의 안 익은 흰 부분 맛이라기에는 꼭지의 그 풋풋한 풀내가 났다. 얼떨떨한 상태로 집어먹은 파인애플은 좀 나았지만, 그게 정말 파인애플 맛이 괜찮았던 건지 아니면 딸기맛에 놀라 상대적으로 달콤했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나에게 익숙지 않은 구아바는 건조한 무 맛이 나서 예쁜 색에 기대했던 나를 아쉽게 했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에 항상 구비되어있던 사과도 너무 예쁜 색으로 빨갰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과처럼 새빨갛고 윤기가 반질반질 흘렀다. 우리나라에도 홍옥이 있지만, 부사를 훨씬 많이 접해본 나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사과를 들자마자 그동안 내가 먹어온 사과보다 많이 가볍다는 걸 느꼈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빡빡 씻어 크게 한입 깨물어보았다. 음. 부사가 정말 새콤달콤하고 과즙이 많은 과일이었다.




9. 보기 좋은 아이스크림이 먹기도…?


앞서 말했듯 나는 색깔이 예쁜 음식에 약하다. 특히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젤리 같은 군것질거리는 그 색이 자연의 색과 거리가 멀수록 매력적이다. 우리나라는 인공색소 사용 관련 법규가 달라서 음식들이 훨씬 청순한 색을 띠고 있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 미국은 조금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나는 색이 알록달록하고 특이하면 일단 무조건 도전해봤다. 강렬한 색상 때문에 맛도 강렬할 거라고 기대해서 그런 걸까? 상대적으로 맛은 무던했다. 달콤했지만 담담한 단맛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질적일 정도로 화려한 색의 아이스크림에 혀끝을 대는 게 좋았고, 다 먹고 나서 얼룩덜룩하게 물든 혓바닥을 보는 것도 좋았다. 혼자 다니는 만큼 최대한 조심하고 안전에 유의한 나에게는 불량해 보이는 색깔의 군것질을 사 먹는 게 꽤 쏠쏠한 재미가 있는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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