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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Oct 24. 2021

디즈니월드의 불꽃놀이

가능하다면 Happily ever after.


평소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좋아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아주 막연하게 직접 디즈니 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닌데 그 마음은 나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디즈니 성을 직접 보는 것이 뭔가 나에게 성공의 지표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직접 디즈니월드에 가서 저 뾰족하고 아름다운 성을 내 눈으로 본다면, 그럼 그때는 뭔가 내 인생에서 큰일을 하나 해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커서는 그만큼 더 구체적으로 상상을 했다. 그냥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아예 그 시작인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로 가자! 미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많은 시간과 예산을 디즈니월드에 할애했다. 올랜도의 방문 목적 자체가 디즈니월드였고, 5일간의 일정을 모두 투자해도 좋을 만큼 디즈니월드는 크고 넓었다.



디즈니월드의 테마파크는 매직킹덤, 앱캇, 할리우드 스튜디오, 애니멀 킹덤 이렇게 4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직킹덤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디즈니 성과 디즈니 캐릭터들이 가득 찬 어트랙션 위주의 파크였고, 앱캇은 세계의 여러 도시들과 미래적인 컨셉을 볼 수 있는 파크로 가운데에 아주 큰 호수가 있어서 유독 유원지 느낌이 강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영화 관련 체험이나 퍼레이드가 있었고 LA의 할리우드 거리를 재현해 놓기도 했다. 애니멀 킹덤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평소 동물원을 가지 않는 나는 애니멀 킹덤을 제외한 3개의 파크를 다녀왔다.


세 테마파크 모두 폐장시간이 가까워오면 불꽃놀이로 밤을 마무리했다. 앱캇에 방문한 날, 나는 일찌감치 구경을 마무리하고 불꽃이 잘 보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불꽃놀이는 자리를 잡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깜깜해지고 나서야 시작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기다리면서 고즈넉한 노을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앱캇의 호수. 폭죽을 쏘아 올릴 배들이 떠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물 위에 떠있던 배들이 폭죽을 쏘아 올렸다. 하늘에서 멋지게 터져나가는 폭죽이 호수 위 수면에 비쳤다. 파크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랗게 울리는 음악은 낭만적이었고 불꽃은 정말 아름다웠다. 직접 이곳에 와서 폭죽을 바라보면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일 줄 알았는데, 막상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수면 위에 흔들리는 불꽃의 빛들이 아련했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을 보면서도 한국에 돌아가서 마주할 현실을 걱정했다. 바보 같게도, 폭죽이 하나하나 터질 때마다 너무 아쉬워서 그 풍성한 불꽃을 만끽하지 못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불꽃놀이가 끝나겠구나 하는 걱정에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폭죽이 만드는 풍경을 제대로 붙잡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그걸 넘어설 만큼 불꽃놀이는 화려하고 멋졌다. 내가 아무리 놓쳤더라도 스친 것 만으로 인상 깊을 만큼 대단한 순간이었다. 


다음날, 매직킹덤에 도착한 나는 결의를 다졌다. 전날엔 뭣 때문인지 분심이 들어 불꽃놀이를 오롯이 즐기지 못했지만 오늘은 반드시 상상 속의 장면을 구현해내리라. 스스로 다짐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퍼레이드 시간에 맞춰 또 자리를 잡았다. 화려한 빛으로 둘러싸인 퍼레이드카와 사람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멋진 장면을 보면서 신기함에 감탄했지만, 도로 턱에 쪼그려 앉은 나는 또다시 가슴속이 소란해지는 걸 느꼈다. 꿈에 그리던 디즈니 성 앞에 마주 서서 그 뒤의 하늘을 도화지 삼아 물감처럼 번져나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배경음악으로 디즈니 영화의 주제가가 흐르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부모님의 목마를 타고 귀여운 목소리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어린아이들은 정말 그 불꽃놀이의 주인공 같았다.


감격과 행복이 넘실거리는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복잡해지는 눈빛을 흩뜨리듯이 눈을 깜박였다. 매직킹덤에서 환상적이었던 하루를 매듭짓는 불꽃놀이는 나에게 한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Happily ever after'. 많은 동화의 마지막 문장인 그 말을 난 참 좋아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작품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라는 사람이지만, 나의 삶 속에서 그 문장을 맞닥뜨렸을 때는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 옆에서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처럼 마냥 행복한 앞날을 기대하면서 눈을 반짝일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고, 특히나 영원한 행복은 거의 역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라는 말에 안심하던 어린이가 결국 영원을 믿지 않는 어른이 되어서 디즈니 성의 불꽃을 만나게 된 것이 복잡미묘했다. 그전에 불꽃놀이를 보는 순간을 상상했을 때는 내가 감탄하느라 넋을 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마주하고 나니 상념에 빠져 가만히 서있게 되었다.




글의 제목은 불꽃놀이지만 아쉽게도 사진에 불꽃을 담지는 못했다. 내 사진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불꽃놀이를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질 만큼 찬란하게 터지는 폭죽들이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쏟아지는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나를 붙잡고 있어서 사진에 열성을 쏟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디즈니월드에서 봤던 그 불꽃놀이들이 내 생에 최고의 불꽃놀이었다. 가장 아름다웠고 끝내주게 화려했고 말도 못 하게 멋졌다. 기대했던 감흥은 없었을지라도 소중한 여행의 추억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나는 이제 영원을 믿지는 않지만, 영원을 동경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 소망의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디즈니월드가 여전히 좋다. 아름답게 퍼져나가는 불꽃을 보면서 '와, 저거 진짜 돈 많이 들었겠다.' 같은 속물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의 환상과 낭만을 지켜주는 곳을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 쭉 행복할 자신은 없지만 이제는 힘든 시기를 겪더라도 그 앞날에 행복한 순간이 반드시, 분명히 있을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조금은 더 희망적인 마음으로 디즈니월드의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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