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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Oct 22. 2021

미국 여행도 식후경 2

여행 중 겪었던 음식과 관련된 작은 이야기들



지난 편에 이어서, 미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 소소하게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어떤 일이 있던 것이 아니라도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골라보았다.


4. 태어나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순두부찌개



평생을 한국에 살다가 고작 며칠 해외에 나가 있었을 뿐인데 한국이 그리워서 한인타운을 찾았다.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이나 날아와서 다시 한국 동네에 있다는 게 조금 머쓱했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서 만나게 된 한국 간판들이 반갑기는 했다. 한인마트에 가서 한참 구경하다가 식사 때가 됐다. 마트에 있는 푸드코트에 가서 무난하게 순두부찌개를 골랐다. 푸드코트 음식도 물론 맛있지만 아무래도 전문 식당보다는 간단하고 평범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음식이 나와보니 예상보다 더 알차고 푸짐해 보였다. 순두부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안에 들어있는 해물에서 국물이 시원하게 우러났고, 무엇보다 양념이 너무 감칠맛 나고 자꾸 밥을 당기게 했다. 아직까지도 내가 먹어본 순두부찌개 중 최고다. 평소에 두부요리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뜨끈한 게 먹고 싶어서 주문한 거였는데 얼떨결에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이후에 알게 되기론 한인타운의 음식들이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북창동순두부도 1호점이 LA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식당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도 그렇게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파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믿음이 간다. 한국에 대한 향수로 찾은 한인타운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덕분에 이후의 여행도 힘내서 잘 해낼 수 있었다.



5. Give me that food

식사 전 음식을 촬영할 땐 늘 마음이 급해서 카메라 렌즈 닦는 것을 까먹곤 한다.


LA에서 내 식사를 가장 많이 책임진 건 바로 '판다 익스프레스'였다. 이때 너무 맛있게 먹고 기억이 좋아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의도에 있는 판다 익스프레스에 자주 들렀다. 음식을 포장한 다음 여의도 한강공원에 가서 마포대교와 한강을 바라보며 먹으면, 추억과 현재의 여유가 섞이면서 아주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이런 판다 익스프레스와 관련해서도 LA에서 뜻밖의 경험을 했었다.

그날도 일정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에 근처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음식을 포장했다. 따뜻한 음식을 가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는데 가게와 조금 떨어진 담벼락에 기대 있던 남자가 나에게 한발 다가와 말했다. 'Give me that food.' 그 음식을 내놓으라니. 살면서 초등학생 때 오락실에서 중학생 선배들에게 동전을 뺏긴 걸 제외하고는 한 번도 삥(?)을 뜯겨보지 않은 나는 처음엔 그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때 난 이어폰을 꽂고 있었는데 음악은 틀지 않은 그냥 보여주기 식이었다. 처음 LA에 도착해서 갑작스럽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몇 번 겪고 나서 인터넷에 있던 조언을 따라한 것이었다. 나는 남자의 말에 조금 주춤했지만 못 들은 척 걸음을 빨리했다. 남자는 몇 걸음 더 나를 따라왔는데 나는 의식하지 않는 척하며 성큼성큼 걸었다. 코너를 돌면서 살짝 돌아보니 다행히 더 이상은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태연한 척했지만 막상 숙소에 도착하고 나자 숨이 크게 터졌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먹은 그날의 판다 익스프레스는 왠지 모르게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6. A의 커피빈 베스트 메뉴


 LA에서 느꼈던 특이한 점은 '커피빈'이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만나 함께 하루를 보낸 A와도 커피빈에 들렀는데, A가 자신이 굉장히 좋아하는 메뉴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카페에 가면 거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기 때문에 메뉴에 대한 큰 감흥 없이 주문대에 섰다. 그런데 메뉴를 주문하는 A의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고 한편으로는 약간 설레 하는 것 같기도 해서 나도 왠지 그 메뉴에 대해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 메뉴를 따라 주문했다. 그 메뉴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는데, 유별난 맛은 아니지만 묘하게 담백하고 깔끔했다.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마무리로 먹기에 아주 좋았다. 함께 음료를 마시면서 지하철로 이동한 우리는 각자 내려야 할 역이 달라서 지하철 안에서 인사하고 헤어졌다. A와는 그 이후에 사진을 주고받고 서로의 유학과 여행을 응원하는 안부를 나눈 다음 별일 없이 인연이 마무리됐다.


그날 음료를 주문할 때 정확한 이름도 모른 채 그냥 A와 같은 걸 달라고 한터라 지금도 제대로 된 메뉴명을 모른다. 그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커피빈을 갈 때면 비슷한 이름의 메뉴를 시켜보지만 그때와 같은 맛을 내는 음료는 없었다. 아마 한국과 미국의 메뉴가 다르다 보니 같은 메뉴가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같은 음료를 마셔봤지만 내가 맛을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날의 즐거웠던 기분과 새로운 경험이 특별한 맛을 만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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