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겪었던 음식과 관련된 작은 이야기들
내가 마이애미에 갔을 때는 여행 성수기가 아니었는지, 아니면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변이 아시아 관광객들에게 유명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우연의 일치로 내가 머문 그 며칠만 딱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근처에서 아시아인을 보기가 어려웠다. 마이애미 시내로 나갔을 때는 그래도 아시아인들을 꽤 마주쳤었는데, 숙소 근처가 유독 그랬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다른 도시에서보다 많이 만났고, 마트에서 맥주를 살 때는 처음으로 여권을 보여달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다가 서브웨이를 마주쳤더니 너무나 반가웠다. 한국에서 사 먹던 기억이 나서 우리나라 브랜드도 아닌데 괜히 반가웠던 나는 냉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앞사람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직원은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다른 직원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선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알려주는 대로 내 앞 손님의 샌드위치를 차근차근 만들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나를 몇 번 곁눈질했다. 내 차례가 되고, 능숙해 보이는 직원은 초보 직원에게 내 주문을 맡기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와 둘이 남은 직원은 유달리 긴장한 티가 났다. 연신 눈을 깜박이면서 대치하듯 서있어서 조금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잠시 서있던 그는 여전히 흔들리는 눈으로 내 주문을 받았다. 올리브를 빼 달라는 나의 말에 올리브부터 집었다가 다시 허둥지둥 내려놨지만, 어쨌거나 큰 문제없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소스 차례가 되었을 때, 처음 먹어보는 메뉴를 주문한 나는 평소처럼 물었다. "소스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의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그는 어색하게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식당 직원에게 추천을 거절당할 수도 있는 건가? 그 모습을 본 나는 덩달아 당황해서 그냥 되는대로 소스를 골랐다. 아무거나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 직원은 그마저도 다른 걸로 넣어줬다. 다행히도 샌드위치는 아주 맛있었다.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맛있는 조합을 만나게 된 기분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과일이 굉장히 맛있는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과일인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은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간식으로 과일팩을 사 먹었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새빨갛게 익은 딸기에서 정말 딸기 꼭지 맛이 났다. 딸기의 안 익은 흰 부분 맛이라기에는 꼭지의 그 풋풋한 풀내가 났다. 얼떨떨한 상태로 집어먹은 파인애플은 좀 나았지만, 그게 정말 파인애플 맛이 괜찮았던 건지 아니면 딸기맛에 놀라 상대적으로 달콤했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나에게 익숙지 않은 구아바는 건조한 무 맛이 나서 예쁜 색에 기대했던 나를 아쉽게 했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에 항상 구비되어있던 사과도 너무 예쁜 색으로 빨갰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과처럼 새빨갛고 윤기가 반질반질 흘렀다. 우리나라에도 홍옥이 있지만, 부사를 훨씬 많이 접해본 나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사과를 들자마자 그동안 내가 먹어온 사과보다 많이 가볍다는 걸 느꼈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빡빡 씻어 크게 한입 깨물어보았다. 음. 부사가 정말 새콤달콤하고 과즙이 많은 과일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색깔이 예쁜 음식에 약하다. 특히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젤리 같은 군것질거리는 그 색이 자연의 색과 거리가 멀수록 매력적이다. 우리나라는 인공색소 사용 관련 법규가 달라서 음식들이 훨씬 청순한 색을 띠고 있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 미국은 조금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나는 색이 알록달록하고 특이하면 일단 무조건 도전해봤다. 강렬한 색상 때문에 맛도 강렬할 거라고 기대해서 그런 걸까? 상대적으로 맛은 무던했다. 달콤했지만 담담한 단맛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질적일 정도로 화려한 색의 아이스크림에 혀끝을 대는 게 좋았고, 다 먹고 나서 얼룩덜룩하게 물든 혓바닥을 보는 것도 좋았다. 혼자 다니는 만큼 최대한 조심하고 안전에 유의한 나에게는 불량해 보이는 색깔의 군것질을 사 먹는 게 꽤 쏠쏠한 재미가 있는 일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