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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Oct 23. 2024

서로에게 완벽했던 서로

생각보다 금세 가까워진 둘은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가 엄마를 찾듯 서로를 찾는 순간이 잦아졌다. 남자의 집과 여자의 회사는 걸어서 20분 남짓한 거리다. 프리랜서인 남자는 여자의 점심시간이 되면 회사 앞으로 찾아와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다. 여자는 회사가 끝나자마자 남자의 집 근처로 달려가 저녁을 먹거나 카페를 가거나 산책을 한다. 그렇게 둘은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 있었다. 글에도 도입, 전개, 결말이 있는 법인데 둘에게는 도입은 한 문장일 뿐, 바로 전개가 시작된 것이다. 



매일 보고 싶은 사랑은 이제 없을 거라 여긴 남자는 요즘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매일 같이 만나는 여자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다가도 괜히 휴대전화를 켜 그 속에 담긴 여자의 사진을 본다. 그뿐 아니다. 여태 자주 갖던 술자리에 가는 것보다 여자와 가볍게 맥주 한잔하는 게 좋아졌고, 혼자 먹는 점심이 익숙했던 남자는 여자와 먹는 밥이 맛있게 느껴진다.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던 남자는 여자와 한 시간 되는 거리를 걷기도 한다.


남자는 여자의 진한 쌍꺼풀과 큰 눈을 좋아한다. 웃을 때 보이는 치아가 가지런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머리색을 신기해하며 자주 쓰다듬는다. 신호등을 기다릴 때 꽤 큰 키가 마음에 든다. 농담을 던지면 쾌활하게 웃는 웃음 때문에 더 많은 농담을 하려고 애쓴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여자를 바라보며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누구보다 자기 일처럼 들어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처음 만난 순간 느꼈던 감정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낀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믿어보기로 다짐한다. 서로를 알아가기엔 너무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자는 이미 내면에 가득 찬 남자를 수용한다. 통근을 핑계 대며 회사 이외에는 잠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을 남자와 보내는 데 쏟는다. 아침마다 먼저 일어나는 여자는 남자에게 오늘 하루도 힘내자며 보고 싶다는 말을 수줍게 건넨다. 안 그래도 웃음이 많았는데 더 많아진다.


여자는 남자의 동그란 눈과 기다란 속눈썹을 좋아한다. 가끔 크게 웃음을 터트릴 때 내는 소리가 재밌다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적당히 큰 키와 듬직한 몸을 가진 남자의 품에 자주 안기려고 한다. 남자의 농담에 뒤로 넘어갈 듯 웃고 싶지만 최대한 예쁜 미소를 짓는다. 불안한 내면, 기댈 곳이 필요할 때 나에게 다 털어놓으라고 말하는 남자의 든든한 말 한마디에 겨우 눈물을 참으며 남자를 향한 마음이 커진다.



둘은 서로에게 너무나 완벽한 존재다. 스무 살 초반에나 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람. 더 이상 사람을 믿는 게 어려워서 방황하던 중 온전한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된 사람. 많은 이성을 마주해도 움직이지 않던 마음에 지진을 일으킨 사람. 마치 이상형이 눈앞에 온 것처럼, 드라마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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