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연애는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다. 밥집에 가서 마음껏 음식을 시켜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남자는 라테만 마시는 여자 탓에 이제 아이스 라테를 마신다. 날이 좋을 땐 남산이 보이는 길을 하염없이 산책한다. 바람이 좋으면 술 한잔 걸치며 여태 살아온 이야기, 가족 이야기 같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 일 때문에 스트레스라도 받는 날이면 서로의 회사나 집 근처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준다. 다 들어줄 테니 걱정 말라며 달달한 디저트를 사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한다. 둘의 같은 취미인 축구 경기를 보러 가고 유니폼을 찾으러 매장 곳곳을 다니기도 한다. 사진을 좋아하는 여자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남자를 데리고 추억을 남기자며 사진관에 가서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는 인정하는 말, 함께 있는 시간, 선물, 봉사, 육체적인 접촉이 있다. 이 중 남자와 여자는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가 보다. 매일 같이 만나 매일 같이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쌓는다.
남자는 이 연애에 만족한다. 자유로운 성격을 가진 그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여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자신에게 좋다고 여긴다. 여자를 만나지 않는 시간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작업을 한다. 아니면 편하게 쉬면서 일상을 보낸다. 남자는 이대로라면 이 여자와 오래 연애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남자가 보기에 여자는 현명한 면도 많기 때문에 다툴 일도 적다. 스트레스도 없는 꽤 괜찮은 연애다.
하지만 여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자의 오랜 꿈은 결혼해서 자신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안정감 없이 살아온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안정감을 최종 목표로 설정했다. 결혼이야말로 비로소 연애의 완결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자에게 연애는 결혼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연애만으로 만족해하는 남자를 보면서 결혼 이야기 꺼내기가 참 어렵다. 괜히 부담되면 어떡하지. 부담스러워서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마음에 불안한 생각이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여자는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앞으로 남자와 어떤 연애를 해야 할지, 남자의 속마음은 어떤지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된 계기가 생겼다. 여자의 친한 친구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여자는 결혼식을 다녀온 후 남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오빠는 혹시 결혼 생각은 없어요?
-응? 나는 지금 너랑 이렇게 지내는 걸로도 만족하지.
역시나 남자의 반응은 여자가 예상한 그대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별로 관심 없는 듯한 태도 말이다. 여자는 아니야 신경 쓰지 마요 라는 말로 대화를 스쳐 지나간다. 여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남자는 여전히 별생각이 없다. 먼 미래를 생각하자니 당장 내일 일도 모를 일이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자니 현재가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냥 지금 이 행복과 안정이 깨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와 함께.
여자는 집에 돌아와 온갖 생각에 파묻힌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나랑 결혼 생각은 없었던 거지. 괜한 원망의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이십 대 후반에 거의 도착한 여자는 이대로 연애만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 애초에 연애할 때부터 결혼은 조금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것 아닌가 하며 남자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여자는 결국 남자와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 잡혔다. 우리가 지금은 너무 행복하지만 남들처럼 언젠간 이별할 거로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