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을까

by 장수기

피아노 치는 게 좋다. 왜 좋을까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다른 목적이 없어서 좋다. 예고를 가기 위해 치는 것도 아니고, 먹고살기 위해 치는 것도 아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마감도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나 자신도, 내 주변 그 누구도 내가 피아노를 잘 치기를 기대하지 않아서 정말 좋다.


집에 피아노가 없어 이른 아침, 20분을 걸어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타고 피아노가 있는 예배당에 가서 딱 1시간 연습하고 돌아오는 그 간절함이 좋다. 마흔이 넘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오후 4시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 학원에 가는 그 새로운 시간표가 좋다. 다음날 얼른 피아노 치러 가고 싶어서 일찍 잠드는 나의 그 들뜬 마음이 좋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던 막막한 인생을 살다가, 악보를 펼치면 시작도 끝도 다 보여서 좋다. 지금 바이엘을 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체르니를 치라고 요구하지 않아서 좋다. 바로바로 답장을 하지 않는 내 동생과 달리 피아노 건반은 누르면 바로바로 소리가 나서 좋다.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갖고 싶었던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게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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